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있어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

세상 벽 맞서 싸우던 삶, 이제 내가 보듬어
장애 있어도 내가 가진 또 다른 재능은 있어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상적인 육체를 가진 사람들도 해내기 어려운 일들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대체 어떻게 헤아려야 하나. 그 이면에는 얼마나  피나는 훈련과 고뇌와 인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일까.

최초 철인3종 6대륙 횡단 예정
“내년 3월부터 6개월간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세계 최초로 세계 6대륙 40개국 1만 5350km를 마라톤과 핸드사이클·수영으로 횡단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두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동안에도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들을 전부 해냈잖아요. 지구 1/3에 해당하는 긴 여정이기 때문에 힘은 들겠지만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김음강(50) 씨를 지칭하는 말은 장애인·철인·국제구호단체 ‘월드원’ 회장 등 다양하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그를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은 없다. 장애인이라고 하기엔 그는 일반인들도 힘들다는 철인3종 경기를 일곱 번이나 완주해냈고, 철인이라고 하기엔 그는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으며, 국제구호단체 월드원 회장이라고 하기엔 그는 뇌성마비1급 장애를 가진 아내와 함께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권유로 처음 철인3종 경기라는 걸 알게 됐죠. 빈말로 해볼까 했는데 아내가 제 말에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니 차마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트라이애슬론연맹에 가입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수영연습도 겨우 보름동안 하고 출전했는데 결국 완주 했죠”
그가 첫 번째 출전한 대회는 2008년 6월에 있었던 ‘설악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다. 무슨 일이든 도전을 좋아하는 김음강 씨에게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러나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될 때까지 장애를 가진 그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절망·좌절 반복하다 ‘희망’ 만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 비극이에요. 목발 짚고 걸을 수 있었던 제가 의료사고로 아예 걷지 못하게 된 것도, 다리만 절었던 첫 번째 아내가 교통사고 후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때 치료 때문이라는 이유로 몇날 며칠 전신을 다 벗겨놓고 면회객이 들어와도 그대로 방치해 수치심을 느끼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도 전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으니까요”
1994년에 만난 아내는 김음강 씨와 4년을 살다가 세상을 뜨기 불과 몇 달 전 간신히 결혼식을 올렸다. 눅눅했던 그의 삶에 빛이었고 행복이었던 아내를 그렇게 잃은 후 김음강 씨는 거대 병원의 인권유린에 대해 분노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고 그는 5년 동안을 술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찾아준 건 바로 지금의 아내다.
“16년간 장애인 시설에서 보호받던 여자가 자립을 도와주실 분을 찾는다는 글을 읽고 그분이 있는 시설에 갔었죠. 그때 지금의 아내인 그 여자 분이 쓴 시를 보게 됐는데 시에서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어요. 16년 동안 누워만 지내고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 희망을 노래하고 자립을 꿈꾸고 있었던 거죠”
김음강 씨는 그때 기꺼이 지금의 아내인 정지숙(45) 씨의 손발이 되어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 24시간을 곁에서 보살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때의 아내는 그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

내가가진 재능으로 나누며 살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면 돼요. 가난하다고 남을 도울 수 없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돈이 없으니까 제 얘기를 담은 자서전 <신명 나와라 뚝딱>을 써서 그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나 이번 6대륙 횡단 프로젝트로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죠”
김음강 씨가 남을 돕기 시작한 건 고향인 속초에서 커피행상을 했을 때부터다. 그때 얻은 수익금의 일부와 모금활동으로 심장병 어린이와 소년소녀가장·독거어르신·빈민장애인들을 도왔고 이런 선행으로 그는 1995년 ‘제1회 자랑스런 강원도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생각해요. 비극이든 희극이든 내가 주인공이잖아요. 설사 내가 맡은 역할이 비극이라 해도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다음 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쓰임을 받는 삶을 산다는 것은 귀하고 행복한 일이니까요”
현재 안중읍 현화리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고 있는 김음강 씨는 2012년 11월부터 포천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안성·안양·거제 등 전국을 다니며 희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세계 빈민구호기금마련 세계 6대륙 횡단을 위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한 김음강 씨, 그의 자서전에 적힌 ‘신명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다. 어느 한 사람만이 짊어질 몫이 아니다’라는 말은 혼자 험한 인식의 벽에 부딪혀온 한 남자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피맺힌 절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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