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기 마지막 평택군수의 일기·시·산문 3권으로 완역
오횡묵의 《평택총쇄》 바탕으로 평택지역 콘텐츠화 고민해야

평택문화원 부설 평택학연구소가 대한제국기 평택의 역사를 모은 《평택총쇄》 완역을 기념하는 ‘제19차 평택학 학술대회’를 2월 21일 평택문화원 대동관에서 개최됐다.

‘평택총쇄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학술대회는 평택문화원에서 3년간 번역·발간한 ▲2021년, 평택군수 오횡묵의 정무일기 《평택쇄언》 ▲2022년, 평택군수 오횡묵의 한시집 《평택총쇄》 ▲2023년, 평택군수 오횡묵의 산문집 《평택총쇄》의 완역을 기념해 개최됐다. 

 

박성복 소장/평택학연구소
박성복 소장
평택학연구소

■ 좌장 

박성복 소장/평택학연구소

오횡묵 평택군수가 남긴 글을 통해 단절된 역사를 연결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와 교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평택총쇄》 발간과 학술대회, 후속 연구를 통해 평택학을 재조명하고, 발굴한 자원을 콘텐츠화할 수 있다는 것에 무한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허경진 교수/연세대학교
허경진 교수
연세대학교

■ 기조발제 : 

평택총쇄》의 가치와 평택군수 오횡묵
허경진 교수/연세대학교

오횡묵, 변화하는 평택 모습 자세히 기록
평택 근대사 자료창고 역할 할 것으로 기대

1902년부터 1906년까지 4년간 마지막 평택군수를 역임한 오횡묵은 정무일기와 한시, 산문을 매일같이 남겨 대한제국기 평택의 소중한 자료로 기록됐다. ‘총쇄’는 자질구레한 글을 모았다는 뜻인데 120년이 지나서 보면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글이 되었다. 오횡묵 군수가 평택에 온 것은 122년 전이다. 이 기록이 중요한 것은 조선시대와는 달라진 대한제국시대, 특히 경부선 철도가 놓인 평택의 첫걸음이 바로 이 시대이다. 오횡묵은 상당히 빠르게 변화하는 평택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했다. 신문기자였던 오횡묵은 평생을 따라가면서 보고 듣는 모든 걸 기록한 그의 책임감과 성실함은 놀랍다. 오횡묵은 돌 하나, 꽃 하나에도 애정을 가지고 평택을 다스렸다. 그는 뛰어난 행정가는 아니었지만 성실한 군수이자 시인이었기에 부지런히 평택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일하고 시를 썼다. 그의 시집을 들고 취석, 향반, 시경, 일섭원, 십의대, 평이당, 강산일초정 등 그가 이름 지은 유적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땅에 절반쯤 묻힌 바위에서 오횡묵이 새긴 바위 글씨들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가 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평택은 근대도시로 발돋움했다. 평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끼고 서울과 지방, 외국이 교류하는 평택 정거장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평택군수 오횡묵의 정무일기, 한시집, 산문집에는 120년 전 수많은 평택의 옛 동네 명칭, 평택 주민의 이름, 다양한 사회상이 담겨있다. 오횡묵의 다양한 저술은 평택의 근대사 자료창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상우 교수/아주대학교
한상우 교수
아주대학교

■ 제1발제 : 

