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처음 토진1리 이장 맡아
올해까지 임기, 정주여건 개선 노력

 

“공동체의식을 되찾아 토진1리를 정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혹독한 홀로서기

견학수(67세) 평택시 청북읍 토진1리 이장은 과거 토진1리는 가난하지만, 정 많고 따뜻했던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제가 어릴 적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사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빴습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가난한 시골동네였죠. 그래도 이웃끼리 왕래하며 서로 정을 나누는 따뜻한 동네였습니다”

견학수 이장은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집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학교에서 발표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정말 내성적이었는데, 선생님의 도움으로 많은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김흥운 선생님이셨는데, 저를 굉장히 믿고 지지해주셨죠. 덕분에 청북초등학교 전교회장까지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앞가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효명고등학교 전기과에 진학한 그는 송탄에서 누나와 단둘이 살며 설움을 겪기도 했다.

“당시 누나도 고등학생이었는데, 도시락을 싸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해 3년 내내 점심을 굶었습니다. 가정방문을 온 선생님은 낡고 좁은 자취방을 보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죠”

견학수 이장은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반응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생활기록부에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정방문 당시 저를 꾸짖은 선생님이 3년 내내 담임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생활기록부에도 좋지 않은 내용들을 가득 적으셨죠. 덕분에 취업을 포기하고 바로 입대했습니다”

고향마을을 지키다

견학수 이장은 전역 후 집에 돌아와 4개월간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스물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밥만 먹고 방에 들어와 천자문을 외웠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 아버지께 농사를 짓겠다고 말씀드렸죠. 후회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괜찮다고 말씀드렸더니 이튿날부터 제게 모든 일을 맡기셨습니다. 심지어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말씀 없으셨죠”

그는 이러한 아버지를 보며 더욱더 자립심과 책임감을 키울 수 있었다.

“결혼 직전 비닐하우스를 지어 채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3년째 되는 해에 농사를 포기했죠. 일손이 모자라 아내가 막내를 엎고 큰아이 손을 잡고 하우스에 나왔는데, 이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견학수 이장은 농사를 접고 건설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매일 서울까지 출퇴근하며 사업장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3년 6개월 만에 사업을 접고 한 건설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월급쟁이를 하면서 신세계를 맛봤죠.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지난 2005년 토진1리가 오성산업단지 사업 부지에 수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20여 년간 근무한 회사를 그만뒀다.

“원래 우리 마을이 수용될 것이 아닌데,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부지가 바뀐 것을 우연히 알게 됐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주민들과 목숨을 걸고 투쟁했습니다. 결국 마을을 지켜냈고, 저는 다시 농사를 짓기 시작했죠”

토진1리 이장을 도맡다

견학수 이장은 지난 2013년 처음 이장을 맡았다. 가족들의 강한 반대에도 그는 어린 시절 마을 모습을 회상하며 토진1리를 다시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마을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협심증으로 생사를 오간 적이 있어 가족들은 반대했지만, 어린 시절 내 고향마을 모습을 되찾기 위해 이장을 맡았습니다. 또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위해 농업 현대화를 이뤄내고 싶었죠”

정이 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마을 길을 확장하거나 마을의 외형을 가꾸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꿈꿨던 정이 넘치는 마을을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죠. 5년이 지나니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미웠습니다”

이후 2년간 이장직을 내려놓은 견학수 이장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후임으로 온 후배가 그만두면서 다시 이장을 맡게 됐습니다. 올해까지가 임기인데 무엇보다 공동체의식을 되찾아 정이 넘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에요”

이외에도 그는 노령인구만 남은 마을의 정주여건을 개선해 다음 세대가 지속해서 마을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인근 오성면 양교리에 들어서는 레미콘공장 입주 반대 활동도 이러한 이유에서 이어 나가고 있다.

견학수 이장의 바람처럼 토진1리가 과거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마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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