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체험농장의 선두주자 ‘어린이학농원’
1964년 ‘학농원’으로 시작, 어린이의 건강한 미래를 꿈꾸다

▲ 어린이학농원 개원 초기 손모내기와 어린이들의 체험학습
▲ 어린학농원 눈밭에서 뛰어노는 어린이들
지금은 평택에만 해도 수십 곳에 다양한 체험농장이 운영돼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자연과 더불어 땅의 소중함과 농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제적 기반이 채 완성되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 평택에는 이미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어린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목적으로 체험농장이 설립돼 ‘어린이학농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1971년 진위면 동천리에 어린이학농원 설립
평택군 진위면 동천리에 위치한 2만여 평의 ‘어린이학농원’은 전국의 체험학습장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故 이범식 교수와 고등학교 교사였던 박인선(86) 여사 부부는 이범식 교수가 평소 교육 사업에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지인이 자신의 땅을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부탁함에 따라 1968년 평택에 내려와 각 학교 교장선생님들로 구성된 65명의 회원명의로 황무지였던 땅을 일구기 시작했다.
당시 이범식 원장은 자비 3700만 원을 들여 본관 건물을 비롯해 식당과 풀·농구·배구코트·야외무대·전원음악실·청소년 기숙사 등의 시설을 마련했다. 또한 이범식 원장은 매년 캠프 시즌마다 겪게 되는 적자를 부인 박인선 여사가 서울 정동 MBC 본관 앞에서 운영하던 레스토랑 ‘이탈리아노’의 수입으로 메우면서도 이런 방법으로 어린이교육에 투자할 수 있어 기쁘다며 흐뭇해했다고 한다.
이범식 원장은 체험농장이나 캠프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어린이를 위한 교육장을 선보이며 한창 도시화 되는 곳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일본보다 먼저 어린이 체험농장을 생각해 10여년을 무료로 개방했다. 남편을 내조하며 실질적으로 농장을 돌봤던 박인선 여사는 ‘어린이학농원’ 설립 초기 학교에 재직할 당시 운동장 수업을 하던 경험을 떠올려 무작정 체험농장을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주변에 진위천이 흐르고 온통 논과 밭으로 둘러싸여있어 어린이 체험농장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던 어린이학농원은 주로 대도시 어린이들을 유치해 땅의 소중함과 농사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자연과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 중앙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의 흥부와 놀부 연극을 관람하는 어린이들

‘제2회 색동회상’을 받은 故 이범식 원장
故 이범식 원장은 평택에 내려와 어린이학농원을 운영한지 6년째 되던 1977년, ‘제2회 색동회상’을 받았다. 색동회는 소파 방정환 선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아동문학 동인단체로 1976년부터 색동회상을 제정해 어린이 문화운동과 인권운동을 전개하는데 탁월한 공을 세운 인물에게 상을 수여했다.
어린이 스스로가 손과 몸을 움직여서 배운다는 이른바 페스탈로치의 노작 교육을 이 땅에 뿌리내려보겠다는 한결같은 집념으로 청춘을 불살라온 故 이범식 원장은 ‘교육의 기본은 자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즉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개발하며 자연을 탐구하는 것이 모든 학문의 원점’이라는 철학으로 어린이 교육에 힘썼고 이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어려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글방을 열어 친구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이범식 원장은 신교육 물결이 농촌벽지까지 스며들 무렵 동네 독립운동가의 권유를 받고 야학을 열었으며 학교를 못가는 이웃 어린이들을 모아 우리말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범식 원장은 어린이교육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일본 와세다 대학에 유학할 당시 고등사범부에서 공작교육을 공부했으나 갑작스러운 가정의 몰락으로 꿈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범식 원장이 어린이 과학교육에 뜻을 두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은 해방이 되던 1945년부터다.
해방과 동시에 귀국한 이범식 원장은 조복성·백쌍암 씨 등과 함께 ‘소년과학협회’를 조직해 전국의 국민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공작교육 강습을 실시하는 한편 각종 공작실습교제를 제작 공급하기도 했다. 국민 학교 1학년 때 색종이 접기로 시작해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판지다루기·나무와 쇠붙이 다루기에 이르기까지의 공작 교육과정이 이때부터 새로운 이론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학생 공작교육에 많은 공헌을 했던 이범식 원장은 1964년부터 ‘학농원學農園’이라는 학생계몽단체를 조직해 ‘5백만 학도의 푸른 행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해바라기와 피마자 심기운동을 전개해 큰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1977년 5월 7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이범식 원장의 인터뷰 내용에 의하면 “요즘 어린이들에 비하면 옛날 학생들은 퍽 우울했다. 꿈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옛날 학생들에 비해 행복할지 모르지만 도시의 공해와 치열한 입시지옥을 겪고 있는 걸 보면 측은하다. 그래서 요즘 어린이들에겐 한층 자연교육이 아쉽다”고 전한다.

