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정비·요리 모두가 내 직업이죠”

여성도 능력 있어야 한다는 것 살며 깨달아
이젠 초등학교에서 일본어 강사 활동하고파

 
요즘은 예전과 달리 여성들도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능력들을 가져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남성들을 능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 남성과 여성의 직업에 구별이 없어지면서 예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요리연구가로 아들과 음식점 경영
“아들이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고 요리사의 길로 접어들면서 아들과 함께 한식집을 시작했어요. 6남매 중 맏딸이어서 어려서부터 음식을 직접 해보며 자랐거든요. 음식이 좋았고 원 없이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힘은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손님이 참 많았었죠. 가게 있던 자리가 아파트 부지로 수용되면서 비싸게 주고 샀던 많은 냉장고들을 처분하기가 아까워 내가 쓰자는 생각으로 반찬가게를 시작했는데 한식집과 같은 상호를 쓰니까 지금도 알아보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많아요”
공도읍 진사리에서 ‘유진네 수제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영순(51) 대표는 가족들과 함께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마 전 평택포럼이 일본에서 ‘한일 시민우호교류포럼’을 진행했을 때 우리 측 요리연구가로 일본 대표들에게 시원한 한국의 고추동치미와 궁중음식으로 손꼽히는 더덕섭산적을 선보여 모인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유창한 일본어 실력으로 한 번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가 바로 이영순 대표다.
“간판에 제 얼굴을 넣는다고 했을 때 처음엔 무척 쑥스러웠는데 지금은 그만큼 더 책임감이 생겨요. 재료도 더 신경 쓰게 되고 매일 5시에 나와 일하고 매일 김치를 담그지만 힘든 줄 모르고 일하고 있죠. 손님 개개인의 입맛을 맞추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제가 마음을 다해 음식을 만든다면 그 정성이 손님에게도 전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넉넉한 웃음에 뭐든 손이 커서 손님들에게 덤도 듬뿍듬뿍 줄 것 같은 천생 여자로 보이는 이영순 대표지만 그녀가 낯설고 물 선 일본에서 6년간 혼자 생활하며 용접공으로 성공했던 열혈 여성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본에서 용접공으로 많은 돈 벌어
“당시 아이 셋을 둔 아줌마였음에도 꿈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친정 고모님이 일본에서 수제 가방공장을 하셨는데 덜컥 아이 셋을 친정에 맡겨놓고 일본으로 떠날 생각을 했으니까요. 30대 초반이었는데 막상 일본에 가서는 공장 옆에 있던 용접이 더 멋있어 보였죠. 불꽃이 튀면서 단단한 쇠를 녹이고 붙이는 그 작업이 왜 그리 멋있어 보였던지 무작정 용접공장 사장님에게 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떼를 썼고 결국 용접공으로 취직했어요”
이영순 대표는 그곳에서 6개월을 일하며 남들보다 빠르게 기술을 익혔고 사장의 배려로 하청공장을 맡아 하기에 이른다. 이영순 대표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기계를 사들여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일본에도 여자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드물어서 구경꾼들도 많이 모여들었다고.
“공장을 하면서 돈을 참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아이들이 크고 학교에 다니게 되자 더 이상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과감하게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와서 막내를 가졌고 아이들 돌보면서 부품공장도 하고 자동차 정비공장도 했죠. 자동차 정비공장을 할 때는 제가 직접 용접을 하며 공장을 운영했어요”
이영순 대표는 한국에 들어와서도 업무 차 한국에 오는 바이어들을 상대로 일본어 통역을 하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 활동도 열심히 하며 매일 바쁘게 움직였다. 업무 상 남성들과 상대하는 일도 많았지만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모든 일들을 소화해 냈다고.

일본어강사로 초등학생 가르치고파
“돌이켜보면 제 인생은 한 번도 편하게 쉬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늘 바쁘게 움직였고 잠시 일이 없는 동안에는 무엇이든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일들을 반복했으니까요. 남편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평수에 따라 건물안전관리사를 한명씩 두어야 한다는 걸 알고 제가 직접 그 자격증을 따기도 했죠. 나중에 남편이 알고 깜짝 놀라더라구요”
이영순 대표는 항상 배우는 걸 멈추지 않는다.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지도교사나 일본어를 가르쳐주는 강사로 나서고 싶다는 바람도 전한다.
“아들들은 농담 삼아 엄마가 버겁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딸들은 남자들과 동등하게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하곤 해요.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인생 최고의 교훈은 부모가 직접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한때 여자 용접공으로 살아가는 모습만 기억하던 지인들은 그녀에게 “밥이나 할 줄 아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에게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직접 내가 한 음식을 먹어보고 평가하라”는 것이다. 오는 10월 4일 공도 진사리에 있는 ‘가자연애마트’에 입점을 앞두고 있는 유진네 수제 반찬가게는 그녀의 열정을 닮은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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