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는 입항 선박을 조종하는 ‘지휘자’

안개 속 부두에 접안시킬 때는 초긴장
힘든 직업이지만 즐기며 살려고 노력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도선사’라는 직업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봉서열 3위로 손꼽히는 도선사는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입항할 수 있도록 총 지휘하는 사람으로 전국에서도 230여명에 불과하며 평택항에는 모두 28명의 도선사가 활동하고 있다.

영광은 순간, 업무는 초긴장 3D
“도선사는 올림픽 주경기장보다 큰 300~400미터 크기의 수십만 톤급 광석 선박이나 원유선박을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 국가고시에 합격해야만 도선사 자격을 얻게 됩니다. 아무리 선장이라 해도 항내로 들어올 때는 자신의 선박을 조종할 수 없고 도선사의 지시에 따라야 하죠. 자칫 사고라도 나면 항로나 부두가 폐쇄되기 때문에 물류대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위험요소들을 모두 파악하고 선박이 안전하게 항구에 입항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바로 도선사입니다”
평택당진항도선사회 윤병원(58) 회장은 도선사라는 직업을 대형 선박을 조종하는 ‘지휘자’라고 표현한다. 워낙 대형선박이다보니 조종하는 사람만도 선장을 비롯해 20~30여명이 팀을 이뤄 배를 움직이고 예선도 사이드로 4척, 뒤에 1척이 있어 이들을 총 지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 한 순간의 방심이라도 있는 날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일을 할 때는 항상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도선사들은 항상 초긴장 상태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심적 부담이 상당합니다. 365일 24시간을 휴일이나 주야도 없이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이 있으면 몇 번이라도 배가 있는 곳까지 보트를 타고 나가 거친 파도 속에서 수십 미터나 되는 줄사다리를 올라 승선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게다가 안개까지 낀 상황이 되면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레이더에 의존해 감각으로만 배를 부두에 접안시켜야 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아찔할 때도 많습니다”
도선사가 되기 위해선 해양계 대학을 졸업하고 항해사와 선장으로 약 20여 년간 승선 경력을 갖춰야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이론검증과 구술의 2단계 시험 후 6개월의 실무 수습을 거쳐 3차 시험에 통과하면 2종 도선사가 될 수 있다. 이후 2종 도선사로 2년의 경력이 생기면 1종 도선사가 되는데 40대 중반에 처음 2종 도선사가 되면 빠른 편이다. 그러나 윤병원 회장은 다른 도선사들에 비해 ‘마흔 두 살, 국내 최연소 도선사’라는 한 줄 기록을 더 갖고 있다.

태풍과도 맞서본 최연소 도선사
“도선사가 되기 이전에는 선장으로 각국을 누비며 다녔죠. 가족과는 항상 떨어져 있어야 해서두 아들이 크는 것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어요. 아이들은 항상 아빠를 사진으로만 봐야 했기 때문에 한 번씩 제가 집에 갔을 때 사람들이 ‘아빠 어딨니?’라고 물으면 제가 옆에 있어도 항상 사진첩을 들고 와서 사진 속 아빠를 가리키곤 했죠. 이젠 모두 장성해서 각자 제 갈 길을 가고 있지만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한 건 지금도 종종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윤병원 회장은 선장으로 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일본에서 올라오던 초특급 태풍과 맞섰던 점을 꼽는다. 일반적으로 태풍을 직접 만나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게는 태풍의 눈에서 직접 머물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태풍의 눈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태풍의 눈은 절대 고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큰 파랑은 없었지만 20미터 되는 하얀 물거품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물거품이 배의 녹슨 철판을 훑고 지나가면 배가 금방 반짝반짝해질 정도였죠. 그런 태풍과 더불어 4~5일 정도 같이 올라왔어요. 잊히지 않는 기억이죠”
윤병원 회장은 당시 태풍과 힘겹게 싸웠던 일들을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족에게도 타인에게도 선장은 항상 굳건하고 멋진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젊은 시절 윤병원 회장의 신념 때문이었다.

배움을 멈추지 않고 즐기는 삶
“선박의 신속하고 안전한 출입항으로 항만의 가동률을 향상시켜 국가의 기간물류에 기여한다는 것, 그리고 항계내외의 해양사고를 예방하고 오염방지에 기여한다는 점은 도선사로서의 큰 보람이라 할 수 있죠”
윤병원 회장은 모든 일상은 코를 잡고 원을 그리며 돌 듯 한 방향으로 도는 것이라 가끔은 반대방향으로 돌기도 해야 제자리를 고수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창의적인 일을 할 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는 그는 아직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어떤 일이든 즐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방송대와 사이버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전공해 학위를 따기도 했고 현재는 제 전공분야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도선사에 관련된 선박 조종론에 관한 책도 집필 중이고 강의경험을 살려서 해사법에 관한 책도 내려고 합니다. 최고령 박사가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모든 일들을 즐기기 위해 노력한다는 윤병원 회장, 그에게는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도선사라는 직업도, 그 외에 배우고 익히는 모든 일들도 이제는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행복하고 즐거운 창작의 과정으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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