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부부가 사는 법은 “그냥 웃지요”

두 번의 부도, 모든 걸 잃고 평택에 정착
한 송이 꽃에도 눈길, 사람과 만남 행복

 
세상의 많은 부부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긴 시간을 함께 살아가다보면 때론 울고 싶어지는 순간들과도 마주하게 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내편’이 ‘내 가까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다.

통기타 치며 노래하는 아내
“남편은 언제나 제가 꽃보다 예쁘대요. 나이든 제가 예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항상 말을 그렇게 하는 거죠. 혼자 밖에 나갔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당신과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문자도 보내구요. 그 마음을 아니까 저도 잘 할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얘기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사는 거죠”
남편과 함께 안중읍 삼정리 평택호 인근에서 자전거들이 쉬었다 가는 코스인 ‘노랑등대’를 6년째 운영하는 이병례(54) 씨는 남편에 대해 얘기하며 환하게 웃는다. 13남매의 막내로 언니 오빠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이병례 씨는 어려서부터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주변에서 인기가 많은 아가씨였다. 결혼 후에도 맘마미아라는 팀에 소속돼 기타치고 노래 부르며 봉사활동도 다녔다. 그런 그녀가 현재 노랑등대 쉼터를 운영하며 국수와 커피를 손수 요리해 판매하게 된 데에는 수많은 시간들이 주고 간 상처의 시간들이 있었다. 
“남편이 대기업을 상대로 건설 분양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했었는데 IMF때 부도가 두 번이나 났어요. 덕분에 집도 팔고 가진 거 전부를 잃어야 했죠. 그래도 따뜻한 남편 덕분에 이겨냈어요. 장사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생전 처음으로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땄는데 오히려 장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병례 씨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쉼터를 찾는 손님들이 국수를 주문하면 주방에서 얼른 국수를 요리해 내주고 밖으로 나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단 한명의 손님만 있을 지라도 손님과 함께 음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싶은 그녀만의 표현 방법이다. 

여행 좋아하는 사진작가 남편
“이뤄놨던 모든 걸 잃고 많이 힘들었죠. 물론 저보다 아내가 더 힘들었겠지만 한때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늦은 시간에 집엘 오는데 아이가 놀이터에서 혼자 있다가 저를 보더니 ‘아빠’ 하면서 달려오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게는 책임지고 함께 살아야 할 가족들이 있다는 걸 말예요”
30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부부여서일까. 오대근(55) 씨는 어느새 아내와 닮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내와 함께 노랑등대를 운영하며 현재도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대근 씨는 처음 쉼터를 시작했을 때는 조용하게 왔다가는 낚시인들이 주로 찾았지만 자전거도로가 생기고 자전거를 타는 활기찬 사람들이 찾으면서 부터는 덩달아 활기찬 기운을 나눠받는 느낌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어려서부터 방랑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했던 일들이 결국 제 직업으로 이어졌구요. 그때 보고 느꼈던 일들이 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때 생각했던 게 언젠가 나이 들면 여행객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 흰 와이셔츠에 까만 나비넥타이 매고 손님접대 하는 그런 일들을 꿈꾸기도 했어요. 그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옛날에는 꿈이 누구보다도 컸다는 오대근 씨, 하지만 이곳에 내려와 쉼터를 운영하면서부터는 욕심도 작아지고, 꿈도 작아지고, 무엇보다 평택호를 유유히 흐르는 아름다운 물이 좋아지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좋아졌다고.

부부가 사는 법은 ‘그냥 웃지요’
이병례·오대근 씨 부부가 평택에 내려온 지도 벌써 10년이다.
쉼터 내부를 두 사람이 직접 인테리어 했다는 부부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정성이 깃든 공간에서 함께 손님을 맞고 음식을 만들고 테이블을 치우느라 분주하다. 쉼터 앞 자전거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코스모스도 부부가 직접 씨를 뿌려 키웠고 잠시 마당에 나와 앉아있노라면 곳곳에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는 재미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주말엔 손님들이 넘쳐 정신없이 바쁘지만 짬짬이 손에 묻은 물기를 닦은 아내가 쉼터 한 켠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 기타 치며 노래도 부른다.
“무엇이든 연연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털어버릴 것은 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죠. 부부 사이에서는 싸우더라도 서로 말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싸우면 말하기 싫은게 사람이지만 그러다보면 서로 벽이 생기게 마련이거든요”
이병례와 오대근 씨의 부부지론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있어 부부는 지금도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고 서로의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을 안타까워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부는 올 10월 20일 노랑등대에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 시낭송이 어우러진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이 부부의 해맑은 미소가 그리운 이들, 팍팍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이곳을 찾아 마음을 쉬어가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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