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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지역사회가 마주한 상생의 현실

 

2018년 주한미군사령부 이전, ‘주한미군 평택시대’ 개막
행정 위주의 교류, 해결되지 않는 주한미군 사건·사고
시민 보호 주체 민간이 주도, 행정이 갈등 해결 나서야

 

평택에는 1952년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70년 가까이 주한미군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 지난 2018년에는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 이전을 완료하면서 ‘주한미군 평택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수많은 미군과 그 가족, 미국인 계약직 종사자가 평택으로 내려오면서 지역사회에는 이들과 상생의 필요성이 다시금 강조됐고, 이에 따라 축제 등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이 추진됐다. 이처럼 상생의 분위기가 만연한 가운데 지역사회와 주한미군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평택시민은 오랜 기간 주한미군과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불합리한 일을 겪고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는 폭행 등 각종 사건사고를 비롯해 생화학무기실험, 군 소음, 토양오염, 미군기지 반환까지 다양한 유형으로 상존해 있다. 
평택은 ‘주한미군 평택시대’라는 새로운 역사적 출발점에 서 있지만 이러한 문제들 역시 제대로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상생에 앞서 시민의 권리를 찾고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어야한다는 인식을 지역사회에 환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택시사신문>은 ‘주한미군 평택시대, 상생과 주권 찾기’ 기획특집 지면 보도를 통해 이러한 관점과 인식을 지역사회에 확산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기공식(2007년 11월 13일)

 


■ 새로운 역사의 서막, ‘주한미군 평택시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지금의 평택시 신장동 일대에 K-55 평택오산미공군기지가 세워졌다. 비슷한 시기에 미군은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 건설한 비행장을 육군기지로 사용했는데, 이 기지는 오늘날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평택은 한국전쟁 발발 시점부터 계속해서 주한미군과 함께 생활해 왔다. 신장동과 팽성읍 안정리 등 미군기지 인근에 형성된 기치촌은 1960~70년대 평택 일대에서 가장 화려한 지역으로 번성하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 주한미군이 차츰 병력을 줄이면서 1990년대부터는 지역사회에서도 그 영향력이 대폭 줄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주한미군이 기지 이전 사업을 추진하면서 용산과 의정부, 동두천 일대와 전국에 산재한 미군기지에 대한 평택 이전이 추진됐다. 한·미 정상은 2003년 5월 용산기지를 조기에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용산기지이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본격적인 이전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미군기지 부지로 수용된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과 시민 활동가들의 격렬한 투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평생을 지켜온 삶의 터전에서 쫓긴 이들의 심정을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동등한 위치’의 관계라고는 보기 힘든 과정이었다. 이후 평택시는 이주민들이 겪은 고통의 대가로 ‘주한미군기지이전에따른평택시등의지원등에관한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고덕국제신도시 개발과 삼성전자 입주 등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됐다.
2007년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주요 기지를 평택지역으로 이전하기 위한 ‘시설종합계획’에 합의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기지 건설 기공식을 갖고, 평택 이전을 위한 본격적인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은 착공 후 무려 11년이 경과한 2018년 6월 29일 61년간 용산에 주둔하던 주한미군사령부가 평택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로 청사 이전을 완료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로써 ‘주한미군 평택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부지 면적 24만㎡(약 7만 2600평)에 4층 규모의 본관과 2층 규모의 별관으로 이뤄진 주한미군사령부 청사는 당시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정장선 평택시장 등 주요 내빈의 축하 속에 개청을 알렸다.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와 K-55 평택오산미공군기지는 평택시 전체 면적 458.12㎢ 중 5.86%에 해당하는 26.41㎢(약 798만 9025평) 규모다. 특히,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의 경우 미군의 해외 단일 주둔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주한미군사령부와 미 8군, 유엔군사령부 등이 주둔해 있다. 평택지역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와 그 가족, 군무원, 관련 종사자를 포함한 모든 인원은 현재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으나 대략 4만 6000여 명으로 알려졌다. 이는 2021년 8월 평택시 인구가 56만 명임을 고려했을 때 전체인구의 약 8%에 해당하는 수치로, 상호 협력·교류를 통한 상생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 평택으로 이전한 주한미군사령부(2018년 6월 29일)
▲ K-6 캠프험프리스 미군부대와 팽성읍 안정리 상인들의 합의각서(1979년 9월)

 

 

 

 

