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동요 1위 ‘노을’

1984년 5월 5일 어린이날.
서울 리틀엔젤스회관에서 열린 MBC 문화방송 ‘제2회 창작동요제’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동요 ‘노을’이 아이들 입에서 입으로 불리기 시작한지 햇수로 꼭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2014년은 동요 ‘노을’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동요 ‘노을’ 열풍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아직 채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은 5월 초 이제 막 새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신록의 계절에 때 아닌 가을바람이 태풍처럼 온 나라를 휩쓸어 앞산 뒷산 할 것 없이 온 산에는 단풍이 울긋불긋하고 아직 모심기도 시작하지 않은 전국 방방곡곡 들녘에 허수아비가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시골집 지붕마다 둥근 박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동요 ‘노을’이 창작동요제에서 대상을 받고 난 다음 날부터 MBC 라디오에서는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 막간에 종일 '노을'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텔레비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국 수많은 초등학교에서도 점심시간을 이용한 교내방송에서 매일같이 동요 ‘노을’을 들려주었습니다. 가히 온 나라가 ‘노을’ 신드롬, ‘노을’ 열풍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나라를 세운이래 동요가 이렇게 나라 안에 널리 널리 불리어지고 방송을 타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평택 = 노을
갑자기 때 아닌 ‘노을’이 평택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평택을 지켜왔던 평택 배·평택 쌀을 제치고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노을’이 평택 상징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공통된 특성 가운데 하나가 ‘망각’이라고 합니다. 늘 새로운 것을 쫓고, 새로운 유행에 민감한 국민성을 갖다보니 무엇이든 오래 기억하지 못하고 곧바로 잊어버리는 ‘건망증’을 갖고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듯 동요 ‘노을’도 얼마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괜한 쓸데없는 걱정 기우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동요 ‘노을’은 사람과 사람의 입을 타고 아이들로 부터 어른들에게 이르기까지 전염병처럼 번졌습니다. 시골로부터 논밭 하나 구경할 수 없는 도회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유행이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아마도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하나씩 담고 살며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아늑하고 평화롭고 따듯한 정이 넘치는 마음의 고향이 ‘노을’ 노래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1984년 그 때까지도 나라 안은 모두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피가 모자라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학교에서 헌혈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학생이 버스 안에서 쓰러졌습니다. 마침 옆에는 한 동네 사는 친구가 있었기에 쓰러진 학생은 바로 버스에서 내려 병원 응급실로 갔고 학교에도 전화를 했습니다.
-왜 그랬지?
병원으로 오는 동안 정신은 차렸지만 얼굴에 핏기가 가시고 창백한 학생에게 의사선생님이 물었습니다.
-헌혈을 해서 그래요
-그래? 그럼 괜찮아 잠시 쉬었다가 나가서 설렁탕이나 한 그릇 먹으면 곧 나을 거야.
모두가 다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1년에 몇 번 제삿날이거나 아니면 설날이나 되어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등따숩고 배부르면 모든 것을 다 잊고 살지만 하루하루 사는 일이 헙헙하다보니 따듯함이 더 그립고 사람도 그리운 날들이었습니다.
2004년 그러니까 동요 ‘노을’이 이 세상에 나온 지 만 20년이 되던 해 MBC 문화방송에서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사람들 10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동요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국민의 반이나 되는 사람이 하나같이 제일 많이 부르는 노래로 동요 ‘노을’을 꼽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였을 때 절망에 빠진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준 아름다운 동요는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주옥같이 아름다운 수많은 동요보다 대다수 국민이 ‘노을’을 가장 아름다운 동요로 뽑았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1978년 가을이 무르익은 10월 23일을 잊지 못합니다. 저녁 해질 무렵 충남 둔포를 가기 위해 평택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통복리를 지나 군문리 다리를 지나가며 차창 밖으로 내다보니 서해바다에서 시작된 노을이 소사벌 하늘에 가득한데 마치 하늘에다 빨간 참숯불을 부어놓은 듯 아름다운 정경이었습니다.
1983년 제자 최현규 君이 군軍에서 제대하는 길이라며 평택군청 건너편 평택소방서 옆 ‘맥화실’로 찾아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MBC 창작동요제에 출품을 하기 위해 군에서 만들었다는 악보 한 소절이 들려있었습니다.
-노랫말은 선생님이 써주세요.
그 음률을 씨앗으로 동요 ‘노을’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방선아·김희연·김진숙·김현중… 이 그림에 열중하던 소방서 옆 현대화원 이층 ‘맥화실’에서 동요 ‘노을’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5월 5일 그 날 우리는 아무도 동요제에 갈 엄두도 못 내고 모두 ‘맥화실’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해 TV가 있던 길 건너편 식당에 가서 이미 중간쯤 까지 진행된 창작동요제를 보았습니다.
동요 ‘노을’제2회 MBC 창작동요제 대상.
감격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30년.
잠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그날의 감동을 되새겨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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