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경기도 230리·평택구간 81리
시설원예 명성 잇고, 평택 산업의 초석 다진 곳

 
‘삼남대로’는 한양과 충청·전라·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옛길이다.
한양에서 지방으로 내려갈 때 이 길의 평택구간 첫 관문은 지금의 진위면 청호리 청호역이었다. 하지만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서 걷기 편한 길 ‘삼남길’을 선보이면서 오산천 산책로를 따라 오산 맑음터공원을 오산구간의 종점으로 정해 평택구간은 진위면 갈곶리와 야막리부터 시작된다.
이곳부터 시작해 갈곶~가곡~봉남~마산~소백치~대백치~도일동~원균 장군 묘까지 이어지는 ‘진위고을길’의 종료구간인 도일동 내리까지는 17.4㎞ 44리에 해당된다.
<평택시사신문> 이번호에서는 야막~갈곶~가곡4리 구간에 이르는 길과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수진농민회’와 3·1만세운동을 이끈 야막리
오산 맑음터공원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왼쪽은 진위면 갈곶리, 오른쪽은 야막리와 만나게 된다. 좌우로 비닐하우스와 논이 1㎞ 가량 펼쳐진 이 길이 자리한 야막리는 원래 들판에 있던 마을이라고 해 ‘들막’이라고 불렸으며 이는 한자 표기로 ‘야막(野幕)’으로 격동기 평택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온 변화와 개혁의 고장이라 할 수 있다.
농민의 이익을 도모하고 생활향상·문맹퇴치·의식적 교양·상호부조를 위해 1930년 만들어진 ‘진위농민조합’이 바로 이곳 진위군 북면 야막리에서 창립했다. ‘수진농민조합’으로 이름을 바꾼 이 조합은 평택과 수원·화성 일대에서 벌어진 지주와 소작인간의 불합리한 소작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주가 소작인들의 소작권을 임의로 빼앗아 다른 소작인과 계약하는 것을 막고 지주와 소작인간의 불합리한 이자문제, 지주가 농지를 대여해 주고 그 대가로  추수기에 수확량의 절반을 징수하던 타조법 적용 등 소작인의 토지경영에 대한 지주의 감독과 간섭이 심해 소작인들의 생산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행위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수진농조는 지주보다는 소작인 즉, 농민들의 입장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주요 간부가 구속되고 지부 설치가 중단되는 등 일제로 부터 탄압의 대상이 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야막리는 특히 천도교인들이 많이 거주해 3·1만세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야막리 주민 박창훈은 1919년 3월 21일 야막리와 봉남리 주민 500여 명을 선동해 봉남리로 진격하면서 만세시위를 이끌었으며 1926년에는 박내일이 마을에 북진청년회(北進靑年會)를 창립해 사회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 진위면 야막리 들판길
▲ 수도권 채소1번지 진위면 시설채소단지

■ ‘수도권 채소1번지’로 시설채소 명성 이어와

삼남길 야막리 구간을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햇빛을 받은 은빛 비닐하우스 물결이 펼쳐진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 마을의 시설채소 재배는 선도농가인 최기복(72)·김형주(72)·최종태(79) 씨 등에 의해 보급·확산됐다.
초기 비닐온상을 이용한 채소 모종 재배부터 시작한 시설채소는 소나무에서 대나무로, 철골 파이프로, 유리온실로 시설을 현대화하는 등 우리나라 시설원예를 선도한 지역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이로 인해 진위면 야막리-하북2리-신리로 이어지는 시설원예 재배단지를 일컬어 ‘수도권 채소 1번지’라는 별칭을 얻기에 이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배추와 무·오이·상추가 주요 재배 작물이었지만 지금은 애호박·방울토마토·장미·화훼류로 재배 작물도 다양해졌다. 1970년대 초에는 무 하나를 팔아 땅 한 평을 샀을 정도로 시설원예가 호황을 겪기도 했다. 당시 쌀 한 되가 28원이었으며 쌀 3되를 팔아야 땅 한 평을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무 하나가 80원 가량 됐던 셈이다. 이 지역에서 장미를 비롯한 화훼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인 1990년대 초반부터다.