《평택쇄언》으로 본 근대 전환기 평택
한상우 교수/아주대학교

쇄언에서 보이는 평택사람의 삶은 고단 
학술적 검토와 본격적 콘텐츠화 시동 필요

오횡묵의 《평택쇄언》은 지역사 자료가 부족한 평택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귀한 자료다. 평택쇄언에는 20세기 초반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에 넘어가는 급변하는 시기에 살았던 평택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다. 쇄언에서 보이는 평택사람의 삶은 고단했다. 궁방이나 수어청 등 중앙관청의 소유지는 물론 윤택영 같은 유력 정치인의 땅이 많았던 평택의 경제는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오횡묵이 나서는 일도 많았지만 평택 백성들은 문제 해결을 자발적으로 향약을 만들어 일본의 인부 모집 요구와 횡행하던 도적에 공동 대응했다. 사회적 소요를 막기 위해서나 관속들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 지도자들이 움직였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시장을 만들고 씨름장을 설치하기도 했다. 경부선이 부설되고 열차가 다니기 시작한 평택지역 근대의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평택쇄언에서는 평택으로의 인적, 물적 이동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일본 화폐가 평택에 통용되고 일본인들이 평택 사회로 들어오게 됐다. 근대 도입은 일본의 대한제국 주권 침탈과 함께 진행돼 러일전쟁을 위한 물자 운송에 조선인들을 부리기 위해 대한제국 지방통치 시스템을 이용했고, 화폐제도나 우편시스템에도 깊이 관여해 자주권을 침탈하는 모습도 보인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오횡묵이 거닐던 평택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당시 평택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콘텐츠들을 추출할 수 있다. 내용에 관해서는 학술적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본격적인 콘텐츠화에도 시동을 걸 필요가 있다. 

 

황우갑 대표/민세아카데미
황우갑 대표
민세아카데미

■ 토론-1

황우갑 대표/민세아카데미

《평택총쇄》와 같은 귀한 자료는 근대 평택의 지역사 연구를 더 깊고 넓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지역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이 넓어졌다. 앞으로도 다양한 근대 관련 다양한 자료 발굴이 꾸준히 이어지면 좋겠다. 1920년대 이후 경부선 철도를 중심으로 한 평택의 지역경제 상황, 열차 사건 사고 기사가 많은데 평택쇄언이 이런 자료들의 연장선상에서 경부선 철도 부설 초기 상황을 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문화콘텐츠 개발 차원에서도 평택 관아 뒤에 있던 십의대 등 몇몇 사라진 공간 복원을 검토하고 팽성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평택지역의 선비정신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포의사 재건도 검토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구지현 교수/선문대학교
구지현 교수
선문대학교

■ 제2발제 : 

한시집 《평택총쇄》의 가치와 의미
구지현 교수/선문대학교

십의대, ‘봄놀이’ ‘추수’ 등 열 가지 즐길 거리 
오횡묵 시, 평택 옛 모습 보여주는 문학 작품

오횡묵은 지방관으로 다니면서 구한말의 사정을 알 수 있는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의 마지막 부임지인 평택에서도 시, 산문, 일기 등을 남겼는데 시는 함축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제공하는 사료로는 부족하지만 오횡묵 개인의 정서와 감정을 추적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평택에서 지은 800편 가까운 시에도 그의 감정이 담겨있다. 가뭄과 풍우로 인한 재해로 흉년이 이어지던 시절에 부임해 자애로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오횡묵의 시에 녹아 있다. 또한 평택을 도연명의 팽택과 관련지어 경물을 발굴하고 조성했다. 팽성관아 주위에 정원을 꾸며 ‘팔무’로 일컫던 평택에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주었다. 언덕을 정리해서 만든 ‘십의대’는 주변 경물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봄놀이 ▲피서 ▲추수 구경 ▲눈 감상 ▲부용산 구경 ▲바다 구경 ▲망한사 종소리 감상 ▲구경 ▲못 구경 ▲옛 성터 구경 등 계절별 경물과 주변 경치를 포함한 열 가지 즐길 거리가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오횡묵은 이 열 가지 즐길 거리를 제재로 열 수의 제영시를 지었다. 아울러 시대가 격변하던 시절, 철도 부설공사 초기였던 평택지역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태도로 신문물을 받아들였다. 철도 역시 백성들을 위한 새로운 제도로 인식했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 때문에 근심하고 우려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평택군수 오횡묵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절의 평택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형상화했다. 평택에 관한 한시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시는 평택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학 작품이다.

