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저수지의 의자들

 

배두순

 

결빙기가 되면 얼음 원탁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침묵이나 주고받는 것이 일이다
하늘마저 얼어붙는 밤이면
늙은 소파들은 막무가내의 혹한 때문에
터진 옆구리를 여미며 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얼음 뚜껑으로 봉해진 저수지에
오늘은 겨울 햇살이 내려와 미끄럼을 타고 있다
어쩌다 햇살끼리 부딪치면 쨍쨍 소리를 내며
얼음판 위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넘어지고 부서진 햇살들
조각난 제 몸을 추스르며 금방 일어선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햇살들은
손에 손을 맞잡고 다시 미끄럼을 타고 논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신나게 논다
어떤 산산조각이 저처럼 빨리 봉합될 수 있을까
산산조각이 결코 생의 끝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물끄러미 지켜보던 저수지의 의자들
고개를 주억거리며 등받이를 흔들거리며
저 빛나는 광경을 오래오래 음미하며 몸을 데운다

 

 

한겨울, 사람이 찾지 않는 저수지에 의자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풍경은 자못 쓸쓸해 보인다. 그러나 꽁꽁 언 저수지 물 위로 내리쬐는 한낮의 햇빛은 그런 쓸쓸함을 일시에 거둬버린다. 얼음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 났던 햇살들은 신나게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그러다 다시 하나로 뭉쳐 투명하게 일어선다. 그 형상이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 같다. 시인은 그 모습에서 “산산조각이 결코 생의 끝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견해 내는데, 그것은 혹독한 삶의 한가운데서 만나게 되는 위로 같은 것…. 그래서일까, 그저 빙 둘러앉아 침묵이나 주고받거나 터진 옆구리를 여미며 잠을 설치던 의자들도 그 모습을 보며 몸을 데우고, 혹한의 겨울을 맞은 것처럼 쓸쓸하던 우리네 삶도 시를 읽으며 얼었던 마음이 녹듯 어느새 훈훈함을 느끼게 된다. 

임봄/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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