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한충석 君

-한충석! 한충석!
-충석이 아직 안 왔어요.
1979년 초여름 어느 날 아침 조회시간 출석부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 충석이 자리를 보니 비어 있습니다.
출석을 부르고 전달사항을 이야기 한 다음 조회를 마쳤습니다.
-야! 장뻥! 장뻥! 반 아이들은 반장인 장경유에게 어서 빨리 인사를 하고 조회를 끝내라는 눈짓을 보냅니다.
-차렷! 경례!
아침조회가 끝나자 교무실로 가서 출석부 함에다가 출석부를 꽂고는 바로 교무실 밖으로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통복시장 안에 있는 채소가게로 갔습니다.
-충석아! 야! 한충석!
채소가게 앞에 서서 목청을 돋우어 충석이를 불렀습니다.
-충석이 배달 나갔는데요.
더는 묻지도 않고 뒤돌아서서 학교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반에 있는 선영이에게 갔습니다.
-야! 김선영! 야! 선영아! 임마!
그 소리에 선영이가 놀라서 벌떡 일어섭니다.
-야! 이 자식아! 너는 학교 오고 충석이는 배달 가고 잘 한다!
거기가 누구네 집이냐!? 너희 가게잖아 임마! 그러면 너희 집 일을 네가 해야지 왜 충석이 한테 시키냐! 야! 이 천하에 나쁜 놈아! 충석이가 너희 집 종이냐!?
이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구! 이 나쁜 자식아!
따발총처럼 쏘아대며 야단치는 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영이가 혼자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뭐라구 임마!
-학교 가재도 안 온대요.
-그렇다고 해도 네가 끌고 와야지! 어서 가서 당장 데리고 와!
하지만 그 날 충석이는 결국 학교에 나오질 않았습니다.
1989년 비가 부슬부슬 쏟아지던 날 화실문이 빼꼼 열리며 누군가가 화실 안을 들여다 보더니 안으로 들어서는데 충석입니다.
-웬일이야! 이 시간에?
-저… 선생님께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그러는 충석이를 보니 우산도 없이 어디를 쏴 다니다 왔는지?
새앙 쥐처럼 작고 바짝 마른 몸이 비에 쫄딱 젖어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몸에 걸친 흰 와이셔츠에는 단추가 다 떨어져나가고 하나도 달려 있질 않습니다.
-그래? 언제야 결혼식이?
-…
-알았어 축하해!
-언제 색시랑 한 번 인사드리러 찾아뵐게요.
-그래 알았어 바쁜데 안 와도 돼. 결혼식장에서 만나면 되지 뭐!
그렇게 해서 충석이 결혼식에 주례를 서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여기 한충석이네 집이예요. 어서 빨리 저희 집으로 좀 와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이 벌건 대낮에 이제는 학교를 졸업해서 아무 상관도 없는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을 왜 집으로 오라고 하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일에 오라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자전거를 타고는 숨 가쁘게 칠괴리 충석이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집안 식구들은 이미 어디론가 다 피신을 하고 충석이 혼자 대청마루에 앉아있습니다.
집안을 둘러보니 집안에 있는 문에 달린 유리란 유리는 모두 박살이 나서 온 집안이 깨진 유리투성입니다.
-충석아! 도대체 너 왜 이러는 거냐!? 뭐가 불만이냐구! 이 자식아! 이 불한당 같은 놈아!
술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약’을 먹은 것인지? 충석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습니다.
-선생님 오셨어요. 저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야 이 놈아! 한두 번도 아니고 걱정 하지 말란 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 짓을 해!? 엉!!! 이 개 같은 놈아!
충석이는 고 3이 되면서 부터 생활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걷잡을 수 없이 변해갔습니다.
-야 안 되겠다. 충석이를 이렇게 놔뒀다가는 사람 잡겠다. 그러니 어쩌겠니 병원에 가서 치료라도 받아야지.
충석이 형에게 충석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겠다는 걸 부모님께 말씀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충석이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격리시설에 들어간 충석이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충석이를 놓고 병원을 나오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2013년 12월 29일 송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사실 그동안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 충석이가 저 세상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만나지 못한 지 어언 20여년. 그 사이에 한충석 君은 나이 50이 훌쩍 넘은 사회 중견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우리는 얼싸 안았습니다. 결석을 밥 먹듯 하던 젊음의 방황과 어려운 고통을 이겨냈기에 지금은 반듯한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을 어긴 벌로 정학을 당했거나 퇴학처분을 받았다면 한충석 君은 아마 자신을 잃고 지금껏 방황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나운 폭풍은 언제라도 따사로운 햇볕을 이기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동진은 홍익대 미대 卒, 한광고등학교 교사, MBC창작동요제 대상곡 ‘노을’의 작사가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jaa_yoo(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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