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되면 북한에서 YMCA 해야죠”

YMCA 틀 안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 다할 터
북한이탈주민에게 주변 사랑·관심 있어야

 
YMCA는 청소년들이 중심이 된 기독교운동 단체로 오랜 역사를 지닌 순수 자발적 민간단체이자 사회운동단체, 청소년 단체이며 사회교육문화단체이고 사회봉사, 사회개발 사업체이기도 하다. 전국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YMCA는 평택지역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복지센터와 청소년문화의집, 북한이탈주민을 정착시키기 위한 경기남부하나센터 등을 운영하며 역할을 다하고 있다. 

YMCA 아기스포츠단 강사로 첫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했어요. 교대에 가서 체육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이 별로 좋질 않았어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난지도에서 넝마주이로 6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었고 결국 그 돈으로 대학에 갔죠. 7남매 중 여섯째, 아들로는 막내인 저까지 가르치기엔 집이 너무 가난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태영(51) 평택YMCA사무총장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인 1990년, 안양YMCA에서 6~7세 유아들을 가르치는 아기스포츠단 스케이트 강사로 지원해 그때부터 YMCA와 인연을 맺게 됐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던 터라 그 직업은 소태영 총장과 잘 맞았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아이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선생님’ 호칭을 듣는 것으로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냈다.
“선생님 소리 들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처음 맡았던 아이들중에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아이도 있고 자기 아이를 다시 아기스포츠단에 보내려고 홈페이지를 찾다가 제 이름을 발견해 연락하는 제자도 있거든요.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어린나이에 세상을 등진 제자들을 떠올리는 일이죠. 지금도 그 병실 앞에서 통곡하며 기도했던 일들이 생각나요”
아이들을 주 대상으로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사건 사고현장에서도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지금도 가장 행복한 건 자신을 선생님으로 기억하며 찾아주는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평택에 내려와 활동하며 보람
“아버지는 항상 제게 말씀하셨죠. 사람은 한 우물을 파야 한다구요. 아버지의 말씀대로 YMCA에서 25년 동안 한 우물을 팠는데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만큼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일들을 개척해 보람도 있었죠. 처음 안양YMCA에 있을 때도 안양지역에서 하지 않던 청소년프로그램들을 많이 했었고 2002년 지역운동을 하기 위해 사무총장으로 평택에 내려온 이후 지금까지 YMCA가 추구하는 범위 내에서 나름 열심히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단체와 연대해 지역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운동을 하면서는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역을 위해 많은 고민을 나누었던 과정들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소태영 총장은 평택에 내려와 직원 3명과 자본금 200만 원으로 YMCA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현재는 직원이 36명으로 늘었고 하고 있는 분야도 다양해 졌다.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은 물론이고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매니페스토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현재는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는 경기남부하나센터도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32개 하나센터의 회장으로서의 역할도 맡고 있다.
“모든 사업들이 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해서는 지역에서도 조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마음으로 도와주셨으면 해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빨리 정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보다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소태영 총장은 그들이 남한에 잘 정착해 향후 통일세대의 주역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그리고 통일이 된 후 그들이 살던 고향에 YMCA를 세워 많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소망도 전한다.

자녀에겐 99점, 아내에겐 40점
“아내는 제가 남편으로서 한 40점정도 된다고 하는데 딸들은 저를 99점짜리 아빠는 된다고 하더라구요. 큰딸은 지금 미국 테네시주에서 공부하고 있고 작은딸도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죠. 무엇보다 제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아내예요. 묵묵히 제 곁을 지켜주고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죠”
소태영 총장은 자신이 YMCA에서 활동하는 동안 여름마다 캠프에 다니느라 지금까지 가족들과 여행이나 여름 휴가 한 번 못 갔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그가 항상 힘을 내서 YMCA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곁에서 든든한 아군이 되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65세가 정년인데 나중에 퇴직하게 되면 사회시설에서 봉사하고 싶어요. 운영이 아니라 주님의 향기를 전하며 순수하게 봉사하는 사람냄새 나는 멋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게 제 소망이죠. 그게 바로 YMCA의 향기이기도 하구요”
내년부터 안성지역에 YMCA를 창립시킬 과제를 안고 있다는 소태영 총장, 하나님의 선교단체로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소태영 총장은 주변 이웃과 청소년들, 북한이탈주민들의 평화를 위해 다양한 일들을 진행하며 누구보다 바쁜 겨울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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