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교직, 돌아보면 모두가 아련한 추억”

평생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 후회 없어
참 교사가 되는 길을 아이들로부터 배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사는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삶을 이끌어주는 등대였다. 현재는 교권이 많이 추락해 교사들의 마음고생이 심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참된 교사의 길을 가고자 노력하는 훌륭한 스승들이 많다는 사실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오는 8월 교직생활 마무리
“아이들과 42년을 살아오는 동안 많이 행복했어요. 돌아보면 그것들이 모두가 아련한 추억이네요. 제가 처음 교사생활 시작한 게 1971년 3월 충청북도에 있는 산척초등학교인데 그때는 지금과 많은 것이 달랐어요. 가난했지만 따뜻한 정이 있었고 마음이 풍요로웠지요”
홍원초등학교에서 오는 8월 31일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이송희(64) 교장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42년을 회고하듯 잠시 말을 멈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평교사로 퇴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이송희 교장에게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은 그녀의 삶을 성숙하게 하고 빛나는 행복을 안겨준 보석 같은 시간들이었다.
“첫 발령 받은 학교는 버스에서 내려 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는데 울퉁불퉁한 자갈길이었지만 새소리 들리고 공기가 좋은 길을 걸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노래가 저절로 나왔어요.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노래하고 춤추며 가는 여선생이라고 말하곤 했지요”
책이라고는 교과서도 구하기 어렵던 시절, 교사가 된 이송희 교장은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자신이 읽은 동화를 들려주며 그들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시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무줄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첫 소망 그대로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도 포승읍 작은 시골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아이들을 닮은 소박하고 해맑은 웃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교사의 소명 가르쳐준 아이들
“저도 처음에는 다른 선생님들처럼 권위적이고 공부만을 강요하던 그런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산골 오지에 있는 학교에서 제 스스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지요. 4학년이 돼도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1학년 교과서를 다시 꺼내들고 그 아이들에게 한글과 덧셈뺄셈을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한글을 읽게 된 뒤 마을에서는 여교사가 부임해 동네에서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됐다고 기뻐하셨지요. 그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송희 교장은 외지에서 아이들 건강검진을 하러 온 의사가 아이들의 때 묻은 손을 어루만지며 아이들의 건강을 염려해주는 것을 보고 그 손 한번 잡아주지 않은 채 씻으라고만 명령했던 자신에 대해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하도 시골학교라 당시 아이들 급식비가 지원됐는데 교장선생님이 그 돈으로 아이들 국을 끓여주자고 하셨어요. 아이들 도시락이 고작해야 꽁보리밥에 새우젓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때 교사가 가르치러 학교에 왔지 밥해주러 왔느냐며 속으로만 투덜거렸는데 먹을 것이 없었던 시골 아이들이 국에 넣고 끓여 맛이 다 빠진 멸치까지 서로 먹으려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는 얼마나 제 자신을 반성했는지. 그때부터는 정말 진심을 다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노력했던 기억도 나네요”
이송희 교장은 자신을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게 해 준 것은 당시 교사의 사명을 가르쳐준 시골 아이들이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을 어른들이 교사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할 땐 직접 가꾼 마늘이며 오이 같은 농산물을 누가 놓았는지도 모르게 슬며시 집 앞에 놓아두었다 말하는 이송희 교장은 돌아보면 모든 것이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이었고 아직도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누던 시절이 못내 그리워진다며 조용히 웃는다.

그림 그리고 꽃 가꾸며 살 것
“예전에는 교사들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 나머지공부도 시켜야 했고 가정방문도 해야 했지만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아이들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곤 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환경은 많이 좋아졌는데 다들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이송희 교장은 홍원초등학교에 부임한 후 ‘빛그리미’라는 수채화 모임에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그림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송희 교장은 이제 정년퇴임을 하고 난 뒤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살 거라는 바람을 전한다.
“예전 가르치던 제자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선생님과 공부했던 추억이 아니라 함께 뛰어놀던 추억을 가장 많이 기억하더라구요. 동화 듣던 이야기, 함께 천천히 걸으며 이야기 나누던 일 등이 기억에 많이 남는대요. 학교는 아이들이 와서 행복한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제 평소 생각인데 돌아보니 너무 많은 추억들이 남아있네요. 지금은 홍원초등학교 아이들을 학년별로 교장실에 불러 서로의 꿈도 이야기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그동안 교사로, 두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바쁘게 살아왔다는 이송희 교장, 오는 8월 퇴임한 뒤에는 마당이 넓은 집에서 많은 꽃들을 가꾸며 살고 싶다는 이송희 교장을 보고 있자니 평생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온 그녀의 삶을 대변하듯 이른 새벽 야생화 향기가 담긴 투명한 수채화 한 폭이 아련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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