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초보, 현재 이전삼기(二顚三起) 중입니다”

만만해 보인 포도농사,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
귀농인들, 정신무장 위해 인문학으로 거듭나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삭막한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낀 젊은 사람들에서부터 퇴직 후 전원과 함께 생활하려는 사람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이들은 나름대로 시골에 적응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막상 시골에 정착하다보면 부딪히는 난관이 많아 실패를 거듭하기도 한다. 

귀농 3년째, 오뚝이가 되다
“작년엔 멋모르고 배운 대로 따라만 했다가 전체 수확량의 15%가량을 건졌어요. 완전히 망친 거죠. 올해는 무농약 재배를 시도했는데 30%는 벌레가 먹고, 30%는 상품가치가 없고, 그래도 나머지를 건졌어요. 동네 형님하고 둘이 포도밭 3500평을 직접 김을 매다가 힘들어서 죽을 뻔 했는데 내년에는 풀이 좀 덜 자랄 수 있게 하는 방법도 연구해봐야 할 것 같아요”
대지포도원 현종상(45) 대표는 부모님이 있는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겠다는 꿈을 현실로 이뤄냈다. 야심차게 농군의 생활로 들어섰으나 막상 힘들여 농사를 지은 뒤 그 앞에 닥친 것은 경험 없는 농군을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은 형편없는 수확량이었다.
“포도농사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포도농사의 대부(代父)도 찾아다니고 했는데 이론상으로 배운 것은 경험 앞에 무용지물이더라구요. 첫 해에는 농사꾼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절절하게 배운 한 해였어요. 경험이 많은 분들은 미리미리 알아서 척척 대비하고 하지만 우리 같은 초보들은 경험도 없으니 그저 노력할 밖에요”
사업을 하며 돈도 많이 벌어봤다는 현종상 대표는 자신이 하던 사업을 물려받은 후배가 1년에 5000만 원씩을 벌 때 자신은 5000만 원을 고스란히 농사에 쏟아 부어야 했다고 털털하게 웃는다. 가끔 내가 뭐하고 있나 한심한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배우고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초보 농군이 마냥 넋 놓고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편의 시가 용기 북돋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저를 살린 건 친구가 보내 준 한편의 시였어요. 도종환 시인이 쓴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였는데 그 시를 본 후 거짓말같이 용기가 나더라구요. 모든 사물들이 흔들리며 꽃도 피는데 지금의 좌절도 바로 그런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종상 대표는 당시 읽은 시가 지금도 가슴에 아련하게 남아있다고 말한다. 문학이 죽고 시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에서 한 해 농사를 망치고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그가 짧은 한편의 시를 읽으며 얻은 건 좌절을 딛고 일어나 다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고 용기였다.
“농민들이 농사짓는 기술이나 지원은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많이 받을 수 있는데 정작 절망에 빠졌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정신적인 부분을 배우는 기회는 없는 것 같아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인문학적 소양으로 정신도 탄탄하게 무장할 수 있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겪게 되는 좌절에서도 다시 희망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예요”
현종상 대표는 자연과 더불어 생활한다는 것은 너무 많은 걸 요구한다고 털어놓는다. 순응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다 몸으로 체득해야 했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준비 후 귀농해야
“어떤 분이 어느 날 우리 농장에 와서 나무들을 보더니 첫 말이 나무가 기운이 빠져있네 하시는 거예요. 마침 제가 바로 직전에 나무의 기운을 좀 뺄 수 있게 시비를 했거든요. 저는 시비를 하고 나서도 잘 못 느꼈는데 그분은 나무 상태만 힐긋 보고도 나무가 기운이 있는지 없는지를 아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경험인거죠. 나무가 이상하다 느낄 때는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 스스로가 답을 찾아내야 할 때가 많아요. 답은 없어요. 끊임없이 시도해보는 것 밖에는요”
현종상 대표는 현재 고덕면 당현리 대지포도원에서 여섯 가지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모든 물량이 포도원 자체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어린이 체험학습도 함께 하고 하는 등 젊은 농군답게 다양한 방법으로 포도농장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절망하고 또 절망하는 일의 반복이지만 그래도 다시 농사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봄에 싹이 돋을 때 갖는 희망 때문이다.
“만일 귀농을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몇 가지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농업분야는 FTA 같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흐름이 있기 때문에 미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에서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 중 최고를 찾아가 컨설팅을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또 농사는 자연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기후나 자연에 관한 지식도 있어야 하고 농사에 관련된 기술들도 미리 충분히 검토 한 후 모든 면에서 확신이 설 때 귀농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귀농의 꿈을 이뤄낸 후 더 큰 난관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했다며 큰 소리로 웃는 현종상 대표, 그는 현재 새내기 이지만 자연과 더불어 칠전팔기 할 수 있는 소양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참다운 농군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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