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민속악 활성화 보탬될 터”

 

한농선·성우향·신영희 명창 사사
2016년 판소리 춘향가 이수 받아

 

 

 

“평택시민이 판소리를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판소리에 입문하다

어린 시절부터 목청이 남달라 음악에 소질을 보였던 도건영(50세) 소리꾼은 중학교 시절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조상현 명창의 공연을 보고 국악에 매료됐다.

“조상현 선생님 소리를 듣고 굉장히 감명 받아 판소리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마침 고교 진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께서 노래를 잘하니 예고에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죠”

이전까지 국악을 배운 적이 없었지만, 시험을 치러 당당히 합격한 그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절반은 지방에서 올라오거나 이미 오래전부터 판소리를 배운 전공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출신으로 이전까지는 판소리를 배운 적이 없어 더 열심히 했죠”

도건영 소리꾼은 학교 교육 이외에 별도로 한농선 명창을 찾아가 사사했다. 한농선 명창은 자신의 집에서 먹고 자며 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할 정도로 그를 예뻐했다.

“제가 재수하던 시절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생님께서 저를 집으로 불러 동고동락하며 소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결과 추계예술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죠”

도건영 소리꾼이 진학할 당시 동기 중 판소리 전공자는 단 두 명이었다. 게다가 추계예술대학은 궁중음악인 정악을 주로 양성해 판소리를 전공했던 그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 시절에는 폭넓게 활동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강의만 열심히 들었었죠. 그 시절 대학과는 별도로 성우향 선생님을 찾아가 사사하기도 했습니다”

 

평택에 정착하다

도건영 소리꾼은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객원으로 활동했다. 졸업하던 해에 국립국악원과 국립창극단 모두 단원을 선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업하고 1년이 지난 뒤 충남도립국악원에서 단원을 뽑아 시험을 치렀습니다. 다행히도 합격해 1996년부터 충남도립국악원 상임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그는 충남도립국악원 상임단원으로서 굉장히 많은 공연 활동을 펼쳤다. 충청남도는 물론, 멀리 남미까지 날아가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등지에서 열린 순회공연에 참여하기도 했다.

“많은 공연 활동을 하는 것이 행복하기는 했지만, 지방생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교통편이나 생활여건이 굉장히 불편했죠. 결국 1년 반 만에 충남도립국악원에서 나왔습니다”

충남도립국악원에서 나온 뒤 결혼한 도건영 소리꾼은 남편을 따라 평택에 정착했다.

“평택에 온 뒤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발하는 국악예술강사 자격으로 지역 학교로 파견 교육을 나갔습니다. 국악예술강사 활동은 20년 넘게 지금도 이어가고 있어요”

교육 활동과 함께 평택지역 국악인 단체 ‘심풀이’ 회원으로도 활동한 그는 여러 차례 봉사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춘향가 이수자가 되다

도건영 소리꾼의 첫 스승이자 흥보가를 가르친 한농선 명창은 2002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지정되고 불과 2개월 만이었다.

보유자의 경우 3년이 지나야 이수증을 줄 수 있는 자격이 생겼기에 그는 오랜 기간 가르침을 받고도 이수자가 될 수 없었다.

“2007년 신영희 선생님을 찾아가 사사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2006년에 태어났는데, 매번 가르침을 받을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정말 힘들었죠”

쉽지 않은 상황에도 판소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도건영 소리꾼은 계속해서 신영희 명창에게 사사했다.

결국 2013년 3월 신영희 명창이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지정되고 3년이 지난 2016년 3월 16일 그는 이수증을 받을 수 있었다.

“신영희 선생님께서 보유자가 된 뒤 가르침을 받으면서 매번 공부한 것을 일지로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3년간 노력한 끝에 이수자가 될 수 있었죠”

도건영 소리꾼은 이수자가 된 뒤 계속해서 신영희 명창과 함께 공연을 펼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교도소에서 펼친 공연입니다. 신영희 선생님은 봉사의 의미로 전국의 교도소에서 공연을 열었는데, 저도 선생님을 따라 여러 차례 공연에 참여한 경험이 있죠. 멀리 제주도까지도 다녀온 기억이 있습니다”

도건영 소리꾼은 지금도 매일같이 소리를 연습하고 있다. 소리를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 소리꾼으로서 그의 첫 번째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누구나 쉽게 우리 소리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도건영 소리꾼의 바람이다. 무엇보다 평택시민이 판소리나 민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이러한 도건영 소리꾼의 바람과 같이 평택지역에 전통 민속악이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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