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도 아이들과 함께 할 겁니다”

은혜여중 교장 퇴임 후 대안학교에서 새 삶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어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삶과 인품이 얼굴에 그대로 투영돼 드러난다는 뜻이다. 인생을 은퇴 전과 은퇴 후 시기로 나눠 생각할 때 평생의 가치관과 인품이 투영된 은퇴 후 삶이 훨씬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점에는 그래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2의 인생, 대안학교에서 새 출발
“나이 들어서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래서 은퇴 후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전문가과정을 공부하며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도 했죠. 서울역 앞에 있는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실습을 했었는데 노숙자 대부분이 성장과정에 문제를 갖고 있더라구요. 성장과정에서 상처받지 않은 아이들은 평탄하게 성장하는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힘든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예닮대안학교 민정탁(67) 교장은 1976년 송탄 은혜상업고등학교에서 처음 교직생활을 시작해 2008년 은혜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32년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할 때 까지만 해도 은퇴 후까지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2011년, 지인이던 신윤철 장로가 평택에 학교 중도 탈락한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아 와서 그쪽 분야에 경험이 많으니까 막연하게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다보니 내가 그동안 교직생활을 참 엉터리로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그 자리에서 꾸짖어 바로잡아주는 교사이긴 했어도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할 줄 아는 교사는 아니었던 거예요. 교사가 공감할 수 있으면 아이들은 분명히 변할 수 있는데도 말이에요”
민정탁 교장은 대안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문제 상황 뒤에는 그런 상황이 생길만한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고 바로잡아주려 했던 지난날들이 후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교사, 상처 끝까지 치유해야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산다고 했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후회되는 일이 많아요. 교직에 있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두 학생이 있는데 한명은 제가 수업시간에 체벌을 했던 학생이고 또 한명은 퇴학을 시켰던 학생이었어요. 퇴학시킨 학생은 졸업식 날 현장에 오기도 했는데 지금도 두고두고 잊히질 않네요”
민정탁 교장은 교직에 있을 당시 가장 잊히지 않는 학생 두 명에게 화해와 용서의 편지를 써서 학교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 아이들이 글을 읽으리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함이었다. 화해와 용서의 편지는 당시 전교생이 써서 각자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막상 자신은 편지 보낼 주소를 몰라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써서 신문에 싣게 되었다고.
“선생은 아이들의 곪고 상처 난 곳을 수술하고 치료하는 외과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수술만 하고 이후 치료를 안 하면 아이들은 상처가 덧나서 죽을 수도 있잖아요. 저 역시도 상처가 보이면 수술은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끝까지 치료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배경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모두 우리 대안학교 아이들 덕분에 배우게 된 거죠”
민정탁 교장은 대안학교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비록 정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꿈과 미래를 찾아 열심히 전진하고 있어 이 아이들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삶이 떠난 흔적도 아름다웠으면
“제가 어렸을때 가정형편으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면서 상처와 두려움이 많은 아이로 자랐습니다. 지금 대안학교에 있는 아이들도 대부분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많은데 그 아이들을 보듬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죠. 주변의 관심과 환경이 뒷받침되면 어떻게든 변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이니까요”
민정탁 교장은 검정고시나 취업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인성교육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이미 많은 아픔을 겪은 뒤 모인 아이들이니만큼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 정규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 밖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이들을 위해서라도 대안학교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교육을 맡아 줄 자원봉사 할 분들도 계시고 취지에 공감하는 퇴임교사들도 많으니 평택시에서 쓰지 않는 건물만 제공해 준다면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남부·서부·북부에 하나씩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향후 다문화 아이들과 장애 아이들에게도 대안학교에서 참교육의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민정탁 교장, 그는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세상을 떠나도 흔적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내비치며 환하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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