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경기도 230리·평택구간 81리
부락산과 덕암산, 진위고을 사람의 ‘자취 서린 곳’

경기 삼남길 제9길 ‘진위고을길’의 진위향교를 벗어나면 은산5리에서 신리까지 진위천변에 형성된 ‘황새미들’과 ‘건는들’의 시원하게 뻗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평택 북부지역 주민들의 휴식처인 덕암산과 부락산이 좌우로 길게 뻗어있다. 이 산 기슭에는 진위현의 대표적 동족마을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진주 소씨와 원주 원씨·봉화 정씨가 수백 년 가문을 이루며 살아오면서 진위현의 영화와 함께해오고 있다.
<평택시사신문> 이번호에서는 진위면 봉남리 진위향교~마산2리~동막~백현원~덕암산~도일동 내리 원균 장균 유적지 구간에 이르는 길과 이 길을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역사·문화자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 편집자 주 -

▲ 연이랑 명주랑 농촌과학체험마을
■ 멸종위기 ‘금개구리’를 만날 수 있는 ‘연이랑 명주랑’
진위향교 앞 진위천 세월교를 건너 남쪽을 향해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진위면 마산리 ‘건는들’ 농로를 걷다보면 좌측으로 연 밭과 정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농업경영인연합회장 출신 안병무 대표가 9900㎡의 논에 연을 심고 터널에 조롱박과 수세미를 올리고 곤충체험관을 만들어 ‘농촌과학체험마을’로 조성한 ‘연이랑 명주랑’은 진위향교에서 800m 거리에 위치해 진위향교와 정도전 유적을 잇는 농촌체험농장으로 많은 아이들이 찾고 있다.
이 농장은 농업을 테마로 농민과 도시민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볍씨 파종-모내기-우렁이 넣기-벼 수확, 메뚜기잡기 등의 벼농사체험과 수생곤충·장수벌레·꼬리명주나비의 일생을 관찰하는 곤충관찰체험, 조롱박공예·연잎 밥 먹기·수세미 효소 만들기·연 잎차 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농장에서 기른 연(蓮)으로 만든 연 잎차와 연꽃차를 맛볼 수 있으며 연꽃·연잎·수세미즙 등 농산물 가공 상품도 구입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자연환경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농장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더욱 좋다.
최근 경기남부생태교육연구소 조사 결과 이 농장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금개구리’ 집단 서식지로 확인됐다. 금개구리는 5월 중순경 저지대 평야의 농경지 주변 물웅덩이와 수로에서 산란을 하며 울음주머니가 발달하지 못해 소리가 짧고 등 측면으로 2개의 굵고 뚜렷한 금색의 융기선을 가지고 있어 쉽게 구별된다.
진위면 마산2리 수촌마을로 들어서면 서양화가 이태용·동양화가 김은숙 씨 부부의 ‘수촌갤러리’를 만날 수 있고 ‘빗살무늬 상처에 대한 보고서’로 대표되는 우대식 시인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다.

▲ 덕암산 등산로
■ 소골마을과 ‘풀무골’ 전설
마산리 안골마을 고개를 넘어서 동막사거리 우측 아래에는 ‘소골’로 불리는 송북동 우곡마을이 있다.
소골은 우곡(牛谷)이라는 지명이 말하듯 소가 누워있는 지세라 해서 ‘우곡’이며 또 하나는 옛날 소(蘇) 씨가 살고나간 고장이라 하여 ‘소골’이라 전해온다.
고려 공민왕 때인 1360년경 소씨 성을 가진 정승이 살고 있었는데 소 정승은 지역사람들과 친밀하였고 학식과 덕망이 높았던바 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개혁의 소신이 강한 분이었다. 그의 말에 동조하던 주변 사람들은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이 신돈의 탓이라 하여 부락산 서편 골짜기에 대장간을 차리고 병장기를 만들며 군사를 모집해 훈련하면서 시기를 기다렸다.
소 정승에게는 지혜로운 며느리가 있었는데 소 정승이 군비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출병할 뜻을 가족에게 밝히니 며느리가 말하기를 “아버님, 벼 한 말을 찧어 쌀 한 말이 나올 때에 출병해야 성공할 것이오니 한 번 해보시지요” 하니, 소 정승은 “어찌 벼 한 말이 쌀 한 말이 되랴마는 네 말이 신통한지라 한 번 해보도록 하마”라며 하인을 불러 벼 한 말을 가져다 찧도록 했으나 쌀 한말이 나오지 않자 며느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병을 준비했으나 사전에 이들을 주시해오던 관군은 일격에 이들을 격파하고 소 정승은 역적으로 잡혀 처형당했다.
후인들은 소 정승이 며느리의 말을 듣고 참았더라면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전하며 소 정승이 만들었던 대장간 자리는 ‘풀무골’이라 칭하고 반란에 실패할 때 소골의 우물에 병장기와 모의 때 쓰던 물건을 한꺼번에 넣어 증거인멸을 했었다고 한다.

