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그 독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싶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 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이 문장은 알베르 까뮈가 자신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철학 에세이 <섬>에 쓴 서문입니다. 사용하지 않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갔다가 오래 전 내가 소개한 이 책의 문장을 발견하고는 잠시 가슴이 뛰었습니다. 내가 소개한 이 책은 “요즘 매일 머리맡에 놓아두고 숨 쉬듯이 읽는 책”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얼마 만에 느끼는 가슴떨림인지, 나는 서재 어딘가에 꽂혀 있을 책을 시간이 걸려도 찾아볼까 하던 마음을 접고 기어이 다시 이 책을 주문하고야 말았습니다. 

스승의 책에 제자가 서문을 썼다는 것도 특별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까뮈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점도 특별합니다. 나 역시 한 줄의 문장을 아껴 읽기 위해 책을 꼭 안고 집까지 걸어오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해지니 까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장 그르니에는 까뮈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프랑스 철학자로 사유의 폭이 대단히 넓고 깊은 작가입니다. 누군가의 책을 읽다 두근거림에 더 읽지 못하고 책을 덮어야 했던 감정을 이후로도 몇 번 밖에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오랫동안 이 책을 잊고 지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슬퍼지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삶의 굴곡 때문이기도 했겠고, 학문을 한다는 핑계로 문학의 본질을 잊고 지낸 시간들이 이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상한 것은 젊은 시절 그렇게 오랫동안 옆에 두고 읽었던 책인데도 막상 내용을 떠올리려니 하나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기억으로는 일상에서 느끼는 철학적 가치들, 자연과 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보여주는 글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내용보다 오히려 그 문장들을 읽으며 가슴이 떨렸던 기억만 크게 남아 있습니다. 

사는 동안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게 만들었던 책들이 몇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 줄 한 줄을 마음에 품느라 책을 읽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함께 해주었던 책들, 힘든 순간들을 몽상으로 치유해준 단정하면서도 깊은 사유를 지닌 문장들,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이 보이던 문학의 소실점들이 때로는 환청으로, 때로는 해당 작가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질투로 다가오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침묵에 싸여 웅크리고 있지만 아직도 그때의 떨림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봅니다. 

삶의 비밀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낸 장 그르니에…, 때로는 음악처럼,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나무들의 낮은 속삭임처럼, 각자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서도 무심히 툭 건네는 건조한 한 마디에도 모든 것을 품어낼 것 같은 너그러운 문장들이 있습니다. 지중해의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당당하게 서 있는 섬으로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문장이 주는 그리움인지, 아니면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인지, 자꾸만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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