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신기술 배워 농사에 접목
식물의 생명 돌보는 일 소중함 알아

 
농촌에서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준비되지 않은 귀농인은 실패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진위면 야막리에서 ‘평택사계절농원’을 운영하며 꽃을 재배하는 왕길현 대표는 귀농 후 새로운 삶을 찾았지만 그에게 있어 귀농이란 철저한 준비와 더불어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일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IMF 이후 평택 내려와 꽃 재배
“귀농할 당시가 마흔 두 살이었어요.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팔고 경매로 나온 유리온실을 사서 내려왔죠 12년 동안 넥타이 매고 병원으로 출근하다가 막상 농사를 지으려니 막막하더군요. 집과 창고도 불타있었고 유리온실은 대부분이 파손돼 있어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인문계 학교만 다녀서 손재주도 없고 시골에 대한 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으니까요”
왕길현(54) 대표는 이제 완벽한 농사꾼이다. 2000년에 귀농해 벌써 14년을 시골에서 보냈으니 귀농한 햇수로만 따져도 서울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던 햇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된 아이들 둘과 아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온 왕길현 씨는 아내의 말에 따라 우선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짓기 위해 불탄 집과 창고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은 농사보다 정리 작업이 더 힘들었어요. 그해 12월에 처음 장미를 심어 6월에 수확했는데 땅이 워낙 건강해서 그런지 이후 3년 동안은 꽃 농사가 비교적 잘되더라구요. 3년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리시안사스라는 꽃도라지를 5~6년간 심었고 현재는 후리지아로 품목을 바꾸었죠. 새로운 것을 심을 때마다 대학이나 농업 관련 기관에 찾아가서 교육받고 공부하며 신기술을 농사에 접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꽃이라는 여린 생명을 병 없이 잘 키워낸다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할 때 뇌성마비와 중풍환자의 재활치료를 담당했던 그였기에 생명에 대해 접근하는 법이 더 빨랐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줬던 건 농사 선배들이 가르쳐주는 살아있는 교육이었다.

귀농의 첫 단계는 농사 교육
“꽃은 변종이 빠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기술들을 배우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죠. 그런 면에서는 제 스스로 흡입력이 빨랐던 것 같아요. 꽃 수확기를 제외하곤 아내와 둘이 농사를 짓는데 처음엔 남들을 뒤따라가기도 바빴지만 차츰 적응이 되더라구요. 처음 장미를 심었을 때는 사소한 실패를 많이 겪었는데 교육을 받고 난 뒤 품질과 수확량이 좋아지니까 아내도 제가 교육받는 것을 적극 협조해주기 시작했죠”
유리온실은 비닐온실에 비해 습기가 맺히지 않아 건강한 꽃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농사도 경영과 연관 지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대학에서 열리는 수업이나 농업 관련 기관에서 하는 교육 등을 두루 섭렵하고 한국농수산대학 CEO과정도 마쳤다.
경영진단을 받았는데 당시 문제점은 인력관리였죠. 장미는 365일을 매일 따줘야 하는데 아내와 둘이서는 도저히 여력이 안됐거든요. 그런데 후리지아는 혼자 해도 되고 꽃을 수확하는 1~2개월만 사람을 쓰면 되니까 그런 면에서 훨씬 유리했죠. 귀농인들을 위한 과정으로 농기계 사용법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과정도 있으니 농촌에 정착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어요”
왕길현 대표는 이제 오로지 꽃을 잘 키우고 경영적인 부분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에 같은 또래에게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정년에 대한 불안이나 스트레스는 절대 받을 일 없다며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자신이 체험한 만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늘 한결같은 조언은 “내가 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교육을 받고 단계적으로 하나씩 이뤄가야 한다”는 말이다.

SNS로 교류하며 소통하는 농군
“처음 시골에 내려올 때만해도 친구들에 비해 뒤쳐진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힘들기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좋은 직장으로 승진해 승승장구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 정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이른 친구들이 고민하는 걸 보면서 그때 내 선택이 그래도 나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물론 저 하나 믿고 시골 내려와 고생한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긴 하지만요”
왕길현 대표는 1년에 한번 씩은 학교에 다니며 새로운 농업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그리고 교육에만 그치지 않고 ‘평택사이버농업인연구회’ 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리게 SNS로 농사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글을 올리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아직 농사가 싫다고 말하고 저 역시도 아이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 생활하다가 문득 세상에 좌절하고 방황할 때 어딘가 의지하고 싶어지면 그때 이곳에 와서 정착할 수도 있으니 그때까진 제가 잘 지켜나가려구요.
졸업과 입학시즌으로 한창 수확에 여념이 없는 왕길현 대표, 만일 특별한 손재주가 없다면 이웃이나 영농 선배들과 좋은 대인관계를 맺는게 귀농의 최우선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는 이미 프로 농군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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