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 자수성가한 ‘외유내강’ 사업가

자전거로 아산 인주면까지 과자 배달
밤잠 안자가며 타이어 사업에 매진해

 
사업가가 40여 년 동안이나 한 우물만 판다는 것은 대단한 뚝심이나 소신, 끈기가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업은 그때그때의 굴곡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고 그에 따라 마음가짐이나 주변상황도 항상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과 역경들을 이겨내고 오로지 한길을 걸어 오늘에 이른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를 이겨내는 힘이 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70평생
“전남 구례에서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태어나 갖은 일들을 하며 고등학교까지 마쳤습니다. 구례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 까지 살았고 그 이후부터는 일흔 중반이 된 지금까지  50여년이 넘도록 평택에서 살았으니 이젠 평택사람이나 다름없지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신문배달 등을 하면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고등학교를 마쳤던 평택항발전협의회 한강희(75) 회장은 평택으로 올라와 처음 시작한 장사가 과자배달이었다고 말한다. 교통수단조차 변변치 않았던 60년대 초반 한강희 회장은 자전거를 타고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 있는 한 초등학교 매점까지 과자를 배달하곤 했는데 자갈길을 달려 인주에 도착하면 과자는 어느새 부스러기로 변해 물건을 전부 떨이로 넘겨야만 했었다고.
“과자 장사부터 시작해 사업에 눈을 뜬 저는 군대 다녀온 후 현재 ‘한국타이어’가 있는 신대동에서 배터리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사가 생각지도 않게 잘 된 덕에 1973년부터 한국타이어를 시작했지요. 그때 시작한 한국타이어를 지금도 하고 있으니 어느새 한 장소에서만 50여 년 동안 장사를 한 셈이네요”
한강희 회장은 오로지 한 가지 사업으로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수많은 시련들이 지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 앞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신념으로 불철주야 일에 매진했던 한강희 회장은 함께 있는 아내조차 자신에게 잠을 언제 자느냐고 물어올 만큼 사업을 향한 그의 열정과 집념을 불태워 동종업계 사이에서는 ‘서울 밑 최고의 거상’이라 일컬을 만큼 사업가적 기질을 인정받았다고.

배움을 향한 열정은 아직도 20대
“사업을 하는 동안 로타리클럽이나 세교동바르게살기운동 위원·청소년선도위원회 위원·범죄예방위원회 위원 등 지역을 위한 봉사와 선도활동에도 참 많이 참여했었습니다. 청소년선도위원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평택의 청소년들을 위해 강의도 했었는데 특히 한광중학교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의했을 때는 제 경험담을 들려주며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었지요”
겉모습은 한없이 부드럽고 약해 보이지만 누구 앞에 있어도 결코 떨지 않았다는 한강희 회장은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해 강의하던 때가 참 좋았다며 활짝 웃는다. 그에게도 학창시절 배움에 대한 목마름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갈등했던 시절이 아프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50대가 되어서 중앙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기도 했고 평택대학교에서 야간에 컴퓨터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컴퓨터를 모르면 장사를 못하는 때가 올 거라는 말이 있었거든요. 그 말이 맞긴 했지만 그때 컴퓨터를 배워 지금도 사용하고 있으니 참 잘 한 일이지요. 지금도 핸드폰 기능들을 배워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강희 회장에게 있어 배움은 생활의 어려움도 감내할 만큼 큰 것이었으며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집념은 배움을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그는 현재도 평택항발전협의회장을 맡고 난 뒤 평택항에 관한 모르는 용어나 업무에 관한 일들은 꼼꼼하게 챙겨 읽으며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평택항 발전에 남은 혼신 다할 것
“저는 평생 사업만 하던 사람이라 평택항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평택항에 대한 관심을 갖다보니 평택항의 발전만큼 평택의 발전을 좌우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평택항발전협의회는 현재 30~40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한강희 회장은 평택항발전협의회는 평택항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회원이 돼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하며 이젠 평택항을 어느 정도의 수준에 끌어올려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평택항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시내에서 평택항까지의 접근성을 높여야 하는데 교통이 불편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와도 교통이 불편하고 여정을 풀 수 있는 곳도 없어 어려움이 많지요. 또 경기평택항만공사와 평택시항만지원사업소·평택해양항만청 등이 모두 같은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현재는 전부 따로따로 일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힘이 합해진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도 평택항발전협의회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한강희 회장, 그러나 일흔이 넘어서면서부터는 이제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살아야겠다고 말하는 한강희 회장은 평생을 철인처럼 일하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왔지만 가장 인정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런 자신의 곁에서 묵묵히 직원들 밥과 빨래를 해주며 궂은 일 마다 않던 천성이 착한 아내라며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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