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지부장·민주노총 위원장 역임
복직 후 정년퇴임, 권리찾기유니온 활동

 

“모든 노동자가 평등하게 법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노동운동을 시작하다

한상균(61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지도위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작은 시골마을에서 3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한학을 공부하셨습니다. 저는 유난히 독서를 좋아했는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중에서도 고전을 좋아했죠”

한상균 지도위원은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일찍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결국 고교 졸업 후 1년간 학비를 마련하며 재수 생활을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1년 만에 입대를 결심했다.

전역 후에는 짐 한 보따리만 들고 부산으로 넘어갔고, 1985년 한국 최초로 지프를 조립한 ‘주식회사 거화’에 입사했다.

“입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동아자동차에 합병되면서 평택으로 올라왔습니다. 동아자동차는 또다시 쌍용그룹에 인수됐죠. 당시 근무환경은 굉장히 처참했습니다”

군대식 체계가 난무하고, 인간의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근무환경과 마주한 한상균 지도위원은 노동조합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다.

 

쌍용차 조합원을 대표하다

한상균 지도위원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쌍용자동차노동조합추진위원장을 맡아 노동조합 설립에 앞장섰다.

“직원들은 저임금을 받고 주말도 없이 연장근로에 혹사당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순응하며 지냈습니다. 이러한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져 노동조합 결성을 추진했죠”

그는 1987년 7월 31일 50여 명의 발기인과 함께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노동조합 설립 후 회사의 폭압적인 대응이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현장 노동자 대부분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1년 뒤 조합원 수는 1000명에 이르렀죠”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설립을 이끈 한상균 지도위원은 21년이 지난 2008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으로 당선됐다.

“당시 상하이자동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떠났습니다. 많은 노동자가 떠나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노동조합을 대표하게 됐죠. 2009년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인 노동자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발표됐습니다. 공동체 해체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었죠”

그는 조합원들과 함께 77일간 정리해고 철폐 투쟁을 벌였다. 전기와 물, 가스가 끊긴 공장 안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결국 떠나야만 했다.

“공장에는 가동을 멈추면 안 되는 설비들이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직접 정비하며 설비를 지켜냈죠. 한데 돌아온 것은 무자비한 무력진압이었습니다”

사회는 생존권을 걸고 투쟁한 노동자들에게 해고자라는 주홍글씨를 씌웠고, 한상균 지도위원은 가족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구속되어 교도소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다

한상균 지도위원은 2014년 12월 사상 첫 직선제로 치러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쌍용자동차 투쟁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제가 위원장으로 선출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중앙에서 활동한 경험이 많지 않았기에 당선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는 당선 직후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주도했고, 2015년 12월 10일 또다시 구속되어 2년 6개월간 수감됐다.

“노동자를 적대시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위원장 임기 대부분을 보내야 했죠. 그 안에서도 철저하게 격리된 생활을 했는데, 가족들과 동지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어머니의 손 편지가 큰 힘이 됐죠”

출소 후 조합원으로 돌아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에 참여한 한상균 지도위원은 2020년 1월 1일 꿈에 그리던 복직에 성공했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길고 긴 한스러운 시간을 삭힐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 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되찾아 너무나도 좋았죠”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시민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을 설립한 뒤 위원장을 역임한 한상균 지도위원은 2022년 12월 31일 정년퇴임 이후 활동가로서 전국을 누비며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자다운 삶을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활동가로서의 목표다.

그는 노동자 2500만 명 중 1000만 명이 ‘근로기준법’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를 변화하기 위해 진보정치가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한상균 지도위원의 노력으로 노동자가 평등하게 법을 보장받는 사회가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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