■ 주한미군과의 상생, 협력과 교류의 시작
평택시는 주한미군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대표적으로는 팽성읍 안정리에서 열리는 ‘한미친선한마음축제’가 있다. 한미친선한마음축제는 무려 14회 동안 개최된 평택시의 한·미 교류 대표축제로, ‘제1회 한미어울림축제’와 함께 열린 지난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된 상태다. 한미어울림축제는 평택시가 ‘주한미군 평택시대’ 개막 이후 이듬해인 2019년 처음 개최한 축제다. 당시 평택시는 이 축제를 지역 대표축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세균무기 실험이 의심되는 미군기지 안에서 축제가 열렸다는 점과 무분별한 군사 문화 체험으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축제 종료 후 평택시는 평가보고회를 열고, 지역 대표축제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군사 문화 체험과 관련해서는 미 8군 창설 75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향후 축제에서는 미군이 추진한다고 해도 반대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모두 16회 동안 열린 ‘한미친선문화한마당’ 또한 평택시의 한미 교류 대표축제로 꼽을 수 있다. K-6 인근에서 열리는 한미 교류 대표축제가 ‘한미친선한마음축제’라면, ‘한미친선문화한마당’은 K-55 인근에서 열리는 대표축제라고 볼 수 있다.
평택시는 이외에도 ‘한미댄싱카니발’과 ‘한미평화음악회’, ‘한국전쟁 70주년 기념 한미우정랜선콘서트’, ‘젊은문화거리’, ‘할로윈축제’ 등 다양한 공연으로 주한미군과의 교류를 꾀했다. 이들 공연의 경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라인 비대면 방식으로 개최됐다. 축제나 공연을 제외하더라도 평택시는 험프리스 페어블러썸 직거래장터, 한미친선축구대회 등을 통해 주한미군과의 교류를 도모했는데, 이는 모두 일반시민의 참여가 제한적이거나, 미군과 시민의 직접적인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진정한 의미의 상생이 가능하다. 물론, 한미친선문화교류협의회나 한미포럼, 각 지역 상인연합회 등 민간단체가 주한미군과의 교류를 주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교류의 형태가 각 단체의 회원들로 국한되기 때문에 평택시는 더욱 많은 시민이 주한미군과 교류·협력할 수 있도록 상시 운영되는 플랫폼이나 거점을 조성하고, 자연스럽게 만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 사회적 파장이 컸던 K-55 미 헌병의 한국인 불법 수갑 강제연행 사건(2012년 7월 5일)

 

 

■ 주한미군 사건·사고, 풀리지 않는 실마리
주한미군 주둔 이후 관련 사건·사고는 늘 발생해왔으며, 이는 곧 사회 문제로 지적됐다. 1970년대에는 연평균 2000건에 달하는 주한미군 범죄가 발생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폭 줄었지만, 범죄를 저지른 주한미군이 기소되지 않을 확률은 점차 증가했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지난 2017년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7년 7월까지 접수된 주한미군 범죄 사건은 모두 2436건이었다. 이중 약 69.5%에 해당하는 1504건이 불기소됐다. 2014년 63.1%이던 불기소율은 2015년 69.5%, 2016년 75.9%, 2017년 78.2%로 점차 증가했다. 이는 불평등한 ‘한미 SOFA’ 주한미군지위협정상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한 신병인도가 어려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1966년 7월 9일 체결된 ‘한미 SOFA’는 주한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한 협정으로 두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국가 간 가장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92년 동두천에서 발생한 주한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사건은 대학가에서 주한미군 철수시위가 벌어질 정도로 사회적 파장이 컸으며, 불평등한 주한미군 사법 처리에 대해 우리사회가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이외에도 이태원 살인사건과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 효순이 미선이 사건 등 주한미군으로 인해 발생한 여러 사건은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주한미군 범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6월 12일에는 서울 홍익대학교 거리 한복판에서 주한미군 군무원이 주차관리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한미군으로 인한 사건·사고는 평택지역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2000년대 이후만 하더라도 ▲K-55 미 헌병의 평택시민 불법 수갑 연행사건 ▲신장1동 주택가 레이더 기습설치 ▲서탄면 장등리 옹벽 침수 피해 ▲야간조명으로 인한 팽성읍 도두리 농민 벼 피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2년 7월 5일 발생한 ‘미군 수갑 사건’은 K-55 평택오산미공군기지 헌병들이 신장쇼핑몰 순찰 도중 무고한 평택시민 두 명을 위력에 의해 불법으로 수갑을 채워 연행한 사건으로 결국 미군 측이 월권행위를 인정하고,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 사령관이 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신장1동 주택가 레이더 기습설치는 2017년 주한미군이 신장1동 주택가와 불과 20미터 떨어진 거리에 레이더를 설치한 사건이다. 당시 주민들은 소음과 전자파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고, 시민단체가 규탄에 나섰다. 그러자 주한미군 7공군사령부는 한 달여 만인 2017년 6월 26일 레이더를 부대 다른 장소로 옮겼다.
같은 해 여름 서탄면 장등리에서는 주한미군이 세운 콘크리트 옹벽으로 인해 주택과 농경지, 차량 등이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해당지역은 이전까지 미군기지 쪽으로 자연배수 됐지만, 옹벽이 생기면서 물길이 막혀 쉽게 침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당시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주민은 대한민국 정부와 평택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오랜 소송 끝에 피해주민은 보상금액보다 더 많은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2019년 11월에는 미군기지 야간조명으로 인해 인근 논의 벼가 제대로 익지 않아 농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발생한 팽성읍 도두리 일대의 논은 K-6 캠프험프리스 철조망 둘레로 이어진 조명이 야간에도 켜진 탓에 벼가 정상적으로 생육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주민들은 생육기간인 6~8월에만 조명 빛을 줄여줄 것을 요청했지만, 주한미군이 묵묵부답을 일관하면서 결국 농민과 대한민국 정부 간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 평택시의회 평택미군기지연구회 현장활동(2020년 7월 30일)

