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경기도 230리·평택구간 81리,
옛 길을 찾아 새 길을 걷는다

 

걸어서 여행하는 여가문화인 ‘걷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지리산 둘레길·태안 해안길·강화 나들길·군산 구불길·부안 변산마실길·전남 백의종군길 등 전국 각지에서 기존 길에 이야기를 더한 다양한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길을 연구·개발하고 관광 상품화하는 붐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빼어난 자연 풍광에 건강과 여유를 주제로 길을 개발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조선시대 6대 대로 가운데 가장 긴 길인 ‘삼남대로三南大路’를 원형으로 해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걷기 편한 길 ‘삼남길’을 선보였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첫 여정인 경기도의 길이 ‘삼남길’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삼남길’은 한양과 충청·전라·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1000리에 달했던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고증해 만들어진 도보길이다. 하지만 원래 ‘삼남대로’의 수도권 구간이 급속한 도시개발로 인해 지형이 바뀌거나 새로 뚫린 길에 막혀 원형을 올곧이 보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은 이번에 대체구간을 개발해 역사문화탐방로로 새롭게 개척했다.
옛 서울인 한양을 막 벗어난 과천에서 시작해 평택까지 이어지는 ‘경기삼남길’ 230리 전체구간이 경기도의 주관으로 5월 25일 개통식을 갖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평택시사신문>은 경기도를 중심으로 국토를 잇는 혈맥이었으며, 조상의 피와 땀이 어린 국방상의 요로였고, 인마(人馬)를 통해 전국의 물자와 문화가 오가던 소통의 길이었던 ‘삼남대로’의 새로운 이름 ‘삼남길’ 평택구간을 ‘삼남길,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평택구간 81리’ 특집 연재를 통해 새롭게 조명해본다.
- 편집자 주 -

▲ 대동여지도로 본 한양~평택구간 '삼남대로'
■ 수많은 이야기가 서린 ‘삼남길’
‘옛 길을 찾아 새 길을 걷는다’라는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경기도의 ‘삼남길’ 활성화 정책은 국민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해주고,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장거리 도보길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평택시를 비롯한 삼남길이 경유하는 지자체, 아름다운 도보여행과 코오롱스포츠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조선시대 ‘삼남대로’는 한양과 삼남지방인 충청·전라·경상을 연결했던 옛길로 조선시대 확립된 도로망 중에서 가장 긴 여정의 길이다.
이 옛길 ‘삼남대로’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적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조선시대 대로가 모두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자 중심지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物産)이 오가고 장시(場市)의 형성 ▲전국 팔도의 생활 문화가 모이고 흩어지는 소통의 공간 ▲시대의 분기점에서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역사의 현장이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삼남대로’는 문화유산의 집적도가 매우 높은 길로 옛길의 역사적 원형을 되살리고 옛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다듬는다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클뿐더러 옛길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계기로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삼남대로’ 전체 구간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조선 초 정도전과 정약용이 나주와 강진으로 유배를 가면서 걸었던 길인 동시에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화성 융릉으로 가기 위해 자주 이용했던 길이 바로 ‘삼남대로’다.

■ <춘향전>에 기록된 ’평택 삼남길’
‘삼남길’은 춘향이가 과거 길에 나선 이몽룡을 애타게 기다리던 길이고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달음 달려갔던, 이몽룡이 춘향을 구해 다시 한양으로 올라가며 평택지역의 풍광을 즐겼던 곳이 바로 이 길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대목 중 한양에서 남원에 이르는 이몽룡의 암행길을 따라가 보면 청호~진위 읍내~새둑거리~소골~회계원~참나무정이~감주거리~갈원~소사~애고다리~개령이~호영이~성환 술막으로 이어진다고 기록돼 있으며 이 지명을 현재의 지명으로 추정해보면 평택시 진위면 갈곶리~청호역~가곡리~한국야쿠르트~봉남리~마산리~동막~부락산과 덕암산 사이~도일동~칠원동~상서재·하서재~배다리저수지~소사동~애교다리~천안시 성환읍으로 이어지게 된다.
‘삼남길’은 아픔의 흔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명장 원균과 그의 전사를 알리기 위해 칠천량에서 도일동까지 천릿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애마의 흔적이 남아있고 청·일 전쟁과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리 멀지않은 격변기 평택인의 삶도 이 길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 마을 안길 포장과 담장·지붕개량에 쓰였던 모래를 수없이 퍼 날랐던 곳이 삼남대로가 지나는 길목의 진위천과 안성천 둔치였고 국내외 귀빈들이 새마을 수범지역으로 꼭 한번은 들렸던 곳이 칠원리 새마을시범마을이었다.
예로부터 ‘삼남길’은 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왕들의 행차 시 긴 여정을 쉬었다 가곤 했는데 칠원리에는 인조 때 물맛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왕이 ‘옥관자’라는 벼슬을 주었다는 우물 ‘옥관자정(玉貫子井)’이 남아있다. 진위면 동천리를 지나던 세조가 만기사 절에서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좋아 샘 이름을 감로천(甘露泉)이라고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만기사 우물을 어정(御井)이라고 부른다.
평택의 남쪽 끝자락 소사동에는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있는데 이 비는 1659년인 효종 10년에 영의정 김육이 충청감사로 있으면서 삼남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고 선정을 베푼 것을 기념해 그의 사후 세운 것으로 지금도 ‘삼남길’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처럼 서민들의 애환과 숨 가쁘게 달려온 역사를 고이 간직한 ‘삼남길’은 조선시대 옛 ‘삼남대로’를 바탕으로 원형은 최대한 살리면서 서울에서부터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자들이 최대한 안전하게 자연과 역사·문화를 느끼며 걸을 수 있도록 21세기형 문화탐방로로 조성해 새롭게 탄생한 길이다.

▲ '삼남길' 평택구간 칠원동 새말로 104번길


■ ‘삼남길’ 평택구간은 81리
경기도 문화유산과 최종신 주무관은 이번 ‘삼남길’ 경기도 전체구간 개통에 앞서 “옛길 조성과 활용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점(點)으로 산재되어 있는 문화유산을 선(線)으로 연결하여 주민들에게 역사문화 탐방 기회를 제공하여 생활체육과 여가생활 확대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가 기대되며, 특히 도보탐방객의 증가로 체험형 관광수요 확대·민박·토산품 등 지역밀착형 소비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경기도의 ‘삼남길’ 전체 구간은 옛 한양의 관문인 과천 남태령에서 시작해 안양~의왕~수원~화성~오산을 거쳐 경기도의 끝인 평택까지 90.1㎞로 척관법 단위로는 230리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하루 100리를 걸었다는 문헌으로 보아 과천에서 평택까지는 꼬박 이틀이 걸리는 거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관료들이 한양에서 출발해 이틀째 밤을 진위(振威)에서 유숙(留宿)했다는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지정된 ‘삼남길’ 평택구간은 진위면 청호리에서 시작해 진위면 봉남리에 위치한 진위면사무소~진위향교~소백치~대백치~도일동 원균 장군 묘~칠원동 갈원 옥관자정~소사동 대동법시행기념비~소사평야~안성천교에 이르는 31.9㎞ 구간 81리에 해당된다. 걸어서 하루가 조금 안 되는 거리지만 평택사람들의 기쁨과 슬픔·고난과 희망으로 점철된 삶의 이야기가 수백 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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