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 사는 게 비로소 좋구나!

역사산책, 20여년 지난날보다 平澤愛 느끼게 해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광들, 내 눈에 들어온 시간

 

 

1993년 공무원으로 평택과 인연을 맺은 후 이젠 가족과 함께 노후를 설계하는 제2의 고향이 됐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평택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제껏 내게 평택은 생업의 공간이었다.
평택은 외지에서 볼 때 미군 주둔지라는 이미지가 강한데다 최근에는 대기업 이전에 따른 개발 호재 등의 경제논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물론 개발과 일자리가 가져올 지역의 경제적 이점은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나 그것이 이 땅에서 살아갈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던 중 1월 18일 토요일, 평택시청 학습동호회에서 운영하는 ‘평택역사 둘레길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아쉬움을 채워가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평소 무심코 지나던 진위면 가곡리 산단로. 오랜 세월에도 비교적 또렷이 새겨진 ‘경주이씨천’ 표석 앞에서, 김해규 선생님의 해설로 19명의 답사가 시작됐다. 시골 풍경을 담은 몇 채의 집을 지나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산기슭에 오르니 두 기의 묘가 눈에 띈다. 백사 이항복을 비롯해 조선시대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경주 이 씨 이정좌와 이계조의 묘란다. 이들은 병자호란 이후 무봉산 일대에 터를 잡고 세력을 떨쳤는데 이정좌의 후손인 이유원의 양아들 이석영은 일제치하에서 만주 무장투쟁을 이끈 이회영의 둘째 형이다. 이석영은 일제강점기 이유원에게 상속받은 신가곡 일대의 땅을 모두 팔아 여섯 형제들과 온 가족이 만주로 이전하였고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1920~30년대 치열한 독립운동의 중심인 신흥무관학교가 이들에서 비롯되었다니 놀라왔고 이들을 키워낸 이 땅에 경건함이 느껴졌으며, 이석영이 모든 것을 정리하며 정든 터전을 떠날 때의 아픔과 각오가 가슴 깊이 스며왔다.
봄에 왔으면 더욱 좋았을 배나무 사이길을 지나 1Km쯤 걸어 내려가니 낮은 산으로 감싼 듯 한 양지바른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봉남리 ‘아곡마을’이란다. 120년쯤 된 보호수가 길 중간에 휴게 의자와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역사이야기를 듣기에 좋은 장소였다. 아곡마을은 어사 박문수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함께 한 곳이다.
향교 입구, 답사일행은 홍살문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절로 경건한 마음이 되어 한발씩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외삼문으로 들어갔다. 명륜당에 들어 남으로 향한 문을 여니 마을과 진위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도 교육에서만은 천민이 아닌 양인 누구에게나 똑 같은 기회를 부여했으며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지역의 미래, 나라의 미래가 걸린 교육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향교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소망하며 삼봉 정도전 사당으로 이동했다.
진위면 은산리는 정도전의 후손들이 조선전기부터 600년간 동족마을을 이룬 곳으로 삼봉의 유적은 전국 유일하게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에만 남아있다.
삼봉기념관에는 정도전이 설계한 한양도성 설계도와 삼봉집목판이 보관되어 있으며 동시대의 세계 인물과 견주어도 최고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그의 놀라운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다. 정도전은 영주에서 출생하여 주로 개경과 한양에서 활약했지만 그의 후손들을 통해 오직 평택만이 유일한 삼봉 유적지가 됐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과 세진 바람으로 추위를 느끼며 원균 장균 묘역에 도착했다. 이순신·권율과 함께 조선 3대 선무1등공신인 원균은, 이순신 장군과 동시대를 살며 정치적인 이유로 과소평가된 인물이다.
이순신이라는 한 위대한 장군을 높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원균 장군을 폄하해 온 것을 부인할 수 없으며 원균 장군이 왜구에 의해 전사하기까지 이뤄낸 수많은 전투에서의 승리와 업적은 그가 후손들에게 재조명 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다. 괜히 조선 3대 명장이겠는가?
김해규 선생님의 열정적 해설과 함께 해 더 감동적인 답사길, 이 짧은 시간이 20년의 지난날보다 더 평택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살기 좋은 땅 평택,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항일운동의 기틀을 세운, 자랑스러운 인물을 키워낸 땅, 그동안 모르고 살아온 구석구석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에 들어온 시간이었다.
참여하길 참 잘했다. 앞으로 계속될 역사산책에 평택시민으로서의 자긍심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숨어있을까 기대된다.

 

 

 

 

 

 

송은희 사서
평택시립 지산초록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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