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악기, 20년 장인정신으로 만듭니다”

 
전통이 많이 사라진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유의 전통은 몇몇 뜻있는 이들을 통해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화된 세상 속에서 기계도 아닌 수공으로 전통을 잇는 사람, 바로 평택시 서탄면에서 국악기를 제작하고 있는 김진곤(40) 씨다. 아무리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상이지만 수공이 아니면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 재산 털어 국악기 제작에 전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려고도 했었죠. 세 아이 키우며 가정을 꾸려야하는데 안정적이지 않을 뿐더러 많은 돈을 벌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만 둘 수가 없었어요.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꼭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요. 결국 전 재산을 팔아 사업장을 만들고 가족은 전부 옥탑방으로 이사를 갔죠. 겨울이면 입김이 허옇게 나오는 방이라 당시 갓난아이였던 큰애는 자주 열나고 감기에 걸리기 일쑤였어요. 가족들에게는 많이 미안하죠”
김진곤 씨는 이제 막 불혹이라는 나이를 넘고 있지만 20살 때부터 시작한 그의 국악기 제작 경력은 벌써 20년이다. 경남 산청, 5남매가 있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먹고 살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일 밖에 없었다고.
“작은아버님이 대구에서 장구 만드는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방학이면 작은아버님 댁에 가서 장구 깎는 걸 도왔죠.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욕심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장구 깎는 일에서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도 했었거든요. 그래서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 일도 밤에 몰래 일어나 하곤 했죠. 그러다가 칼에 다쳐서 40바늘이나 꿰맨 적도 있고요. 결국은 이게 기술이 되어 직업으로 이어졌지만요”
김진곤 씨는 2~3시간씩 쪽잠을 자며 일에 몰두하던 당시를 생각하며 회상에 잠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위험한 칼로 하는 일이니 어린 아이가 피할 법도 했으련만 스스로 찾아 했던 일들이었기에 그는 이 일이 천직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수공으로 깎아 만든 장구와 북
“장구를 직접 깎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몇 안돼요. 요즘은 99%가 전부 중국제품이죠. 그래도 국악을 하는 전문가들은 자신만의 악기소리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에 전 그분들을 위한 맞춤 악기를 만들어 드리고 있어요. 악기는 다루는 습관이나 악기의 재료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에 개인에게 맞는 소리를 찾기 위해서는 그분들과 많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래야 그분과 꼭 맞는 악기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김진곤 씨가 보유하고 있는 악기들 중에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장구와 북은 모두 수공으로 직접 만든다. 나무를 켜는 일부터 그림을 그리고 가죽을 입히는 일까지 모두 사람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일도 오래 걸리지만 만들고 나서도 그게 한 사람에게 전해지기 까지는 더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
정해진 공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에 맞는 소리를 서로의 대화와 공유를 통해 찾아내는 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악기마다 전부 소리가 다르기 때문에 김진곤 씨는 악기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일이 점점 더 어렵고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팔아서 돈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면 중국산 가져다가 보기 좋게 칠만 새로 해서 팔면 되죠. 하지만 이건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아무리 중국이 제품을 잘 만든다 해도 중국에서 만드는 건 나무 자체도 중국 나무이기 때문에 우리 전통을 이어갈 수는 없죠. 악기 하나에도 우리 고유의 얼이 살아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어떻게 전통을 돈 벌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겠어요”
처음 장구 깎는 일을 배울 때는 한 달에 700~800개씩을 깎기도 했었다는 김진곤 씨는 당시에는 그저 잘 깎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전통 악기 제작에 어떤 사명감을 느낀다고.

전통을 잇는다는 사명감으로
“평택에 오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평택 고유의 웃다리농악이 내는 소리에 대해 많이 연구하곤 해요. 웃다리 평택농악은 공유하고 같이 어우러지는 맛이 느껴지죠. 앞으로도 평택농악을 많이 연구할 생각이에요. 단순한 악기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악기가 다른 전통악기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공연한 뒤 소리가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해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는 도매 형태로 판매하고 있지만 차차 소비자와의 직거래도 할 생각이라고 들려준다.
평생을 장구와 북을 깎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김진곤 씨는 악기를 구입하려는 이들에게 부탁의 말을 건넨다. 전통 악기 하나하나에 정성과 노력이 깃드는 만큼 단지 돈을 벌 목적으로 생산된 중국제품과는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또 악기를 주문하고 나면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위해 제작자와 부지런히 소통해 달라는 것과 부디 그 악기를 오래 아끼고 사랑해 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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