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카프카의 슬픔

 

진춘석

 

가뭄에 하늘 쳐다보듯 한
식솔들을 위하여
오가던 길 하루에도 수차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그레고르 잠자는
달무리 목에 걸고
현관을 들어선
그날 밤의 꿈
목 죄는 엽전 더미 속에서
하얀 신목을 보았는데
비 내리는 아침
몸뚱아리 솜털 구멍마다 솟은
가는 다리
허공을 휘젓는다
돈도 못 버는 꼴에
돈벌레가 되었다고
2평짜리 골방으로
추방된 뒤 감금되었다
식솔들은 주말여행을 떠났고
목 쉰 그레고르 잠자는
그리운 음성을 찾아 헤매다
수많은 다리들 모조리 부러져
파란 피 흘리며
푸하고 숨을 거두었다

 

 

시를 읽다 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카프카의 단편소설 <변신>을 모티브로 한 이 시는 ‘그레고르 잠자’라는 주인공 이름도 소설에서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던 주인공,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 후로는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주인공은 결국 혼자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소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줄거리임에도 이 시가 유독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시에 등장한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네 가장의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늦은 밤 퇴근하는 우리의 가장들, ‘돈도 못 버는 꼴에/ 돈벌레가 되었다고/ 2평짜리 골방으로/ 추방된 뒤 감금되었다’는 대목에서는 그만 울컥 목이 멘다. 벌레처럼 외면당하는 것이 단순히 외형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기에….

임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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