 

 

■ 주한미군 사건·사고와 지역사회의 대응
주한미군 사건·사고와 관련해 평택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기관은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 평택사무소다.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 평택사무소는 지난 2016년 9월 22일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는 최초로 평택에 문을 열었다. 지역사회가 오랜 기간 요구한 끝에 팽성읍 객사리 팽성레포츠공원 체육관 1층에 들어선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 평택사무소는 설립 당시 주민피해 구제는 물론, 지역사회와 주한미군 간 우호교류에 나서겠다고 밝혀 시민들에게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평택사무소는 ▲2016년 개소 이후 8건 ▲2017년 44건 ▲2018년 상반기 25건 ▲2018년 7월부터 9월 27일까지 13건을 접수 처리하는 등 저조한 민원실적을 기록하면서 그 역할이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력 또한 외교부 파견 공무원 1명과 평택시 공무원 3명 등 4명에 불과했다. 당시 지역사회에서는 평택사무소에 외교부 SOFA 담당관과 경기남부지방경찰서 외사과경찰관, 미군 헌병 등의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평택시도 평택사무소를 주한미군기지 인근으로 신축 이전하고 인원을 충원해 달라고 국회의원실과 외교부 등에 건의했으며, 사무소가 아닌 외교부 산하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의 평택 이전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 평택사무소는 2019년 돌연 ‘SOFA국민지원센터’로 전환하면서 주한미군 사건·사고 해결 지원을 통한 국민의 권익보호라는 본래의 취지가 약화됐다.
현재 주한미군 사건·사고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평택지역 상담센터는 민간에서 운영되고 있다. 평택평화센터는 지난 2018년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도래한 가운데 미군기지로 인한 사건·사고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범죄·피해상담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한미군사건사고상담센터 평택사무소가 존재했지만, 구제 절차가 까다로워 개인이 접근하기 어렵게 되자 시민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직접 상담센터를 개소한 것이다. 미군범죄·피해상담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민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상담을 통해 피해자가 법적 자문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피해 구제 처리 과정을 안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사건·사고와 범죄가 발생할 경우 그 사실을 공론화해 지역과 언론에 알리고 여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 민간단체인 평택평화센터 미군범죄·피해상담센터를 제외하고 주한미군 사건·사고 발생 때 평택시민을 구제할 수 있는 기관은 전무하다. 
행정기관은 평택시국제교류재단, 평택시 한미국제교류과, 경기도-미8군한미협력회, SOFA 민군관계분과위원회 등 ‘협력과 교류’에 치우쳐 있다. 갈등 해결을 위한 행정기관은 단 한 곳도 없다.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협력과 교류, 나아가 상생을 도모하기 어렵다.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한 평택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평택시와 경기도, 대한민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갈등 해결이 선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과의 상생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 글·허훈 기자
편집·김은정 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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