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혜신 지음 / 푸른숲
얼마 전 지인이 전화를 했다. 일하면서 겪은 억울한 일(?!)이 잊히지 않아 아침마다 괴롭단다. 남편과 이야기하거나 해서 좀 나아지나 싶다가도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새록새록 솟는다. 지인과 발생한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사십대가 겪는 성장통(?)을 호되게 겪는 게 아니냐 물어보았다. 환경은 변한 것이 없는데 자신이 무기력하고 쓸모없다는 느낌이 떨쳐지질 않는다.
무기력감이 사십대가 치르는 호된 성장통으로 느껴지는 것은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은 이 시기에 젊은 시절 삶의 방식을 고수하다가는 ‘과로사’ 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오기 때문이다. 몸이 자신에게 보내는 경고,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마’. 경고에 지혜로운 반응은 나이에 어울리는 리액션을 새롭게 배우는 것일게다.
목표라는 이름으로 내달리게 만들었던 욕망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 사십대 이후의 삶을 건강하게 가꿔가는 것이다. 그래서 정혜신의 ‘당신으로 충분하다’라는 제목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더 할 무엇도, 바꿔야 할 것도 없는 이것으로 충분한 나, 부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좌충우돌 살아낸, 최선을 다한 이 존재로 충분함을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면 중년 이후 훈훈한 일상을 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충분함은 어디서 올까? 누군가 줄 수 있는 거라면, 구입 가능한 품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충분함’은 삶에 박힌 응어리를 풀어내면서 시작되고 그 과정에서 더한 번민과 괴로움을 대면할 수도 있다. 대신할 이 없이 혼자 겪어야 하는 과정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당신으로 충분하다’는 24년간 1만 2천여 명의 사람들과 만나 상담한 정혜신 박사와 4명이 6주간 집단 상담으로 만난 기록물이다.
우리 삶의 은밀한 부분을 과연 낯 선 이들과 공유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야기’의 힘은 크다. 고인 물은 썩을 수밖에 없듯 어딘가에 고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야기도 풀어내야만 한다. 일대일 상담과 달리 집단 상담이 의미가 남다른 이유는 서로에게 ‘상처 입은 치유가(wounded healer)’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상처가 아니라 하더라도 당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것은 전문 치유사들의 몫이기도 하지만 일상을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공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린 모두 함께 살아가고 있으므로. 몇 년 전 자기계발의 열기가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다 그것에 대한 피로반응인 듯 도처에 ’힐링‘이 넘쳐나고 있다.
넘쳐나는 ’힐링‘으로 치유 메시지가 진부해졌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넘쳐나는 ’힐링‘은 우리 사회에 상처 입은 이들이 많음을 방증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밟힌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사회가 입히는 내상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다. 혹자는 먹고 살기 바쁘면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라 하지만 우리 삶은 이미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 OECD회원국으로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우리 사회는 커진 외피에 비해 내면의 풍족함을 채우는데 인색하다.
그 인색함의 결과가 ’힐링‘이란 단어로 가득 찬 우리 사회일 것이다. 존재 그 자체로 ,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충분할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아놀드 토인비의 말에 따르면, 인류의 미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내면의 깊이를 발견하고 그 내면에서부터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얼마나 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수경 사서
평택시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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