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역량 넓히는 ‘평택미술협회’

1973년 ‘진솔화우회’ 활동이 평택 미술계 발판
군청 앞 ‘평택문화원’ 부근은 작가들의 근거지
젊은 작가 영입으로 협회에 생기 불어 넣어야

평택에 처음으로 한국미술협회의 인준을 받은 단체는 3개 시·군이 통합되기 전인 1984년 구 평택미술협회였다. 평택미술협회는 경기도 내 30개 미협 지부 가운데서도 세 번째로 인준을 받았으며 그로부터 6년여가 지난 1990년 11월, 송탄미술협회 역시 한국미술협회로부터 인준을 받아 결과적으로는 평택과 송탄에 두 개의 미술협회가 공식적으로 활동했다.

미술교사가 주축이 된 평택미술협회
1970년대 평택은 문화예술의 싹이 트기에는 아직 척박한 곳이었다. 그러나 1973년 ‘진솔화우회’가 조직되면서부터는 서서히 미술활동가들의 발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진솔화우회’는 1974년까지 이어지다가 1976년 ‘평택미술동호인회’의 기초가 됐으며 ‘평택미술동호인회’는 1980년에 이르러 ‘평택청년미술인회’로, 다시 1982년 ‘평택미술인협회’로 바뀌어 활동하다가 1984년 드디어 ‘한국미술협회 평택지부’로 인준받기에 이른다. 이밖에도 평택에는 한광고등학교 미술부 출신들이 만든 ‘흙’이라는 동아리 외에 2개 정도의 동아리가 더 있어 각각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초창기 평택미술협회의 창립멤버는 조성락·구근만·이진록·최필규·조경순·이완수 씨 등이었는데 평택에서 주로 활동하던 미술인들은 소수의 지역출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외지에서 평택으로 전근을 와 자리 잡은 미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지역에서 활동하던 미술인들과 더불어 동아리 형식으로 활동하다가 미술협회에 가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평택미술협회는 조성락 씨가 초대회장과 2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3대 최필규 씨, 4대 이진록 씨로 이어지다가 1995년 송탄시와 평택시·군이 통합되면서 ‘평택미술협회’로 새롭게 출발해 통합 초대지부장으로 다시 이진록 씨를 지부장에 선출했다. 1997년 통합 2대 지부장은 황제성 씨가 취임했다.
당시 평택미술협회는 서양화분과와 한국화분과, 디자인분과, 서예분과, 조소분과, 공예분과 등으로 구분돼 있었으며 구근만·이계송·황제성·이진록·김동찬·조성락·최필규·조경순·이완수·김은숙·이태용·유혁상·박석준·이규남·김종구·조순조·구성호·임남재·남기택·이성한·권유현 등 많은 젊은 작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김경숙·정완규·김은주 등 5~6명이 모인 여성작가들의 모임도 처음으로 결성돼 활동했다.

지방 최초의 전국 규모 미술공모전
평택의 유일한 전시공간은 평택군청 길 건너편 복지관 옆에 있던 평택문화원과 평택우체국이었다. 때문에 문화원 근처에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많았으며 초대지부장이었던 조성락 씨의 작업실도 문화원 맞은편에 있었다.
1984년 평택미술협회의 첫 번째 전시회도 평택문화원 전시실에서 개최됐다. 당시만 해도 미술 전시라는 개념이 생소하기만 했던 평택에서 작가들의 작품이 걸리자 시민들은 신기해하고 많은 호기심을 갖긴 했지만 정작 전시장에 들어와 구경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기웃거리다 돌아가는 일이 다반사인 어른들 대신 학생들이 많이 찾았는데 이들은 미술작품 관람예절까지는 미처 익히지 못했던 까닭에 그림 밑에 스카치테이프로 꽃이나 초콜릿 등을 붙이고 가는 등 엉뚱하면서도 정감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소사벌미술대전은 1996년에 지방 공모전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전국적인 규모로 시작했으나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는 등 급성장을 이뤘다. 첫 해에는 미술협회가 개최하기로 결정했으나 실행과정에서 평택예총이 주최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가 1998년부터 행사의 주최가 미술협회로 넘어왔다.
소사벌미술대전이 개최되면서 국전보다 더 많은 참여가 이뤄지는 등 전반적인 성공을 이끌어내자 이후 각 지방에도 우후죽순으로 전국규모의 공모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소사벌미술대전은 평택이라는 지역과 평택의 미술인들을 알리는 데도 톡톡히 한몫을 했는데 공모전 개최로 인해 평택에 미술작가들이 많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서울 쪽으로 진출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겼으며 젊은 시절 소사벌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은 학생 중에는 이후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각종 미술전시 에피소드도 많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도중에는 사고도 많고 기억나는 일도 많습니다. 특히 보석공예 전시 중에는 분실되는 경우도 있고 도자기류가 전시될 때는 깨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림은 떨어져 파손되기도 하고 세워둔 철근 조각품들은 고의에 의해 쓰러지는 일도 있습니다. 외부 작가들의 작품일 경우 평택미술협회 회원들이 전액 변상을 해야 하는데 그 금액 또한 만만치 않죠. 더 많은 예술작품들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인데 그런 일이 생기면 참 허탈합니다”
김종구 지부장은 현재 작품전시회를 할 때마다 작가들에게 작품파손 동의서를 받는다며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기본적인 예절을 모두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현재 평택미술협회에는 젊은 회원들의 영입이 없는데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주의가 강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지만 김종구 지부장은 협회의 필요성을 더 활발히 알리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분석한다. 평택미술협회는 이러한 분석에 따라 올해는 좀 더 활발하게 젊은 작가들의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
4월 야외조각전을 비롯해 5월 소사벌학생미술실기대회, 국제아트페어 등 많은 행사들을 앞두고 있는 평택미술협회는 올해 특히 지역을 위해 재능봉사를 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고 평택의 역사 속에 어우러져 미래를 위해 한발 한발 전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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