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나이테’로 자신의 생을 몸 안에 새긴다. 추운 지방에 사는 나무는 좁은 나이테를, 더운 지방에 사는 나이테는 넓은 나이테를 새긴다.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니 저마다 몸에 새긴 문양도 다르다. 나무의 나이테는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살면서 견뎌야 하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들을 잘 극복해낸 결과물이다. 

나무의 나이테는 세월의 흔적을 자랑스럽게 품고 있다. 그 주름은 오랜 세월 겪어온 바람과 비의 흔적이자 자연과의 교감에서 얻은 지혜의 표시다. 나이테가 늘어날수록 나무는 단단해지고 품도 넉넉해진다. 그래서 그 품에는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산다. 새와 벌레, 곤충들까지, 그리고 그늘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깃들어 산다. 나이테가 주는 의미 때문인지 시인들은 나무 외에도 많은 곳에서 나이테를 발견하곤 한다. 강물에서도, 심지어는 연어의 살결에서도 말이다. 

언제인가부터 글을 쓰는 사람은 나무의 생에 기대 자기의 삶을 기록해야 하는 빚진 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가 나무로 만들어졌다는데서 출발한 인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에 글을 쓰는 건 괜찮은데 그것을 정작 책으로 출판하려고만 하면 이상하게 두렵고 망설여졌다. 나무가 견뎌낸 수십, 혹은 수백 년 삶에 기대도 좋은 글인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의 삶을 생각하면 내 글은 아무리 고쳐도, 아무리 덜어내도 흡족하지 않았고 나의 짧은 생에 비례하는 부족한 사고가 한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지금도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지 앞에 서면 그 안에 스며 있는 나무의 나이테가 엄격한 얼굴로 내게 묻는 것만 같다. 충분히 나잇값을 한 글이냐고 말이다. 깊이 사고하지 않고 아무 글이나 함부로 세상에 툭 던져놓는 것은 아니냐고…. 

나보다 오래 세상에 남아있을 책, 그래서 나보다 오래 나이를 먹어갈 책, 특히 삶의 엑기스를 담은 시집이나 타인의 글에 기댄 평론집, 진실을 담아야 하는 역사서 등을 펴낼 때는 그런 생각이 더 심해져서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단단하게 무장한 글이어야만 가능할 것 같은, 빚진 자의 마음이 그런 것이다. 

사람도 자기 몸에 주름이라는 나이테를 새긴다. 눈가에 하나둘 생기는 주름은 어느새 얼굴 전체로, 몸 전체로 퍼져나가 굴곡을 만들어낸다. 주름에는 우리가 겪은 고난과 기쁨, 성공과 실패의 흔적들이 담겨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은 그 사람의 삶을 짐작하게 하는데 처음 나타나는 주름은 웃음으로 시작된다. 그 유쾌한 표정에서 나타나는 주름은 삶의 기쁨과 행복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후로는 삶의 격렬한 여정에서 생긴 주름들이 점점 더 깊어진다. 슬픔과 고난, 그리고 삶의 부조리한 순간들이 몸 전체에 새겨진다. 

평소에 잘 웃는 사람은 웃는 주름을 갖고, 평소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주름도 신경질적인 모양으로 고약하게 생긴다. 주름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가 그대로 보인다. 우리가 걸어온 길의 흔적, 경험과 감정, 행복과 슬픔까지, 마치 좁거나 넓은 문양의 나무의 나이테처럼 살아가면서 겪은 수많은 시간을 담고 그 사람의 삶을 대변 한다.

내 경우에는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었을 때, 그리고 사십 대에서 오십 대가 되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했다. 내가 더 이상 청년이 아님을, 내 앞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졌음을 자각한 나의 나이테를 느낀 순간이다. 몸의 변화를 확인하면서도 그랬다. 이마에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매일 입던 미니스커트를 입기가 민망해졌을 때, 밤을 새워가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던 일들이 조금만 늦게 끝나도 버겁게 느껴졌을 때 말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시간이었음을 어쩌랴.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나이 듦의 집착에서 서서히 멀어질 준비를 한다. 나이가 들면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에 맞게 뇌에서도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적응한다고 한다. 멀리 있는 게 보이지 않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걸 더 챙길 나이여서 그렇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가까운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나이여서 그렇다. 젊어서는 크고 웅장한 것들에 눈길을 보내고 귀를 기울였다면 이제는 작은 것들에, 가까운 것들에 마음을 주는 것이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뿌리를 땅에 깊이 내리고 순응하며 성장하는 시간을 몸 안에 새기는 나무처럼 사람의 얼굴에 깊이 새겨진 주름은 우리의 내면에 뿌리를 내리며 순응해 온 삶의 고귀한 흔적이다. 우리가 겪어낸 많은 경험이 성장했다는 증거이며 경험이 많아지고 내면이 성숙해질수록 그렇게 우리의 주름도 더 깊어질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와 사람의 얼굴에 새긴 주름은 모두 세월을 통해 얻은 지혜의 상징이자 삶의 흔적과 아름다움의 증거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 어느 날 문득 거울 앞에 서서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줄 한 줄 새긴 우리의 삶의 이야기들을 가만가만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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