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미술 대중화 위해 봉사하겠습니다”

 

20여 년 간 진위고교 미술교사 재직
지역 미술 대중화 위한 지속적 봉사

 

 

“평택 지역사회의 미술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미술을 전공하다

송탄 지산동 옛 좌동교회 근처 고향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태용(65세) 화백은 교단에 섰던 아버지 밑에서 엄한 가르침 아래 성장했다.

이따금 함께 밥상 앞에 앉게 되면 좋아하는 국수를 먹으면서도 무얼 먹는지 모를 정도로 아버지는 그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버지가 제 담임이셨는데, 저를 워낙 엄하게 훈육하시다 보니 교장 선생님께서 담임교사를 다른 분으로 바꾸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굉장히 엄하고 보수적이었지만, 대문 밖 세상은 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산동은 미군과 기지촌 여성이 즐비한 개방적인 동네였다.

“어린 시절 비교적 내성적이었는데, 집과 동네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라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중학교에 다닐 당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동질감을 느꼈죠”

중학교 시절 수원으로 유학을 떠난 이태용 화백은 그림에 두각을 보였고,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유학 생활에 입시학원까지 다닐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던 이태용 화백은 선생님의 배려로 후배들을 가르치는 대신 무료로 입시 지도를 받기도 했다.

이후 동국대학교 미술학부에 진학한 그는 이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고미술을 전공하며 극사실주의, 조각, 서양화 등 다양한 분야에 빠져들게 됐다.

 

미술을 가르치다

대학 시절 이태용 화백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작한 화실이 잘 운영되면서 어렵지 않게 생활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삼성동 봉은사 인근의 한 아파트 지하차고를 빌려 화실을 운영했습니다. 공간이 넓진 않아 10명이 채 되지 않는 학생을 가르쳤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직장인들도 찾아올 만큼 운영이 잘 됐죠”

졸업 후 본격적으로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그는 1987년 수유리에서 운영하던 화실을 내놓는 과정에서 아내 김은숙 화백을 만나게 된다.

“화실을 잠실로 이전하기 위해 내놓았는데, 이때 찾아온 사람이 아내였습니다. 이때 닿은 인연으로 불과 두 달 만에 결혼했죠”

결혼 후 아내와 함께 화실을 운영한 이태용 화백은 1992년 고향 송탄으로 내려왔다.

“잠실지역의 전세금이 너무 급격히 올라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을 고민하다가 연로하신 부모님이 걱정돼 결국 송탄에 오게 됐죠”

서울 건대부속고등학교 시간강사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던 그는 이듬해부터 진위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교단에 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서양화와 조각, 디자인, 한국화까지 두루 섭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교단에 선 이태용 화백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아닌 일반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로는 더 좋은 미술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과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죠”

미술부를 지도하면서 몇몇 재능 있는 제자들을 미술대학에 보내기도 한 그는 2016년 명예퇴직을 결심하면서 교단에서 내려왔다.

 

미술 대중화에 앞장서다

퇴직 이후 작품 활동에 몰두한 이태용 화백은 사업자등록을 낸 뒤 교사와 학생을 위한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벽화 사업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평면작품은 인간과 자연을 테마로, 시사성 있는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왔습니다. 입체작품의 경우 식기와 생활용품을 서로 엮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내는 작품 활동을 이어왔죠”

이태용 화백의 미술 활동에 근간이 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다. 그는 작품에 인위적인 움직임보다는 자연적인 움직임을 가미해왔다.

“사물의 본질, 또 물질이 가진 내면의 진실한 색채를 끄집어내 조화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탄미술협회장으로 활동했던 이태용 화백은 작품 활동 이외에도 박석수기념사업회와 검찰시민위원회, 평택미술협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평택시민예술대학에서는 무려 20년 넘게 활동하며 현재도 서양화 야간반 강사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무엇보다 미술이 대중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시민의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역 미술의 대중화를 이루기 위해 예술인들과 시 행정, 시민들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봉사를 지속할 계획이다. 이태용 화백의 노력으로, 평택 지역사회에 미술 대중화가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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