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로 돈 벌어 ‘사장님’ 됐죠!

평택 명동거리에 베트남음식점 개업, 생활력 강한 20대 미시

 
앙턱벳(AM THUC VIET), 베트남 출신 여성 보배퉁(27) 씨가 최근 평택시내에 개업한 식당이름이다. 2005년 결혼해서 한국으로 시집온 그녀는 그 동안 부지런히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을 투자해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친구와 동업하며 절반씩 투자
지난 2일 보배퉁 씨가 식당을 개업하는 날 아침부터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평택시 평택동 62-21번지, 번화한 거리의 한 모퉁이 2층에 식당이 있었다. 개업 첫날인데도 축하화환은 볼 수 없었고, 내부 역시 소박한 모습이다. 4인용 테이블이 8개 놓여 있을 정도로 실내는 적당한 크기였다. 여느 식당이나 다름없이 출입구에 카운터가 있고 안쪽에 주방이 보였다. 벽에는 베트남에서 공수해온 사진과 서화가 걸려 있어서 이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정오가 30분 남짓 남은 시간인데도 출입구 쪽 테이블에 젊은 두 남녀의 모습만 눈에 띌 뿐 아직은 조용했다. 개업을 축하하러 온 보배퉁 씨의 고국 친구들로 보였는데 가끔 그들의 모국어를 쓰며 대화하는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 동안 무슨 일을 해서 사업자금을 마련했느냐고 했더니 자신의 지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든다. 명함인데,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주소를 둔 중소기업체 B사의 부장 이름이 씌어져 있었다. 직장 상사였던 한국사람 명함을 보여주며 한 달 전까지 이 회사에서 일했음을 알려준다.
“한 달 동안 준비했어요. 친구와 같이 이 가게를 얻었어요”
평택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가게를 얻기 위해서는 적잖은 돈을 투자했을 텐데, 안 그래도 혼자서는 힘이 부쳐 고국에서 온 친구와 같이 절반씩 부담해 동업을 한다고 한다. 동업자는 다름 아닌 후토(27) 씨로 동갑내기 남자친구였다. 남편은 한국 사람으로 원래 운전 직종에서 일했으나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있었다. 후토 씨는 다른 직장에 다니고 있는데, 주 5일만 근무하기 때문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와서 아르바이트 하는 방식으로 가게 운영을 돕기로 했단다.
“남편은 몸이 아파 일을 못 해요. 딸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고, 시어머니께서 봐 주셔요”
6살짜리 딸을 가진 20대 엄마로서 가냘프고 몸집도 작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강단이 있는 거인이었다. 실직했을 때는 떡볶이 장사도 했을 정도로 그녀는 생활력이 강하고 매우 당차 보였다. 다소 고생한 흔적이 엿보이는 얼굴에서는 계속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직은 한국말이 서툴러 개업하는 과정에서 먼저 한국에 와 자리를 잡은 베트남 언니 다오티트 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단다. 평택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어 통역사로 일하는 다오티트 씨가 그녀의 한국말 교사요 행정적인 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고.
“돈 많이 벌면 좋은 집도 사고 싶고, 차도 사고 싶어요. 아기도 잘 키우고 싶고요”
그녀는 아직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없다고 했다. 운전할 줄 아는 남편도 차가 없기 때문에 팽성읍 객사리 자택에서 이른 아침 시내에 있는 가게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나와야 한다. 밤늦게 영업을 마치게 되면 택시를 타고 귀가할 수밖에 없어 당분간 불편함과 교통비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녀는 가까운 시내에 아파트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아기는 경제적으로 키우기가 힘들어 더 낳지 않기로 했다.

좋은 집도 사고 베트남에도 가고 싶어
고은아. 딸 이름이다. 남편의 성이 고 씨여서 왕년에 유명했던 한국 여배우 이름을 그대로 빌려왔다. 그녀는 자신도 한국식 이름이 있다며 종이에 ‘김영서’라고 적어 보여줬다. 누가 지어줬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적집 지었단다. 부부가 서로 성이 달라야 하니 흔한 김 씨에, 남편의 이름을 약간 고쳐 영서라고 지었다며 웃었다.
“처음에는 제 이름을 ‘메리’라고 했어요. 그런데 메리가 옛날 한국 사람들이 강아지 이름으로 흔히 지어줬다고 하잖아요”
고국에는 자주 가느냐고 물으니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7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베트남에 두 번 갔어요. 엄마 아빠와는 일주일에 두 번씩은 전화해요. 많이 많이 보고 싶지만 최근 2~3년 동안 못 갔어요”
역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베트남에 자주 가서 부모님도 뵙고 옛 친구들도 만나고 싶다고. 고국에는 오빠와 막내 여동생이 있고, 다행히 바로 아래 여동생은 한국에 시집와서 가까운 병점에 산다고 한다. 동생도 아기를 키우느라 자주 만나기 힘들지만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얼굴을 대할 수 있어 서로 큰 위로가 된다. 베트남 고향은 호치민시에서 버스로 6시간이나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시골마을이다. 부모님은 음료수를 파는 구멍가게를 운영한다고.
“돈 벌면 친정 부모님도 한국에 초청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월급을 받으면 용돈을 떼어 고국의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보내 드렸다. 그야말로 베트남 판 효녀 심청이를 보는 듯 했다.
그녀가 식당에서 제공하는 메뉴는 베트남 쌀국수를 비롯해 소고기라면볶음, 비타나우망, 분소기리 등 6000~8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비롯해 1만 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베트남 쌀국수를 먹어보니 처음에는 맛이 좀 밋밋했지만 금세 입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입맛이 까다로운 한국인들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앙턱벳은 베트남 동포들도 즐겨 찾아와 고국의 음식을 맛보며 향수를 달래게 될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였다.

※다문화가족이란?
우리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외국인거주자 및 그들의 자녀들을 비차별적으로 부르는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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