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모리꼬네

1966년 서울 명보극장에서는 기상천외한 영화 한편이 상영되었습니다. 바로 1950년대 미국 TV에서 연속극으로 만들어진 카우보이-서부들의 이야기를 그린 ‘로하이드’ 드라마에 출연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서부영화 ‘황야의 무법자’ 였습니다.
이미 흑백 서부영화가 극장가에서는 인기가 사라지고 한물 간 시기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나간 서부영화 역사를 송두리째 뒤엎는 가히 혁명적인 ‘마카로니웨스턴’으로 서부영화의 본고장 미국이 아닌 이태리에서 제작된 서부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어지며 자막이 뜨는 역동적인 배경화면이 나오면서 지금껏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자극적인 영화주제곡 ‘방랑의 휘파람’은 듣는 사람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로멘틱한 서부영화 음악이 아니고 마치 눈앞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듯 박진감 넘치는 영화 주제음악은 영화 스크린을 마주한 모든 관객을 서부개척시대 주인공으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누구야? 누구? 뭐라구?  이 영화음악 작곡자가 바로 ‘엔니오 모리꼬네’라구!
그 게 누구야? 뭐하든 친구야!? 아무도 모른다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영화를 만든 이태리에서도 ‘엔니오 모리꼬네’는 생소한 이름이었습니다.
엔니오 모리꼬네.
감히 베토벤보다 더 위대하고 모잘트 보다도 더 감미로운 음악을 만든 작곡자로 칭송을 받아 마땅한 음악가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연출한 영화 ‘황야의 무법자’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가 일본 검객 ‘사무라이’ 이야기를 담아 만든 영화 ‘황야의 용심봉’을 서부영화로 바꾸어 페러디 한 작품이었고 ‘황야의 무법자’ 이 한편의 영화로 ‘앤니오 모리꼬네’는 단숨에 세계적 명성을 얻게됩니다. 그리고 1984년 ‘세르지오 레오네’는 ‘엔니오 모리꼬네’와 손을 잡고 1930년대 미국 뉴욕 부르클린을 배경으로 이탈리아계 이민 소년들의 우정을 그린 영화 ‘원스 어펀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다시 한 번 아름다운 음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합니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는 영화를 다 만들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예술적 감각 보다는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의 흐름에 맞추어 영화편집을 마쳤다는 일화를 남길 만큼 음악과 영화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영화였습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면 출퇴근 시간은 물론 낮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MP3를 통해 나 홀로 음악감상을 하며 지리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음악은 가히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릴 때 들었던 음악은 죽을 때까지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치매에 걸려서 고생을 하는 노인들도 어릴 때 부르던 노래는 잊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래와 음악이 치매를 완화시키는 치료용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사회적으로 방송과 통신이 일반화 되고 보편화되어지면서 음악은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 간에 분쟁을 일으키는 문화장벽과 갈등까지 해소시켜주고 있습니다.
1986년 ‘엔니오 모리꼬네’는 롤랑 조폐가 연출한 영화 ‘더 미션’에서 다시 한 번 영화음악사에 길이길이 남을 아름다운 음악을 선보입니다. 1750년 예수회 신부 ‘가브리엘’이 남미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미션’은 ‘이과수’ 폭포를 배경으로 위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주제곡인 ‘가브리엘스 오보에’는 뒷날 영국 팝페라 여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영화음악 작곡자인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오랜 시간 간청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내 ‘넬라 판타지아’라는 제목을 달아 새로운 노래로 만들었는데 ‘넬라 판타지아’는 지난 해 모 방송국 프로그램 ‘남격’에 소개되어 한 동안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영화 ‘미션’이 우리나라에서 상영되기도 전 평택 ‘필하모니’ 커피숍 스피커에서는 ‘미션’의 주제곡인 ‘기브리엘스 오보에’가 매일 매일 흘러나왔습니다. 초임발령을 기다리는 젊은 선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교육개혁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많은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평택 벽지학교를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듯 하루에 3~4 번 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간벽촌 시골학교에서 초임 발령을 받은 교사들이 겪어야 하는 가장 큰 고통은 문화의 단절이었습니다.
변변한 영화관 하나  없는 것은 물론 산골에서는 일과가 끝나고 잠시 몸을 쉴 문화공간이 십리를 걸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문화의 갈증을 느낀 초임교사들은 자신의 신념마저 포기한 채 도회지로 떠나갔습니다. 그 시간 ‘필하모니’ 커피숍은 다양한 계층 사람들이 모여드는 평택의 문화공간으로서 음악회와 시 낭송회, 미술 전시회를 열며 문화 불모지 평택에 새 바람을 일으켰고 그 중심에는 현재 남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준경 선생이 있었습니다.
인구 3만을 겨우 넘기던 평택이 어느새 인구 4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되면서 수많은 ‘자리’가 생겨나면서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장長’에 ‘대표’에 ‘위원장’ 자리가 수두룩해졌지만 평택을 살리고 지역사회 정신을 이어나가는 문화에서는 아직도 더 발전되어져야 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문화는 돈을 먹고 자랍니다. 하지만 돈 이전에 지역사회 문화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문화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저작권자 © 평택시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