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 투쟁
2017년 복직, 2022년 12월 정년퇴직

 

“어렵고 힘든 노동자들의 곁에서 힘이 되겠습니다”

 

쌍용차에 입사하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맞이해 쌍용자동차를 떠난 김수경(61세) 씨는 어린 시절 팽성읍 본정1리에서 제일가는 꼬마대장이었다.

“어린 시절 별명이 프로레슬러 ‘김일’이었습니다. 친구들과 5대 1로 레슬링을 해도 항복을 받아낼 정도로 힘이 쌨죠. 학교 씨름 대표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교단에 섰던 아버지는 일찍이 세상을 떠나셨고, 어머니는 홀로 사남매를 키우셨다. 막내였던 그는 평생 자식 뒷바라지하며 고생한 어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경영학을 전공해 좋은 기업에 들어가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 혈기 왕성한 시기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죠”

학업을 중단하고 입대한 김수경 씨는 전역 후 평택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고향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지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쌍용자동차에서 사원을 모집하니 함께 지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농사를 짓기 위해 이를 고사했지만, 결국 1년 뒤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위해 쌍용자동차에 입사했죠”

1989년 3월 그가 입사할 당시 쌍용자동차는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를 판매해 인기를 끌었고, 지역에서도 대기업으로서 인지도를 점차 넓히고 있었다.

“쌍용자동차에 다닌다고 하면 외상을 달아줄 정도였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인으로 인정받았죠”

 

노동환경 개선에 앞장서다

김수경 씨는 입사와 동시에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당시는 회사에 들어오면 노조에 자동으로 가입되는 구조였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며 점차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현실을 깨달았고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앞장서기 시작했다.

“휴게시간과 수당 등 다른 회사와 비교했을 때 불합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잔업을 거부하기도 했죠. 결국 제가 제기한 문제가 단체협약 안건으로 상정됐고, 노동자 처우 개선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김수경 씨는 쌍용자동차에서 근무하다가 간질환을 앓게 된 동료의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다.

“분명히 산업재해라고 생각했습니다. 확신이 있었기에 직접 의사를 찾아다니며 인과관계를 밝혀냈고, 결국 그 동료는 산업재해를 인정받을 수 있었죠. 내과 질환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것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2003년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은 조합원총회를 열고 투표를 진행해 상급단체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으로 전환했다.

“사회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이 활발했고, 쌍용자동차 내부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결국 민주노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자를 위한 결정이었죠”

 

투쟁과 복직, 그리고 퇴직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경기도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던 김수경 씨는 이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과 마주했다.

2006년쯤 교통사고로 생사를 오간 그는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사태라는 최악의 순간을 맞이했다.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속된 말로 ‘먹튀’를 했습니다. 이후 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사태가 발생했죠. 저는 입대를 앞둔 아들을 데리고 어머니를 뵈러 가던 도중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당시 2646명, 쌍용자동차 전체 직원의 36%를 해고하는 대규모 인력감축안이 발표되면서 노동자들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저는 차라리 해고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해고된 동료들을 위해 투쟁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죠”

김수경 씨는 점거투쟁 당시 경찰이 쏜 쇠 볼트에 맞고 한쪽 팔이 온통 최루액으로 젖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동료들 곁을 지켰다.

“단전, 단수는 물론 헬기 저공비행으로 잠드는 것까지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공장을 지켰어요”

결국 해고된 채 회사를 떠나야했던 그는 일용직, 공공근로, 버섯농장, 상조 등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매일 출근투쟁에 참여했고, 3주간에 걸친 단식투쟁, 오체투지 등 복직을 위한 투쟁을 지속했다.

김수경 씨는 이러한 투쟁을 거쳐 2017년 4월 19일 해고 후 8년 만에 일터를 되찾을 수 있었고, 5년간 근무한 뒤 2022년 12월 31일 정년을 맞이해 다시 일터를 떠났다. 퇴직 이후에도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지속하며 어렵고 힘든 노동자들의 곁에서 힘이 될 계획이다.

김수경 씨가 우리사회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한 줄기 빛과 소금이 되기를 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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