▲ 덕암산 자작나무 군락지

■ 맹사성의 ‘공당문답’과 ‘인침담’

진위면 야막리를 시작으로 주로 평지와 비탈길을 지나온 삼남길은 마산2리와 동막을 지나 흔치휴게소에서 산길로 이어진다.
흔치휴게소는 부락산과 덕암산을 이어주는 쉼터로 커피와 칡즙 등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와 나물과 채소를 이고 온 동막할머니의 정겨움, 등산객들의 풋풋한 이야기가 모여드는 곳이다.
흔치휴게소에서 삼남대로 생태육교를 건너 동쪽 덕암산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소나무와 참나무, 5월 중순에는 아카시아 꽃의 정취와 향기에 빠져들게 된다. 산불감시소 부근 능선에는 자작나무 군락이 아름답게 형성돼 눈을 호강하게 만든다.
덕암산은 해발 164m의 완만한 경사를 가진 산으로 평택 북부지역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으로 진위면 은산리 정도전 유적지까지 이어진다.
흔치고개가 있는 옛 백현원(白峴院)은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 고불 맹사성 관련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맹사성은 고향인 아산을 왕래할 때 늘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맹사성이 소를 타고 고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백현원에서 비를 만나 어느 여관에 묵었는데, 먼저 들어온 선비가 불러서 장기를 한 판 두고 심심풀이로 공(公)자 당(堂)자로 문답을 했는데 먼저 맹사성이 “무슨 일로 한양에 가는 공” 하니, 선비가 “녹사시험 보러 간당”이라고 했다. 녹사(錄事)란 의정부에 딸린 아전벼슬이므로 맹정승은 “그러면 내가 좀 도와줄 공”이라 했더니, 맹사성을 알아보지 못한 선비는 화가 나서 “아니꼽 당” 하였다.
그 후 녹사시험을 치르러 한양에 온 선비에게 좌의정 맹정승이 시험장에서 “어떠한 공” 하였더니 선비는 깜짝 놀라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죽여 주사이당” 하였다. 그래서 의아해 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맹사성이 며칠 전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그 선비는 맹정승의 도움으로 벼슬에 올랐으며 이 일은 ‘공당문답(公堂問答)’이라고 전해온다.
맹사성 관련 이야기는 진위면 신리 옛 장호원 인침담(印沈潭)에서도 전해 내려온다.
맹사성이 이곳을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진위현과 처인현 수령이 모여 있다가 소를 타고 오는 노인을 박대하였는데, 그가 맹사성임을 알고 놀라 소매에 넣어둔 관인인 도장을 연못에 빠트렸다고 하여 그 연못을 인침담(印沈潭)이라 불렀다고 한다.

▲ 임진왜란의 명장 원릉군 원균 장군 유적(도일동 내리)

■ 원릉군 원균 장군 묘와 사당

임진왜란의 영웅 원균(元均)은 1540년 평택시 도일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이다.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여진족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워 젊은 나이에 부령부사로 특진하였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침입이 예상되면서 군사적 요충이었던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경상좌수영이 궤멸되고 군졸들이 흩어지는 가운데서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으며,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연합함대를 구축하여 옥포·당포·당항포·한산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승전의 장계문제로 이순신과 갈등을 빚다가 충청병사·전라병사로 전임되었으며, 1597년 이순신이 왕과 조정의 명령을 능멸한 죄로 백의종군하면서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뒤 부산포를 공격하다가 가덕도와 칠천량(漆川梁)에서 크게 패하여 동생 원전·아들 원사웅과 함께 전사했다. 임진왜란 뒤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일등공신에 녹훈되고 원릉군에 봉해졌다. 도일동 내리마을에는 원균 장군의 묘와 사당이 있으며, 묘(墓) 아래에는 원균의 유품을 입에 물고 천리길을 달려온 뒤 죽었다는 애마(愛馬)의 묘가 있고, 건너편에는 생가 터였던 ‘울음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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