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국 유학, 국제수어통역 전공
2023년 8월 수어민들레 사무실 개소

 

“수어문학으로 농인의 언어, 문화, 정체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유학길에 오르다

농인聾人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수어민들레’가 2023년 8월 15일 평택시 고덕동에 사무실을 얻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의 운영을 총괄하는 손청(42세) 수어민들레 운영팀장은 대표를 맡은 남편과 함께 농인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과 수익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저는 중국 랴오닝성 안산시에서 왔어요. 지난 2006년 국제수어통역을 배우기 위해 한국 유학길에 올랐고,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뤘죠”

손청 팀장은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청력을 잃었다. 부모님은 그런 그가 기죽지 않고 자라게 하려고 열과 성을 다했다.

“아버지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동등하게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기죽지 않도록 춤, 발레, 미술 등 다양한 취미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셨죠”

고향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농인학교에 다닌 그는 대도시에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자 북경연합대학교에 진학했다.

농인 응시자 2000명 중 5위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농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전공은 예술디자인과 컴퓨터공학 단, 두 개뿐이었다.

“특수교육을 배우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예술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던 중 나사렛대학교 학생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 수어통역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이때부터 한국어를 공부하며 유학을 준비했어요”

손청 팀장은 부모님의 거센 반대에도 설득 끝에 한국 유학길에 올랐고, 나사렛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수어통역 전공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국 사회에 정착하다

손청 팀장은 2008년 대학원 졸업 후 충남농아인협회에서 실습을 거쳐 2009년부터 정식 직원으로 채용돼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충남농아인협회 수어교육원 운영 업무를 담당했어요. 수어교육 사업을 관리하면서 강사를 섭외하고 운영하는 일이었죠. 4년 반 정도 근무하고 남편의 유학길에 동행하면서 그만두게 됐습니다”

유학을 허락받을 당시 한국 남자와 결혼하지 않기로 한 부모님과의 약속은 남편을 만나면서 어기게 됐다.

“대학원 시절 수어연극경연대회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신청 방법을 몰라 남편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이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연락하면서 만남을 이어갔고 결국 가정을 이뤘죠”

한국과 중국, 각국의 문화적 차이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한 양가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끈질긴 설득 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결혼 후 남편의 유학길에 동행하면서 유럽과 한국, 중국을 오갔습니다. 중국에서 잠시 수어통역기관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강원도 횡성수어통역센터에서 1년 10개월 정도 근무했죠”

아이를 갖기 위한 여러 노력에도 임신이 되지 않아 중국에 수어통역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던 손청 팀장은 2년 만에 아이를 가지면서 한국 생활을 계속 이어왔다.

 

수어민들레

수어민들레는 손청 팀장의 남편 변강석 교수가 농인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자 지난 2015년 설립한 기관이다.

“수어민들레는 국제수어책 발간, 해외강사 초빙 수어문학 강연 등 사업을 진행해 왔어요.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작년 8월 사무실을 마련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는 한경국립대학교와 강남대학교로 출강 중인 남편과 함께 2020년 평택에 정착했고, 이를 인연으로 지역에 사무실까지 개소했다.

“청인들은 영화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문학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데, 농인들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어문학의 창작과 보급을 통해 농인의 언어, 정체성, 문학을 지키고 발전시키고자 앞장서고 있죠”

손청 팀장은 무엇보다 농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농인들은 수어통역센터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더 나아가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어민들레도 자생력이 강한 민들레의 의미를 담아서 지은 명칭이죠”

수어민들레는 올해 수어예술, 수어문학과 함께 농인이 직접 연극을 공연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평택시문화재단 등 다양한 기관의 공모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손청 팀장은 농인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문학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손청 팀장과 수어민들레의 이러한 노력으로 농인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 자립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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