▲ 입소한 어린이들의 극기훈련 모습

도시아이들 대상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당시 평택의 어린이들은 집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체험농장과 비슷했기에 초창기 어린이학농원을 이용하던 대상은 주로 서울이나 인천 등 대도시 YMCA 어린이 회원들과 대교·웅진 등의 출판사, 각계 사회단체 등이었다.
7개월간 밭을 빌려주고 매월 한 차례씩 실습하던 ‘어린이 농사캠프’와 6월부터 8월까지 1박 2일씩 농장생활을 체험하게 하는 ‘여름 유아캠프’가 주종을 이루던 어린이학농원은 각종 사회단체나 사회체육기관·초등학교·유치원들이 앞 다퉈 단체예약을 하며 북새통을 이뤘다.
1993년 5월 31일자 동아일보 지면에는 평택 어린이학농원이 1992년보다 50% 참가자가 늘어나 1만 5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으며 같은 해 7월 8일자 매일경제 기사에는 대교출판사와 웅진출판사가 어린이학농원에서 독서교실과 삼림욕·별자리 관찰·편지 쓰기, 어린이가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촌극과 독서 토론회·백일장 등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어린이학농원에서 1989년 부모와 함께 하는 ‘외둥이 캠프’를 실시하기도 했는데 혼자 자라는 어린이들이 단체생활을 익히고 소집단간의 사랑을 다질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마련됐다.
각 단체에서 운영하던 프로그램 외에도 당시 어린이학농원에서는 해마다 타이틀을 내걸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물을 일부 막아서 물고기를 길러보는 ‘물 맑게 하기 운동’, 태극기를 100여개 걸어놓고 나라사랑에 대한 강연을 하던 ‘나라사랑의 해’, 진위면 동천리 주변을 걸어서 답사하던 ‘국토행진’ ‘소달구지 타기’ ‘농악놀이’ ‘그림그리기 대회’ ‘사진촬영대회’ 등 다양한 주제들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고 또한 각 단체 모임도 어린이학농원에서 상당수 진행되곤 했다.
박인선 여사는 당시 아이들이 물에서 놀다 옷이 젖어 벗은 채로 난로 가에 모여들면 송탄시장에 나가 염가의 옷들을 수십 벌 사다가 아이들에게 입혔는데 아이들은 새 옷을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무척 좋아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1979년 진위천이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처음에는 물이 오염되지 않아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린이학농원은 점차 다양한 규제로 인해 어린이들이 마음대로 물에 나가 놀지 못하는 등 프로그램 운영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자 하루에도 1000여명이 넘게 어린이학농원을 이용하던 수요는 1976년에 생긴 ‘용인자연농원’의 놀이시설로 이동하는 경우가 속출했고 이후 1999년 많은 어린이들이 화재로 숨진 ‘화성 씨랜드 사건’이 발발하면서 그 여파가 어린이학농원에도 이어져 농장을 찾는 어린이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또한 2000년에 개원한 인근 무봉산청소년수련원으로 어린이 수요가 분산되면서부터는 농장 운영이 예전에 비해 점차 더 어려워졌다.
어린이학농원 운영이 어려워지자 박인선 여사는 2002년 서울 <이탈리아노> 레스토랑에서 쓰던 집기들을 다시 꺼내 그때와 똑 같은 간판을 내걸고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아흔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매일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올라가 40여년 단골집에서 식자재를 구입하는 박인선 여사는 남편과 함께 어린이학농원을 운영했던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어린이학농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고심 중이다.
평택지역은 물론 전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어린이학농원, 아이들은 흙을 밟고 자연과 더불어 성장해야 한다는 한결같은 철학을 가진 어린이학농원의 역사는 곧 평택지역의 역사가 된다.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 현재의 주춤한 모습이 못내 안타까운 것은 비단 시민 한두 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 어린이학농원 설립자 이범식·박인선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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