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평택군 공무원 임용
작년 6월 농기센터 소장 취임

 

“지속해서 평택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농업과 함께 한 성장기

김영창(59세) 평택시농업기술센터 소장은 안성시 대덕면 죽리 외평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당시 외평마을은 한 주민이 토마토 시설원예로 큰 소득을 올리자 붐이 일어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시설원예를 시작했다.

“저희 집도 시설원예를 시작해 토마토와 오이, 시금치를 키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비닐과 철 구조물을 세우기가 힘들어 대나무로 뼈대를 세우고, 창호지에 촛농을 발라 직접 하우스를 만들었죠”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농사기술을 배운 김영창 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농협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안성농업전문대학 농업경영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군에 다녀와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한데 어느 날 친구가 공무원 시험을 함께 준비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독서실에서 친구와 함께 공부했죠”

그는 1988년 4월 친구와 함께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

“그해 안성시에서는 농업직 공무원을 뽑지 않아 고모님들이 많이 계셔 친숙했던 평택군에 지원했습니다. 친구는 화성군에 지원했는데 안타깝게도 떨어지고 저만 합격했죠”

 

평택시 살림꾼이 되다

김영창 소장은 1988년 8월 첫 발령을 받아 평택군 서탄면 총무계에서 근무했다.

“첫 담당업무가 새마을사업이었는데, 공들여 심은 꽃이 죽어 부녀회장님께 혼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행정업무를 익히기 위해 원평동에 사는 막내 고모부를 찾아가 일을 배우기도 했죠. 무엇보다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서탄면에서 8개월간 근무한 뒤에는 평택군 감사계에서 일하며 행정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농업직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행정업무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1990년 결혼 후 팽성읍에 가서도 총무계에서 일했죠. 농업 관련 업무는 1993년 평택군 산업과에 발령받으면서 처음 시작했습니다”

김영창 소장은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평택을 방문할 당시 3개월간 사전 준비를 담당했다.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인적사항부터 대통령 동선 점검까지 꼬박 3개월간 준비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1995년 3개 시·군 통합 직후에는 오성면 ‘인구주택총조사’를 도맡기도 했다.

“7급 진급 후 오성면 총무계에서 일하며 회계·통계·사회·보건 등 여러 업무를 도맡아야 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가 가중되니 주민 몇몇을 선발해 ‘인구주택총조사’를 추진했죠. 그 결과 중국 관계자들이 선진지 답사를 올 정도로 훌륭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평택시 농업 정책을 일구다

김영창 소장은 1997년 평택시 농업정책과에 발령받은 뒤 본격적으로 평택농업에 헌신했다.

당시 마주한 대양학원 토지분쟁 사건은 주민 148명과 그 가족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에 그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 이후 팽성읍 신대리에 정착한 철원군 피난민들이 직접 간척한 농지 135만㎡(41만 평)를 두고 세종대학교 학교법인인 대양학원이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일어난 분쟁이었습니다. 정부와 경기도가 중재에 나선 가운데 평택시도 여러 방법을 동원해 주민들을 지원했고, 제가 담당한 지 7년이 지난 뒤에야 분쟁이 종결됐죠”

그는 농업정책과에서 근무하며 ‘평택 농업인대상’ 제정을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평택농업을 빛낸 사람들을 직접 찾아 정리하면서 평택시 차원에서 농업인대상을 수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했습니다. 이후 평택 농업인대상에서 수상한 농업인들이 신지식농업인 등 경기도나 중앙부처에서 상을 타는 사례가 늘어나 너무나도 뿌듯했죠”

이외에도 김영창 소장은 지역특화품목으로 블루베리를 육성했고, 쌀생산단지 조성과 슈퍼오닝 브랜딩을 통해 중저가미로 알려졌던 평택쌀을 지역 우수 특산품으로 알리는 데 앞장서며 평택농업에 기여했다.

“30~4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습니다. 선배님 중 한 분이 저에게 사무실에서 100점, 집에서는 0점이어서 평균 50점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죠. 농민회관 사업을 10년 가까이 추진하면서는 당뇨병이 생길 정도로 건강이 악화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창 소장은 작년 6월 30일 평택시농업기술센터 소장으로 발령받은 뒤 현안 사업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방관하기보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자세는 소장이 된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올해 퇴직을 앞둔 그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민으로서 농업에 기여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김영창 소장이 오래도록 평택농업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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