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고·안법고 34년간 재직
<평택시사> 등 집필위원 참여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 싶습니다”

 

사학을 전공하다

장연환(58세) 효명고등학교 교사는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주 깊은 산골짜기는 아니었지만,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농촌이었어요. 물이 풍족해 가뭄 걱정이 없는 곳이었죠”

농사를 지으면서도 교육열이 남달랐던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그와 남동생을 유학길에 오르게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상경했습니다. 저와 남동생, 할머니 이렇게 세 식구가 서울 녹번동에 정착했죠. 갑작스럽게 떠난 유학길인 데다 주거환경도 열악했지만, 두렵다거나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고향마을에서 나름 준수했던 성적은 서울로 올라온 뒤 곤두박질쳤다.

“불광중학교 3회 졸업생인데, 동창 중에 대단한 집 자제들이 많았어요. 인근에 갈현동은 당시 부촌으로 불렸죠. 하지만 크게 위축되지는 않았습니다. 차별 없는 시골 아이들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했던 것 같아요”

장연환 교사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해에 부모님은 남은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주했다.

“아버지께서 올라오신 뒤로 그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위기의식을 느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다. 역사를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않았지만,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선택이었다.

“처음부터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지만, 갈수록 흥미를 느꼈고 결국 교직과정을 신청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집안 형편을 고려해 교사가 되기로 다짐했죠”

 

역사교사가 되다

장연환 교사는 1990년 대학 졸업 후 효명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송탄이 어느 지역인 줄도 몰랐어요.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죠. 서울과 비교해 한참 시골이었지만, 역사교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습니다”

교편을 잡은 직후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수업이 재밌어 종이 울리기도 전에 교실에 들어갈 정도였다.

“사범대학교 출신이 아니었기에 교과를 지도하면서도 꾸준히 공부해야 했습니다. 기출문제도 풀어보고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많이 했죠. 돌이켜보면 성적관리 위주로 아이들을 지도했던 것이 후회되기도 합니다”

장연환 교사는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다양한 행정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교무행정 일을 맡으면서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날이 많았어요. 수당도 없던 시절이었죠. 아내와 딸에게 참 미안한 부분입니다. 일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그는 2002년부터 6년간 안성 안법고등학교에서 학생을 지도한 뒤 2008년 다시 효명고등학교로 돌아왔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전근해야 했지만, 안성지역으로 활동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안성시사>를 발간할 당시 편찬·집필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죠”

 

지역사를 조사·연구하다

장연환 교사는 1996년 1급 정교사 연수에서 김해규 평택인문연구소장을 만났고, 이를 계기로 지역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한광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김해규 선생과 만나면서 지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함께 동네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지역신문에 연재하기도 했죠”

그는 1999년 <진위면지> 편찬·집필위원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평택시사> 집필위원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지역사 관련 활동을 넓히기 시작했다.

안성 안법고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에서 활동하며 회지에 안성의 마을 이야기를 연재하는 등 지속해서 지역사에 관심을 두고 활동했다.

그간의 활동은 공동 저자로 참여한 <청소년을 위한 안성의 역사와 문화이야기>, <평택의 근현대를 걷다> 두 권의 책을 남기기도 했다.

“평택문화원 부설 평택학연구소 연구위원으로 10년 넘게 활동하면서 지역사를 조사·연구하는 일에 주로 참여해 왔습니다. 지금도 ‘평택의 사라져가는 마을 조사’에 참여해 도시개발로 사라져가는 마을들을 기록하고 있죠. 지식생산자라기보다는 지식소비자 입장에서 지역사를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장연환 교사는 정년을 3년 남겨두고, 치열했던 젊은 날과 비교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지혜가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교사로서 그의 마지막 바람이다.

그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깨닫고자 사학을 선택한 만큼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본질을 깨닫고자 노력할 계획이다. 한편으로 스스로를 정립하고 싶다는 장연환 교사의 바람이 실현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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