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안보와 산업을 책임져온 평택, 이제는 국가가 평택을 책임질 차례다

 
평택은 예로부터 산업·군사·교통·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한반도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6대 대로 가운데 가장 긴 길인 삼남대로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로 국토를 잇는 혈맥의 한 가운데 있었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가장 즐겨 부르는 동요로 꼽히는 ‘노을’도 평택을 배경으로 탄생했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며 전쟁 폐허 재건을 시작으로 한국 청년운동의 모태가 된 한국JC 발상지이기도 하다. 포승에는 전국 최대의 자동차 수출입항으로 자리 잡은 평택항이 있고, 진위면은 ‘수도권 채소1번지’로 불리며 국민 식탁을 책임지는 시설원예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하고 있어 경제적 가치도 매우 큰 곳이다. 국가안보의 핵심 역할을 하는 동남아 최대의 미군기지를 비롯해 서해 방어를 책임지는 해군2함대사령부와 공군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공군작전사령부, 국내 최대의 가스기지도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 차원에서 봤을때도 평택의 가치가 점점 더 커지고 중요성을 더해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국가 차원의 지원은 미미하기 그지없는 것이 현실이다. <평택시사신문>은 이같이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각종 사례를 알아보고 평택 발전의 단초를 찾기 위해 지면을 통해 진단해봤다. -편집자 주-

 

오산공군기지로 불리는 K-55 미군기지는 아시아지역 최대의 미 공군기지다. 6·25한국전쟁 한창이던 1952년 처음 기지를 건설할 당시 해당 지역에 살던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터전을 잃고 갈 곳을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기도 했다.
위치한 지역이 송탄임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의 편의에 의해 오산공군기지라고 불리기 시작한 K-55기지는 전후 확장을 거듭해 현재 11만 7000㎡(354만 5000평)가 넘는 대규모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군부대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얻는 이익은 작은 반면 그로 인한 피해가 훨씬 크며 거의 일방적이다시피 책무만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K-55 공군기지 인근 주민들은 군용비행기 소음 피해 속에서 살아간다. 피해 보상을 위해 수없는 청원이 있었지만 국회에서는 소음피해 기준조차 정하지 못하고 계류된 법안은 수년째 낮잠을 자고 있는 상황이다. 고도제한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물질적인 피해보다 정신적인 피해는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죄 없는 시민이 미군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끌려가는 인권유린을 당했지만 정부는 불평등 조약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SOFA 주한미군 주둔군지위협정 탓만 하며 팔짱을 끼고 있어 사건 발생 500일이 넘도록 해결의 기미는커녕 실체조차 희미해져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동양 최대의 미군기지로 확장되고 있는 팽성읍 K-6 캠프험프리스수비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 2003년 전국에 산재된 17개 미군기지를 통폐합해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하고 팽성읍 일원 1650만㎡(500만 평)에 대규모 미군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고향을 등지길 원하지 않던 수많은 시민들이 극렬한 반대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안보’라는 공익의 거대한 행정력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또다시 많은 시민들이 고향에서 내몰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땅을 내준 시민들의 희생에 대해 정부는 ‘평택지원특별법’을 제정해 18조 원이 넘는 지원을 약속했으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 각종 무지갯빛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미군기지 이전이 지연되면서 그로 인한 각종 부작용들이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이전 시기에 맞춰 부대 인근에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선 렌트하우스는 주인도 찾지 못하고 지역 경제에 부담으로 남겨지고 있는가 하면 공사로 인한 과실(果實)은 거대 기업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말단 하청업체로 전락한 토종 평택 기업들은 공사비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부분 도로나 교량 같은 기반시설 조성비용, 그것도 미군의 원활한 물자 수송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경직되고 제한된 사용처로 주민 체감이 미약한 특별예산도 문제지만 기지 이전에 대한 격한 찬·반 대립으로 손상된 지역민들의 관계는 아직도 곳곳에 상처로 남아 단합을 해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뚜렷한 해법이나 대안 제시 없이 뒷짐을 지고 있어 결국 모든 책임은 평택시와 시민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상태다.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평택시민들에게 국가는 ‘안보’와 ‘대미관계’를 강조하며 계속적인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

