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로 시작한 신명神明, 이젠 평택농악 ‘상쇠’

이돌천·최은창·김용래 선생과 농악 역사 이어
함께 어우러지는 농악의 매력과 함께 한 40여년

 
현재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11-2호로 지정된 웃다리 평택농악은 이돌천·최은창·김용래 명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평택농악의 창시자인 고 최은창 명인과 이돌천 명인의 제자로 현재 평택농악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인간문화재 김용래 회장은 두 명인이 해 놓은 기반 아래 평택농악을 바로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이돌천 선생의 직계 제자로 열여섯 어린 나이에 농악에 입문한 후 현재 평택농악 상쇠를 맡고 있는 조한숙 씨 역시 평택농악의 역사적 근간으로 기록된다.  

이돌천, 스승과의 운명적 만남
“열두 살 때부터 고전무용을 하며 설장구를 배웠어요. 이돌천 선생님과 김용래 선생님은 열네 살 때 학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선생님이 저를 데리고 ‘대전KBS 농악경연대회’에 나가셨죠. 그때부터의 인연이 평택농악까지 이어진 거예요. 그때는 평택과 천안·안성까지 서로 두레패 단원들이 오가곤 했으니까요”
웃다리 평택농악에서 상쇠를 맡고 있는 조한숙(53) 씨는 현재 평택농악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됐다. 천안에서 태어났지만 농악을 배우며 알게 된 이돌천·최은창·김용래 선생과의 인연으로 평택농악에 몸담게 된 조한숙 씨는 최은창 선생에게서 꽹과리를 배우고 종쇠·부쇠를 거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상쇠를 맡아 농악대를 이끌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운 살림을 이어가던 어머니는 제게 기생이 되려고 하느냐며 농악을 그만두라 하셨어요. 그때 어린 마음에 농악을 못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저수지로 갔었는데 마침 제게 고전무용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차라리 없는 자식으로 생각하라며 절 데려다 공짜로 가르치셨죠”
평택농악 전수조교이면서 천안에서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단무장을 맡고 있는 조한숙 씨는 작은 외모에서 풍기는 당찬 이미지만큼 농악과의 인연도 자신의 꿋꿋한 의지에서 비롯됐음을 내비친다. 흥타령풍물단은 이돌천 명인이 창단한 이후 김용래 명인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는 풍물단체다.

앙칼지고 다부진 꽹과리 매력
“제가 키가 작아서 농악복장을 갖춰 입으면 사람들이 저 농악대 앞에 있는 꼬마는 꽹과리 참 잘 친다고 하더라구요. 어려서부터 농악을 하고 있으면 힘든 것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나곤 했어요. 여자가 상쇠를 잡았다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건 상관 안 해요. 제가 좋아서 신명에 취해 하는 거니까요” 
스물네 살에 결혼한 후 미국에 있는 친척들에게 아홉 살·열다섯 살 두 아이를 보냈지만 자신은 도저히 농악을 버릴 수 없어 이곳에 남았다는 조한숙 씨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엄마를 자랑스러워한다며 활짝 웃는다.
“모든 악기들이 제각각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 맛이 농악의 매력 아닐까요. 꽹과리는 크기는 작지만 소리가 크고, 앙칼지며 멀리까지 퍼지는 악기여서 농악대 무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상쇠인 제가 가진 것 중 이돌천 선생님께 받은 ‘진자’는 지금도 제가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기도 해요” 
조한숙 씨는 공연이 있을 때마다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면서 꽹과리를 친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보는 이들도 저절로 어깨춤과 함께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농악역사 기록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했고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올 2월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둘 다 평택농악의 역사들에 대한 연구로 받았죠. 평택농악을 이끄는 상쇠로서 책임감이랄까, 그런 것들이 그저 공연으로만 끝나지 않고 무엇이든 역사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그동안 꾸준히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논문을 쓸 수 있었어요”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 조한숙 씨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내 당당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악 공연한다고 아침 일찍 나가거나 저녁 늦게 들어오더라도 아무 말 없이 이해하고 받아주는 남편이 있어 지금까지 꾸준히 잘 이어올 수 있었다고.
“스승님들의 업적을 이어가는 것이 평택농악 전수교육조교인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자들도 많이 가르치고 있고 역사적인 고증이나 자료들도 많이 남기려 하고 있어요. 현재 문화재청에서 우리나라 6대 농악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 신청한 만큼 김용래 선생님이 건강하셔서 세계무형유산인 평택농악이 더욱 발전을 거듭했으면 좋겠어요”
평택농악 상쇠로서 당당히 농악대를 이끌고 있는 조한숙 씨, 힘찬 손놀림으로 꽹과리를 치며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주는 조한숙 씨는 어린 시절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농악을 배우고 싶다는  일념을 오십 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고집스럽게 이어가며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은 평택농악의 계보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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