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연히 펼쳐본 책에 밑줄이 꽤 많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진짜 나답게 되는 법을 알라”는 문장에 그어진 밑줄이다. 책에 밑줄을 그을 때의 나이가 삼십 대, 혹은 사십 대쯤이었을 터이니 당시 내가 그런 고민이 있었구나 싶어 순간 마음이 아득하다. 

책장은 그 사람의 뇌와 같아서 꽂힌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책장에서 오래된 책을 꺼내 펼쳤을 때, 무심히 지나가는 문장들 속에서 어떤 문장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걸 보면 보물이라도 찾은 듯 마음이 설렌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도 변하는 것처럼 이십 대에 읽은 책에 그어진 밑줄과 사십 대에 읽은 책에 그어진 밑줄이 다르다. 내 경우 사랑과 관련된 문장에 밑줄을 많이 그었던 이십 대가 있었고, 삶과 관련된 문장에 밑줄을 그은 사십 대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책에 그어진 밑줄에서 망각해가던 나의 아픈 이십 대와 모호했던 사십 대를 소환해 낸다. 

“나는 나 자신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

이 문장은 16세기 프랑스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수상록>의 저자인 서른일곱 살의 몽테뉴가 자기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16세기는 유럽 역사상 손꼽히는 암흑기로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고 신교 내에서도 칼뱅파와 루터파가 갈라져 싸우던 시기였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그중 어느 하나에 가담해 자신을 증명해야 했지만, 몽테뉴는 그 어느 쪽도 아닌 자기 자신을 선택했다. 그가 오랜 법관직을 그만두고 성에 머물며 <수상록>을 쓸 때 그는 “이 글의 소재는 나 자신이고, 이 글의 목표는 나를 정직하게 묘사하는 것”이라며 책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했다. 

사십 대의 나는 그가 했던 고뇌의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 문장은 마치 나를 대신해 외치는 결의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 자신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떤 시인의 말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에는 사라지는 의식을 붙잡으려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소설가 김중혁은 밑줄을 긋는 이유에 대해 “하나는 내가 몰랐던 것을 발견했을 때, 다른 하나는 내 이야기 같을 때”라며 “밑줄긋기는 인간을 이해하고 타인과 만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살아가며 많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와 정말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나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때로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면 “내가 저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도 이와 비슷하다. 시집에 담긴 문장에 자주 밑줄을 긋는 나로서는 읽으면서 모호했던 감정들이 조금 더 명확해지는 경험을 한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감정들이 이미지로 그려지는 문장을 만나면 와락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뭔가 내 마음을 대신 설명해주는 것 같은, 그래서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도 그런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대신 살아본 사람의 짜릿한 경험과 마주하면서, 혹은 그 사람의 불행과 마주하면서, 그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본성을 만나면서 발견하는 문장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문장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하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만나기도 한다. 주인공의 의미 있는 대사 한마디는 읽는 사람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렇게 타인의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마음이 가닿는 문장에 그어놓은 밑줄은 자칫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삶에 단비처럼 잔잔하게 스며든다. 내 마음과 비슷한 문장들에 그은 밑줄들을 연결하다 보면 마치 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최근에는 이름난 작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상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실생활을 글로 쓰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더 늘어났고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문장들도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이 때로 모호한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것은 삶을 더욱 의미 있게 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글을 쓰는 것이 힘들다면 타인의 생각과 자기 생각의 접점에서 밑줄을 그어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당신이 살아낸 시간에는 어느 지점에 밑줄을 그을 수 있을까. 당신이 힘주어 그은 그 밑줄에 부디 밝은 별 하나 걸려있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