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더 이상 피할 길 없는 인구절벽과 마주하며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2018년 14.4%에서 2025년에는 20.6%라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있다.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 이상 노인 인구도 1990년에는 460여 명이었으나 2020년에는 5,581명으로 13배나 늘어났다. 

대가족제도 안에서 성장하며 인간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삶에 대한 경험이 많은 노인 세대, 고생하며 이만큼 좋은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준 자부심이 충만한 노인 세대는 이제 외로움과 소외감, 무력감에 시달린다. 거기에 사회적으로 노인 기피 현상에 대한 회의와 건강에 대한 걱정은 떠나지 않는 덤이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높이 사는 덴마크 속담으로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옆집에서 빌려오라는 덴마크 속담도 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노인은 외롭다. 노인이면서 혼자라면 더 외롭다. 오로지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만이 친근한 벗이다. 고독사가 증가하고 반려동물이 증가한다.

그러나 외로움에 관해서라면 청년세대도 만만치 않다. 1990년에는 102만 가구에 불과하던 1인 가구는 2015년에는 520만 가구로 껑충 뛰었다. 그리고 2025년에는 3집 중 1집은 1인 가구가 될 거라고 하니 바야흐로 지금은 1인 가구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IMF 때부터 미혼이나 만혼, 비혼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굳이 누군가를 만나 돈을 쓰지 않아도 심심하지 않게 놀아 줄 게임이나 채팅 같은 친구가 생겼으니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갇혀 힘들게 살아갈 필요 없지 않냐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혼술’이나 ‘혼밥’ 등의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청년세대는 젊다는 무기가 있을 뿐 외로움을 피해 가지는 못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싫고, 외로움을 견디기는 어렵고, 그래서 최근에는 네트워킹하는 동호회가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시간에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집에서 영화를 보고 그 내용을 함께 이야기하는 동호회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함께 한다는 것, 즉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네트워킹에 높은 비용을 투자한다. 

그렇다면 노인 세대도 아니고 청년세대도 아닌 소위 ‘낀 세대’는 어떤가.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예를 들어보면 이들의 외로움도 만만치 않다. 맞벌이 부부라면 더 얼굴 볼 새가 없고, 외벌이 부부도 한쪽이 바쁘면 도무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은 학교로, 학원으로 다니기 바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함에 쓰러져 자기 바쁘다. 예전처럼 밥상에 둘러앉아 얼굴을 보고 다정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은 상상조차 어렵다. 부부는 부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외로움에 익숙해져 간다. 

이런 세태들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 사회는 급속도로 ‘외로움’이라는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야 하는 인간인데, 그런 인간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는 뜻의 ‘사회적 동물’이라는 수식어다.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던 편안함과 안도감, 안락함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함께 했을 때라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인간은 끊임없이 혼자가 아닌 둘을 그리워하고, 둘 보다는 셋이 되어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고자 한다. 그것이 본능이다. 그래서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사회 안에서 다양한 제도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현대 사회는 그런 노력마저 사라지고 있다. 노인은 노인들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중장년 세대는 그들대로 모두 외로움이라는 괴물과 함께 괴로워하면서도 정작 그것을 극복할 방법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그것을 극복할 방법에 관해 묻는 이가 있었다. 문제만 제기하고 정작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답답한 눈길로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해결의 열쇠는 우리 안에 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결단이 있어 제도를 완전히 바꾸려는 시도가 없는 한, 우리는 언제나 현재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계속 이 외로움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문제를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각자의 공간을 벗어나 서로 얼굴을 보고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모두가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에 서로를 위로하면서 함께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충분히 느껴야만 한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고 ‘사람에 대한 이해’를 가르치는 학문, 즉 ‘인문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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