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한글교육하며 情 나눕니다”

중졸 학력으로 희망했던 선생님 꿈 이뤄
자원봉사는 건강한 삶의 활력소가 되어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봉사정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가진 걸 아낌없이 나눠주겠다는 마음이 바로 스승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평택시 합정종합사회복지관 문해교실에는 스승보다 한참이나 나이든 제자들이 더 많은걸 나눠주려는 스승의 마음을 감사하게 받으며 한글 한자라도 더 배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17년 동안 해온 한글 자원봉사
“올 5월이면 꼭 17년이 되네요. 1996년부터 이곳에서 문해교실 선생님을 맡아 했거든요. 이곳에 오는 어르신들은 평생 한글을 모르고 살아오신 분들이긴 하지만 사회생활을 훌륭히 해내셨고 자식들도 모두 훌륭하게 가르치신 분들이죠. 예전에는 딸들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문해교육에는 주로 할머니 학생들이 대부분이에요. 평생 한글 모르는 설움을 가진 분들이 한글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참 보람을 느껴요”
정영옥(68) 강사는 17년 동안 문해교실 자원봉사를 해올 수 있었던 건 바로 ‘보람’이었다고 말한다. 5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문해교실 제자들은 늦게 시작한 공부로 인해 몸살을 앓을 만큼 힘들어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3일만, 3달만, 3년만 하며 격려해주는 선생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따라와 주고 그런 믿음으로 10여년이 넘도록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는 제자도 있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이분들에게는 한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어려움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버스를 타야할 때도 항상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타야 하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는 그나마도 못하니까 두려움부터 앞서는 거죠. 그런데 한글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스스로 읽을 수 있으니 사람이 없어도 당당하게 버스를 탈 수 있게 돼서 정말 행복하다고들 하세요. 그분들에게 한글은 새로운 세상을 열게 만들어준 행복의 열쇠인 셈이죠”
정영옥 강사는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항상 더 많은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누구보다도 강했지만 배울 수 없었던 시절이 아픔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는 배움에의 목마름
“제가 처음 문해교실 강사로 나설 때만 해도 학력이 중졸이었어요. 예전에는 중학교도 장학금을 받고 다닐 정도로 공부를 잘 했었는데 8남매 중 장녀라는 위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져 제게 평생의 한이 되었어요. 그러다 어르신들을 가르치게 되니 제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았고 그래서 더 많은 걸 배우기 위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죠. 현재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 한국언어문화학과에 입학해 2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졸업하고 나면 배움을 원하는 분들에게 더 많은 걸 가르쳐줄 수도 있겠지요”
어릴 적 꿈도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는 정영옥 강사는 늦은 나이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지만 그녀의 배움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어서 더욱 특별하다.
“아들과 딸은 제게 왜 편하게 살지 않고 사서 고생을 하시냐고 반문하죠. 그렇지만 이곳에서 봉사하는 일은 제게 삶의 활력소와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되기에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또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기회를 주시는 분들에게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제 스스로가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기 때문에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더 깊이 와 닿았을 거예요”
정영옥 강사는 문해교실 강사로 활동하며 검정고시와 대학공부를 하는 바쁜 일정에도 시청에서 진행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북아트, 생활포장지도사, 노인종이조형 심리미술전문지도사, 레크리에이션지도사 등의 많은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격증들은 고스란히 어르신 문해교육을 재미있게 이어가는 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문해교실 어르신들과 정 나눠
“여든세 살 되신 어르신도 문해교육을 받고 있는데 제가 그분을 엄마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분들은 선생님 없으면 안 오겠다고 으름장도 놓으시죠. 그만큼 이곳에서는 끈끈한 정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다문화반에서 공부했던 분들과는 지금도 꾸준히 통화하면서 안부를 묻기도 하죠.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이 이곳에서 봉사를 하며 느끼는 보람이거든요”
정영옥 강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이 깊어진다고 말한다. 비록 일흔을 목전에 두고 있긴 하지만 가르침을 주는 사람으로서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물 뜯으면 나물도 가져다주시고 떡을 하면 떡도 가져다주시고 뭐든 하나라도 있으면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여기예요. 그 마음은 한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고 저를 그런 위치에 있도록 해준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이 서로간의 정으로 오고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깨달으며 더 많은 걸 가르쳐주고자 노력하는 스승,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배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열정을 가진 제자가 모인 합정종합사회복지관 문해교실. 나이와 상관없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 이들은 단순한 지식을 주고받는 현대의 사제지간과는 다른 진정한 스승과 제자로서의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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