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나 넘으면 또 산, 그래도 웃으며 살아요”

20여 년간 장사, 지켜온 건 정직과 신용
배움의 열망, 이젠 전문요리 배우고 싶어

 
세상을 순수한 눈으로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놓은 굴레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굴레에 갇혀 스스로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람에게서 아직도 남아있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을 발견하게 되는 일은 가뭄의 단비처럼 고맙고 행복하다.

힘들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
“스무 살에 결혼했어요.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더욱이 장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손님이 올 때마다 무서웠어요. 그래도 그냥 정직하게만 장사하자 하는 마음으로 오는 손님들에게 좋은 물건을 내주며 장사했죠. 그랬더니 손님이 손님을 몰고 오면서 장사가 제법 잘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지금은 통복시장에서 꽤 오래 장사를 한 편에 속하지만 지금도 물건에 대한 정직한 신념만큼은 꿋꿋하게 지켜가고 있어요”
김광화(49) 대표는 현재 통복동에서 남편과 함께 건어물 가게를 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이 장사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참치대리점을 맡아 운영하며 전국 1등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고 아이들이 회를 너무 좋아한다는 이유로 참치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통복시장에 자리를 잡고 20여 년간 장사를 했지만 특별한 장사 요령이 없는 그녀가 꾸준히 지켜나가고자 한 것은 정직과 신용 뿐이었다.
“결혼해 시댁에서 8년을 살다가 분가해 7~8집이 모여 사는 판자 집에서 아이들을 키웠어요. 그러다 간신히 내 집을 마련했는데 남편이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모든 걸 다 잃고 월세로 가야 했죠.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3년 동안은 아이들 앞으로 든 보험도 다 해약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어느 정도 기반 잡고 살만하면 사기를 당하고 또 괜찮다 싶으면 사람에게 이용당해서 번번이 모든 걸 잃곤 했죠. 얼마 전에는 노후에 살 집을 지으려다 그만 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집 지을 돈 전부를 고스란히 잃고 겨울에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에서 몇 달을 살기도 했죠”
김광화 대표는 수많은 시련들이 닥쳐올 때마다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기다리는 게 인생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고 털어놓는 그녀는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며 미소 짓는다.

산하나 넘으면 또 산이 기다려
“참 많이 울었어요. 약삭빠르게 살지 못해서 그런가 하고 자책도 많이 했죠. 그런데 저나 남편이나 천성이 그런 걸 어쩌겠어요. 어떤 사탕공장 주인은 사업이 기울어 우리에게 젤리사탕을 좀 팔아달라고 부탁해서 안쓰러운 마음에 덜컥 받았는데 팔리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이왕 받은 거니까 오는 손님들마다 한줌씩 나눠줬더니 어느새 슈퍼에서도 그 젤리사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대요. 이젠 사탕 받는 기분에 저희 가게를 찾는 분도 많이 생겼죠”
김광화 대표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마다 손에 한주먹씩 사탕을 쥐어준다. 돈 주고 사서 덤으로 주는 일이 쉽지는 않으련만 그래도 전통시장을 찾는 것은 덤에 붙여 전해지는 사람의 정이라는 걸 김광화 대표는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니면서 반장을 했어도 학부모 모임 한번을 못 갔어요. 그래도 아들은 중앙대 법대를 나와 로펌에서 일하고 있고 딸은 이화여대 간호학과를 나와 간호사로 일하고 있죠. 막내딸은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해외 유학 중이구요. 다들 착하게 잘 자라서 제 앞가림 할 나이 되었으니 이젠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지내고 싶어요”
김광화 대표는 그래도 자신이 항상 씩씩하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갈 수 있는 건 올곧게 자라 주는 세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활짝 웃는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선택해 아이들 키우고 삶에 허덕이느라 엄두도 못 냈던 공부를 이제는 꼭 다시 하고 싶다고.

전문적인 요리공부 하고 싶어
“학교 다닐 때 꿈이 선생님이 되는 거였는데 일찍 결혼하면서 다 무산됐죠. 제가 공부를 중단한 걸 한으로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남편이 몇 해 전 평택에서 하는 카네기에 입학시켜 줬어요. 꽤 비싼 돈을 들여야 하는데도 말이죠. 입학해서는 교수님이 가르쳐주시는 대로 정말 열심히 배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사실이 제겐 더 큰 기쁨이에요. 지금도 두고두고 남편에게 고맙게 생각해요”
김광화 대표는 카네기CEO클럽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그곳에 모인 많은 분들 모두는 자신의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카네기에서 공부하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고 부족한 자신에게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알려주려 하던 그분들의 마음에 감동했다고.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건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는 거예요. 제가 요리 만드는 거 참 좋아하거든요. 지금도 시장에 나오면 요리해서 나눠먹기도 하는데 제가 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참 좋아요. 물론 공부도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보면 시간이 없어 그게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현재 원곡에 아담한 집을 지었다는 김광화 대표, 낮에는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저녁이면 집에 있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는 그녀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마음을 다해 진심을 전하는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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