평택 파주옥 설렁탕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祭基洞.
그러니까 조선시대 임금이 논농사를 지어야 할 봄철에 오랜 가뭄이 들면 문무백관文武百官들과 함께 행차해서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을 지나 제기동에 이르러 오랫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임금이 부덕해서 하늘이 내린 벌로 하늘 뜻을 어긴 것이 있으면 어린 백성들을 어여삐 여겨 그 노여움을 푸시고 비를 내려주십사 하고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던 ‘선농단’이 있던 곳입니다.
정조임금이 쌀뒤주 속에서 죽은 부왕父王 사도세자 무덤을 찾아 몇날 며칠 능행陵行을 하던 오랜 행차와 달리 기우제를 지내는 임금의 행차는 하루 만에 다녀와야 하는지라 임금의 수랏상 준비가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자칫 음식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기우제에 참가하는 모든 벼슬아치에게 먹일 음식장만을 준비해야 했었는데 그것이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기우제를 지내는 현장에서 만든 음식으로 모두가 다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묘안을 짜낸 것이 바로 선농탕善農湯-어진 백성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선농탕은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하기 편하게 ‘설렁탕’이 되었고 혹 누군가는 설렁탕은 설렁설렁 끓여서 설렁탕이고 또는 오래오래 설설 끓여서 설렁탕이라기도 하고 곰탕은 밤새 뼈를 넣고 고아서 만든 국물이라서 곰탕이라고 했다지만 설렁탕이나 곰탕이나 다를 것은 없습니다. 하여간 설렁탕이든 곰탕이든 유난히도 국물을 즐기는 우리나라 음식문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입니다.

1960년대 서울 청계천 3가에 ‘한밭식당’이 있었습니다. 음식점 이름이 말해주듯 ‘한밭’ 즉 대전에서 올라온 식당인데 오직 한 가지 일품요리인 설렁탕만 파는 설렁탕 전문 음식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삼각동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하동관’ 곰탕집도 있었지만 한밭식당은 생기자마자 기세를 올리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동관’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밭식당’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배부르게 먹어야 할 설렁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설렁탕에 따라 나오는 깍두기 탓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정조의 사위가 된 영명위 홍현주네 부엌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 깍두기는 무를 깍둑깍둑 대충 썰어서 새우젓을 넣어 만든 김치로 그 시원한 맛에 금세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김치가 되었는데 그 깍두기 맛이 ‘한밭식당’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음식점에서 먹든 맛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설렁탕을 먹으러 ‘한밭식당’엘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깍두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었는데 깍두기는 한 그릇으로 만족할 수 없으리만치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귀한 깍두기는 어느 계절에든 상관없이 언제나 무한 ‘리필’이 가능했습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파주옥’은 지금 건물이 서 있는 자리에 있던 허름하고 낡은 건물에서 가마솥을 걸고 음식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세월이 많이 변해서 모든 음식점이 위생적으로 깨끗해지고 친절해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러 가서 깔끔을 떨거나 격식을 갖추는 것에 매우 예민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내 돈 내고 먹는 음식 마음 편하게 먹는 것이 바로 몸에 이로운 보약이 되고 행복이 된다는 생활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음식점이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돈을 벌어 새 건물을 짓고 나면 그 돈을 다 봉창하기 위해서 음식 맛이 반으로 준다는 것을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파주옥’은 예나 지금이나 ‘처음처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각처에서 기차를 타고 평택역에 내려서는 출출한 김에 먹을 곳이 없나 해서 두리번거리다가 길을 건너자마자 마주치는 ‘파주옥’ 간판을 보고는 따져볼 겨를도 없이 들어가서 곰탕을 시켜서 먹고 보니 곰탕의 진한 맛도 일품이지만 그 곰탕을 100배 더 감칠맛 나게 주는 ‘겉절이’ 맛에 모두 기절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해는 배추농사가 시원치 않아서 김치가 ‘금치’가 될 때에도 파주옥 겉절이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언제나 저울에 단 듯 깔끔하고 깊은 맛으로 음식을 먹고 나면 일상에서 쌓인 모든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어느 음식점엘 가서 밥을 먹어봐도 ‘파주옥’겉절이를 능가하는 김치는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이름을 올린다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김치였습니다.
서울 을지로 입구 옆 삼각동이 재개발 되는 바람에 명동 외환은행 본점 뒷골목으로 이전한 ‘하동관’ 곰탕이나 그리고 나주 땅에 가면 서로가 원조라며 시시비비를 계속하고 있는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 앞 나주곰탕을 먹으면 입안에 남는 들척지근한 맛과 달리 깔끔해서 구수한 맛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이 ‘파주옥’ 곰탕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하루 세끼를 먹는다 해도 전혀 물리지 않을 담백한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밥으로 먹어도 좋지만 맛으로 먹으면 더욱 맛이 우러나고 밤새 먼 불에 고아내서 먹는 사람마다 약이 된다는 ‘파주옥’ 곰탕.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꼽히는 곰탕의 세계적 ‘종가宗家’가 될 것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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