 
평택항에 해군2함대사령부가 이전해온 것은 지난 1999년이다. 이전 당시 인천은 도시팽창에 따라 해군기지가 도시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왔고 해군도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인천항의 여건과 수로의 복잡성 등으로 인해 신속한 출동에 제약이 따른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를 뒤집어서 말한다면 해군2함대가 평택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명칭은 국책항인 평택항이 실제로는 인천항 발전의 뒤처리를 하는 역할을 한 결과로 해석되며 국가에서 평택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도시 팽창으로 기지를 옮길 일이 없는 그런 배후도시 수준 이상으로는 생각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도에서도 풍부한 어획량을 자랑하던 바다를 내어준 평택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한편에서는 피해만 양산하고 계획 자체가 취소돼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한 각종 개발계획이다.
평택항의 폭증하는 수출입 물량 증가로 해마다 5조원이 넘는 국세를 징수하면서도 국제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차마 민망한 낙후되고 비좁은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을 재건축 해달라는 평택시민들의 염원에는 재정 탓을 하며 민간사업 운운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가경제를 위해 해상 자원을 포기한 평택시민의 희생을 무시한 처사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평택은 국내 최초최대의 LNG 액화천연가스 생산기지다. 지난 1983년 2월 착공해 1987년 11월 평택화력발전소에 발전용 천연가스 공급을 시작해 2004년 18년이라는 세계 최단 기간에 누계 생산량 1억 톤을 달성할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다. 150만㎡(45만 평) 부지에 23기의 저장탱크를 갖추고 모두 336만㎘를 저장할 수 있어 인천과 통영 생산기지를 제치고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인천생산기지와 함께 수도권에 천연가스 공급을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중부·호남·영남 등 전국 각지에 가스 공급망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가스 생산기지의 중요성을 감안해 국가 중요시설물로 지정하고 철저한 보안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평택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경기도 평균치 83.6%에도 못 미치는 74.6%로 저조하며 일부 도심지역을 제외한 농촌지역의 보급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모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제18대 국회에서 ‘인수기지 주변지역 지원법’이 상정되기도 했지만 본회의에 상정조차 못하고 자동 폐기됐으며 제19대 국회 들어서도 새누리당 이재영 의원 등에 의해 ‘액화천연가스 인수기지 주변지역 지원법’이 제출됐고, 수많은 공청회 등을 통해 그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아직까지 국회통과는 요원한 상태다.
심지어는 2012년 6월 일부 탱크에서 가스가 유출되고 있는 것이 발견돼 긴급 점검에 나사는 등 인근 주민들은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라며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국가와 수도권을 위해 평택시민들은 가스기지와 같은 위험물 기지를 고향마을을 떠나면서까지 수용했으나 정작 시민들은 바로 집 앞을 지나는 가스관을 보고서도 사용하지는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고 있는 것이다.
생산기지를 설치할 때는 공익을 위한 일이라는 명제로 양보를 강요하면서도 막상 필요할 때는 “경제성이 없다, 사기업의 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등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평택은 수도권 주요 전기 공급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 평택발전본부는 포승읍 원정리 47만 1310㎡(14만 2000평) 부지에 모두 9기의 발전설비시설을 갖추고 1880㎿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2012년 9월에는 평택복합2단계발전소를 착공하고 총 사업비 1조 360억 원을 투입해 900MW급 1기 규모의 LNG복합발전소를 2014년 10월까지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당시 서부발전 사장은 “복합2단계발전소 건설로 인해 수도권 및 경기지역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하게 됐다”며 “지역주민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협력 사업을 통해 주민복지 향상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타 지자체의 경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건설 일정이 한없이 늦춰지거나 아예 계획 자체가 무산되는 경우가 빈번한 반면 국가적인 전력난 해소에 시설 필요를 공감한 주민들은 큰 반대 없이 건설에 동의했다. 이는 국가적 대의를 위해 조금의 피해는 감수해야 한다는 평택의 일반적 정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러한 시민들의 대승적인 결단에 비해 발전소 인근 지역에 대한 지원이 형식적이고 규모 자체도 적을 뿐 아니라 대형 공사를 함에 있어서도 지역 업체에 대한 배려 없이 외부에서 들어온 업체들이 그 과실을 다 취한다는데 있다.
심지어는 SK E&S 자회사인 평택에너지서비스는 오성면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며 최초 부지구입에서부터 주민들의 공분을 사게 했으며, 당초 공급하기로 한 난방·온수공급도 일방적으로 폐기하거나 뒤로 미루는 등 전력난 해소라는 전가의 보도만 휘둘러왔다.

 

평택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다양한 콘텐츠를 함축해 갖고 있다. 강과 바다와 평야가 어우러지는 지리적 요건은 물론이거니와 도·농 복합도시로서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가능성과 문제점들을 함께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는 육·해·공군에 미군까지 함께 주둔해 평택시 전체면적 457.47㎢의 10%에 육박하는 땅을 국가 안보를 위해 내주는 등 온갖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여기에다 지역보다는 국가에 부가가치를 창출해주는 평택항과 많은 국민들에게 보급해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설인 LNG 생산기지·LPG 가스기지·석유비축기지 등의 화약고를 안고 살아갈 정도로 국가 운영에 꼭 필요한 시설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도시다.
또한 수많은 전통과 문화와 깊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국가적 발전을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양보해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는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라”는 말을 꾸준히 실천해온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역보다는 국가 발전을 위한 시설들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만 했던 상황은 이제 더 이상 반복될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는 희생이 아닌 그러한 희생에 대한 보상을 당당히 요구해야 할 것이다. 마치 선심 쓰듯이 주어지는 예산을 받기 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것에 대한 정당한 요구임을 분명히 표명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한다.
2018년까지 한시법으로 정해져 있는 ‘평택지원특별법’도 재연장이 아니라 계속적인 지원이 가능한 법률로 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주한미군이 2018년 까지만 평택에 주둔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주둔이 계속되는 한 평택에 특별법이 상시 적용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사항이다.
이러한 요구를 관철시키고 평택의 공익적 이익과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의 힘 결집이 필요하며 평택시 차원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 요구된다.
최근 주민 피해가 발생하자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거대 공기업인 LH에 맞서 1인 시위를 벌여 민원을 해결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또한 동두천시의회 의원들은 미뤄지고 있는 미군기지 반환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제4차 국토종단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선기 평택시장을 비롯한 1600여 공직자들과 이희태 시의장을 비롯한 15명의 평택시의원들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회의원과 경기도의원들도 같은 책무를 갖고 있다.
평택은 지금까지 많은 시민들의 희생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치를 높여왔던 곳이었지만 그 역할은 차고 넘친 지 오래다. 이제는 평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국가의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평택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이 가능성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 국가가 평택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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