■ ‘머쉬아트’와 ‘갤러리 르 메네’는 삼남길 쉼터
야막리 구간을 벗어나 갈곶리~청호리로 이어지는 LG로 초입을 지나쳐 700m 가량 ‘원미들’을 지나면 평택로컬푸드 버섯재배 농장인 ‘머쉬아트영농조합법인’과 커피숍 ‘파나티카’를 만나게된다. 갈곶초등학교 건너편에 자리한 파나티카 내에는 ‘갤러리 르 메네’가 있어 도보길 차 한잔의 여유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미술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갤러리에서는 도자기·회화·조각 등 갤러리가 표방하는 로컬 아티스트와 상생하는 로컬 갤러리라는 모토에 맞게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로컬전시회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눈길을 끈다.
평택로컬푸드 버섯재배 농장 ‘머쉬아트’도 버섯 체험과 웰빙의 기회를 제공한다.
제11회 세계농업기술상을 수상한 박순애 대표가 운영하는 이 농장에서는 느타리·표고 등 식용버섯과 노루궁뎅이·상황·영지·동충하초 등 약용버섯을 재배한다.
또 버섯재배기를 개발해 도시민이 가정에서 직접 버섯재배를 통해 농사과정을 체험하고, 웰빙 건강버섯을 수확·요리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고 각종 버섯요리를 개발해 직접 요리하고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진위면 야막리 화훼재배 하우스

■ 평택 산업 발전의 뿌리, 진위면 ‘공업지역’

갈곶리를 지나 가곡리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서면 좌우로 중·소규모 공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곡·갈곶·청호·하북리로 이어지는 진위면 공업지역 평택지역 산업 발전을 이룬 시초가 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가곡리에 위치한 롯데제과와 동양잉크, 갈곶리 영진약품, 청호리 LG전자, 하북리 홍원제지·영풍제지·매일유업, 견산리 한국야쿠르트, 신리 한국YKK·한국번디는 규모를 갖춘 공장이 없던 1960년대 후반부터 평택지역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기업들이다.
1986년 평택의 역사를 집대성한 <평택군지>에는 “1960년대 이후를 맞이하면서 수원(물)의 이용도가 높은 진위천 및 오산천변 지대를 발판삼아 근대적 산업의 공장들이 어엿한 웅자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략- 우뚝 솟은 공장 굴뚝에서 처음으로 평택 하늘을 향해 마음껏 검은 연기를 토해 냈다”라고 기록할 정도로 당시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형성된 진위지역의 기업들은 지금처럼 계획화된 산업단지가 형성되기 40여 년 전부터 평택의 산업을 대표하는 곳으로 성장해왔으며 특히 ‘금성사 평택공장’으로 시작한 청호리 ‘LG전자 평택엘지디지털파크’는 냉장고·세탁기·에어컨·전자레인지로 상징되는 백색가전을 선도해 지금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 LG전자를 비롯한 진위면의 공장 밀집지역

▲ 이효순 효열비
■ 안동 권 씨 집성촌과 ‘열녀 이효순’

동양잉크를 비롯한 공장지대를 지나 가곡4리 후북마을로 들어서면 1호 국도 방향 마을 입구에 ‘이효순 효열비’가 눈에 들어온다. 열녀 이효순은 열아홉 살 때 안동 권 씨 집성촌인 가곡리 권창수에게 시집와 궁핍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온갖 정성을 다해 연로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나 시집온 지 5년 되던 때 남편이 가정을 등지고 멀리 떠나 소식이 끊어지자 삯밭매기와 날품팔이 등 궂은일을 가리지 않고 해내면서 30여 년간 시부모를 봉양해 인근에서 좀처럼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효부이며 열녀라고 칭송했다. 이 씨 부인은 시부모가 중풍으로 병석에 앓아눕자 옷을 입히고 식사하는 일을 거들고 환자의 옷을 자주 빨아 냄새를 없애는 등 6년 동안을 하루같이 시중들면서도 조금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3년간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곡을 하는 등 집상(執喪)을 깎듯이 했으며 남편의 생사를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60세가 되도록 일생을 수절해온 이 씨 부인의 효성은 많은 사람의 귀감이 돼 1940년 4월 효부 이 씨 부인의 효행을 기리는 비(碑)와 비각(碑閣)이 가곡리 입구에 세워지게 됐다.
 
▲ 진위면 가곡4리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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