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춤추는 청정 자연환경 ‘신왕골’

“자연농업 좋아 고향마을로 귀향”
“효열비, 孝 정신 면면히 이어와”

 
현대인은 문명의 발달로 예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향유하고 있는 반면 과거에 쉽게 접할 수 있던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야 한다. 개발로 인해 평택의 지형이 바뀌고 예전엔 상상하기 힘들었을 문명의 이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안전한 먹거리 하나 구하기 위해 ‘참살이’라는 거창한 신조어까지 들먹여야 하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대변해준다.
평택호반에 자리한 현덕면 신왕2리는 아직까지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이 남아 있는 평택의 몇 안 되는 청정지역 중 한 곳이다.
“가장 경관이 좋은 곳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요? 하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뒷산에 흐르는 계곡엔 아직 가제가 살고 여름밤엔 반딧불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죠”
 
한 여름을 달구던 태양빛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높아만 가는 초가을 문턱에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을 맞고 흔들리는 녹색 물결 위로 떠있는 뭉게구름을 볼 수 있는 곳. 현덕면 신왕2리의 초가을 풍경은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신왕2리 안현규 이장은 젊은 시절을 타향에서 보냈다. 대기업의 엔지니어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그가 은퇴 후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은 지난 2007년.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었죠. 고향이란 그런 것 아닌가요? 뒷산에서 나물을 캐고 논에서 물고기를 잡고 들녘 끝에 펼쳐진 개흙에서 망둥이를 잡아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아직 그 아름다움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누구라도 다시 오고 싶을 것입니다”
삶의 방식이 달랐던 그에게 농촌 생활은 만만치 않은 어려움으로 다가왔지만 귀향 3년 만에 이장이 될 정도로 땀과 열정을 고향 마을에 쏟았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요.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어릴 적과는 생활방식이 너무 많이 달라져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이제야 농촌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제일의 덕목, 어르신 공경
신왕2리는 현덕면에서 가장 동남쪽에 자리한 곳으로 자연마을로는 ‘원신왕’ 혹은 ‘신왕골’로 불린다. 현재 1, 2리로 나뉘어 있는 신왕리의 기원이 ‘신왕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가 500년 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배 씨가 처음 마을을 이뤘다고 들었는데 흔적을 찾기 어렵고 지금은 대구 서 씨와 순흥 안 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안영규 노인회장은 평생을 ‘신왕골’을 지키며 살아온 마을 터줏대감이다.
평택호반 자전거길이 지나는 마을 앞 언덕은 나루터가 자리했던 곳이다. 어항(漁港)보다는 뱃길을 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이 강했던 신왕나루는 교통의 요지로 각광을 받았다.
“육로로 충청남도 둔포나 평택읍내로 나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했지만 뱃길을 통하면 금방이었지요. 둔포에서 장을 보고 한가득 짐을 싣고 나루에 도착하면 즉석에서 물물거래가 이뤄지는 등 무척 상업이 활발했던 곳이었습니다”
신왕나루 앞 야트막한 언덕은 인근에서 유원지 역할을 할 정도로 절경을 자랑했다. 일기가 청명한 날이면 산자락 이곳저곳에서 풍류를 즐기는 한량들로 넘쳐났고 마을 경기도 들썩이곤 했다. 지금은 논으로 변해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주막도 있었다는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을 보면 그 성세를 가히 짐작할 만하다.
“뻘에서 뛰놀던 우리 마을 아이들은 피부병이 없었습니다. 요즘 머드를 활용한 건강법이 많이 유행하고 있는데 우리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공짜로 머드팩을 한 셈이죠”
마을 어귀에 자리한 ‘효열비각’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함께 신왕골 주민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마을 유산이다. 효열비에는 “신왕골에 시집온 경주 이 씨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뜨자 몸이 불편한 시어미를 업고 다니며 구걸로 연명하면서도 봉양을 멈추지 않았으며 시어미가 죽자 3년 시묘살이를 하던 중 고단함을 이기지 못해 47세 나이에 죽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런 효열비의 효(孝) 정신은 ‘신왕골 제일의 덕목은 어르신 공경’이라는 정신 유산으로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휴양지, 농촌 테마마을 만들 꿈
“요즘 6차 산업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고령화로 일손이 없고 어르신들의 일거리 부족이 가장 큰 농촌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터여서 더욱 관심이 가는 일입니다”
안현규 이장은 신왕골이 갖고 있는 자연환경을 살린 ‘테마마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가 귀향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자연농업’이고 가족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을 택한 것도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가장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휴양지를 테마로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죠. 유명하다는 마을은 다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한국농수산대학이 주관한 교육도 받아 이론적인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돈이더군요. 더 힘든 것은 외지인 소유 땅이 많아 개발에 동의를 얻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마을 환경을 저해하는 폐가 처리 문제도 신왕골이 가진 과제 중 하나다.
“경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범죄 장소로 이용될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금 문제로 인해 여간해서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토지주가 외지인이라 연락할 방법이 없는데 마을에 초대해 실상을 보여주고 설득해 정리할 수 있도록 시에서 소유주에게 연락을 취해줬으면 합니다”
임금이 나오는 묏자리가 있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로 명당소리를 듣는 신왕골에는 오염되지 않은 산천만큼이나 순박한 마을사람들이 모여 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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