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힘들지만 내게 주어진 소명(召命)”

브랜드 패션디자이너, 늦깎이 간호사로 첫 발
엄마 죽음 지켜보며 호스피스병동 간호사 꿈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한두 번 쯤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와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삶들과 결별하고 낯선 삶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어제보다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과감하게 이전 삶에 안녕을 고하고 인생의 새로운 신화를 쓰기 위해 도전하기도 한다.

패션디자이너, 간호사를 꿈꾸다
“의상을 전공하고 패션 브랜드 업체에서 디자이너로 근무했어요. 운이 좋아 취업도 빨리했고 승진도 빨라서 5년 만에 팀장자리에 오를 수 있었죠. 한동안 그 삶에 만족하며 또래 여성들처럼 네일아트도 하고 예쁜 옷도 입고 화장도 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올 3월, 굿모닝병원에 신참으로 입사한 팽명수(31) 간호사는 한때 소위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였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푸릇한 20대를 패션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으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 대해 특별한 불만도 없었다. 남들이 겪는 취업난도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직업 가운데서도 힘들다고 알려진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4년전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엄마의 ‘암 선고’ 때문이었다.
“‘담도 암’이었는데 그때부터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엄마 병간호를 하기 시작했죠. 투병하는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어요. 얼핏 잠자다 눈 뜨면 꿈같았고 입버릇처럼 ‘말도 안 돼’를 되뇌곤 했죠. 그렇게 2년 동안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고 돌아가시기 3일 전에는 호스피스병동으로 들어가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셨어요. 가족들은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암이라는 사실을 숨겼는데 지금도 그게 가장 마음에 걸려요. 삶을 마무리할 시간을 좀 드렸어야 했는데…”
팽명수 간호사는 그녀의 나이 스물여덟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나 2년 동안 엄마 곁에서 병원이라는 공간을 유심히 지켜봐왔던 그녀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패션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사표를 던지고 스물아홉 나이에도 불구하고 간호전문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간호사 되는 것은 나의 소명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어요. 엄마는 암 투병 중에도 간호사가 너무 힘든 직업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일이 제게는 소명처럼 느껴졌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참 보람 있어 보였고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간호사들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서 늘 칭찬받으며 살 수 있는 직업이고 항상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도 그때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항상 마음만 앞설 뿐 생각만큼 환자들을 배려하고 베풀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고.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일본인이 장염증세로 저희 병원에 입원한 일이 있어요.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배가 아파요’ 정도였는데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몸까지 아프니 얼마나 힘들겠나 싶어 틈틈이 옆에서 우리나라 말을 가르쳐주었죠. 제가 한동안 일본어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나마 시간이 부족해 많이 가르쳐주지는 못했어요”
팽명수 간호사는 환자들과 대면할 때면 환자들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고 말한다. 간호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고통과 외로움에 지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소명 다하고파
“취업을 고려할 때 중환자실이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갖춘 병원에 호스피스 병동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큰 병원에서 치열하게 일만하다 보면 제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고 너무 작은 병원에는 비교적 중증 환자들과 만날 기회가 적어 제 역량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 생각과 맞아 떨어진 곳이 바로 굿모닝병원이었죠”
맘껏 착한 척하고 맘껏 호의를 베풀어도 좋은 직업이 바로 간호사라고 말하는 팽명수 간호사는 힘들어할 때 늘 곁에서 위로해주던 남자친구와 내년에 결혼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학사 학위도 따고 대학원까지 진학할 계획도 갖고 있는데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에 깊이를 갖고 싶은 바람 때문이라고.
“임상경험이 부족해 아직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지는 못하지만 많은 것들을 배운 뒤에는 꼭 그곳으로 가서 엄마처럼 세상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환자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곳에 가기 전에 저의 역량을 키우는 중간 과정인거죠. 제가 열심히 환자들과 함께 하다보면 엄마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명수 기특하네’하고 칭찬해주시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 그제야 제대로 사람을 볼 수 있었다는 팽명수 간호사, 그녀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베푸는 과정 속에서 보람을 찾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자신이 오래 꿈꿔 온 천직인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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