 

우대식 교수/숭실대학교
우대식 교수
숭실대학교

■ 토론-2

우대식 교수/숭실대학교

유명한 여항문학 모임인 송석원시사를 이은 칠송정시사의 일원으로 오횡묵을 소개했는데 오횡묵의 시와 여항문학의 접점으로 논의될 수 있는 시편들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린다. 또한 오횡묵이 평택에 재임하던 시기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제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인데 오횡묵의 시편들에서도 계몽의식이나 저항의식 같은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시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오횡묵은 총쇄류 말고도 지리서인 《여재촬요》와 같은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근대적 인식을 반영한 대표적인 분야가 지리라는 점, 시장설립에 대한 의욕 등과 더불어 오횡묵의 시에 나타나는 문물에 관한 관심은 오횡묵의 근대 정신과 깊은 관련이 있을 듯하다. 오횡묵의 시에 나타나는 근대성, 그리고 한시로서 오횡묵과 도연명의 유사성은 어떤 것이 있는지도 소개해 달라. 

 

권혁래 교수/용인대학교
권혁래 교수
용인대학교

■ 제3발제 : 

산문집 《평택총쇄》의 가치와 의미
권혁래 교수/용인대학교

오횡묵, 성실한 수령·시문과 사람 사랑한 학자
근대 리더십과 평택의 일면을 살필 수 있어

오횡묵은 고종연간과 대한제국기에 지방 각지의 지방관을 역임한 인물로 그의 마지막 공직은 평택군수 4년이었으며, 그로부터 5개월 뒤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총쇄》 19책에는 그가 평택군수로 재직하며 작성한 각종 산문이 실렸고, 20책에는 편지 106편이 실렸다. 그가 평택군수로 근무하던 시기는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어가던 시기이자 평택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던 변화와 충돌의 시기였다. 그는 성실한 지방 수령이자 시문과 사람을 사랑한 학자였다. 따라서 그가 쓴 ‘상의하달, 하의상달’의 글은 오늘날에도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오횡묵은 평택의 취석과 십의대, 포의단, 춘우실 등을 중심으로 평택의 자연과 경관, 명소를 노래했다. 평택군민의 공적 생활과 인간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글을 남겼고, 살인사건의 시신 부검을 하고 쓴 보고문에는 백성의 삶과 송사를 주의 깊게 살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경부선 철도와 관련해 인부 모집의 어려움을 기술한 보고문에서도 한 시대의 양상과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시선이 있다. 가뭄, 병충해, 해일 등으로 인한 백성들의 힘겨움을 기술한 보고문에서도 백성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공감력을 살필 수 있다. 편지를 통해서도 공적, 사적으로 소통한 방식을 살필 수 있는데 그는 시문과 자연을 즐겼고 인격과 시문이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기를 흠모했다. 평택군수의 위치에서 편지로 누군가에게 청원하거나 하소연하기도 했고, 행정구역 개선방안이나 도적을 방비할 계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개인적인 모습에서 근대의 리더십과 평택문화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임봄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임봄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 토론-3

임봄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오횡묵의 마지막 관직이 평택군수였다는 것으로 볼 때 만년에 지은 시와 산문은 다른 곳에서 지은 것보다 더 깊이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평택총쇄》에는 대한제국기 지역사 자료가 부족한 평택에서 행정사를 비롯해 역사, 지리, 사회, 농업, 자연환경 등 다양한 당시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 《평택총쇄》에는 대한제국기 이전에는 존재했으나 현재는 사라진 명소나 경관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명소나 경관들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 현재 평택시가 평택현 관아 복원을 위한 기초작업으로 ‘평택현 기초학술조사 용역’을 하고 있는데 《평택총쇄》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알려달라. 또한 보편적으로 편지는 수신인이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횡묵은 자신이 보낸 편지를 자신의 산문집에 실었다. 이것은 당시 시대상에서 일반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답변해 달다.

 

 

정리/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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