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에 녹아드는 작품 하고 싶어요”

연극계 베테랑, 무대 내려와 ‘사람 속으로’
안정리 1년, 주민 마음에 문화 꽃피우고파

 
예술가가 무대에서 내려와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작품을 이뤄가는 것은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예술이 가진 힘을 체험하는 일이며 예술을 직접 몸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소망하는 일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내려와 대중 속으로
“청소년 시절부터 열심히 연극을 했어요. 그때부터 시작한 연극인생이 연출과 기획·예술 감독으로 바뀌었고 나중엔 대학로에 직접 소극장을 갖고 연극을 올리기도 했죠. 전 연극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평택추진단장으로 현재 팽성읍 안정리 일대 마을재생 프로젝트 사업을 맡고 있는 경상현(50) 단장은 비록 거창하게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안정리에 내려와 일하고 있지만 자신은 이 곳에서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소유할 수는 없어서 더 기대가 되는 작품이라며 활짝 웃는다.
“프로 연극인이 돼서 첫 번째 무대에 섰을 때의 감격은 절대 잊을 수가 없죠. 그런데 아무도 제 감격에 동조해주지 않고 오히려 저를 불편해 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연극은 함께 호흡하고 감정을 나누어야 하는데 전 오로지 제 감정에 취해 무대 위에서 혼자만의 연극을 하고 있었거든요”
경상현 단장은 이후 연극배우로 출연하거나 연출과 기획·예술 감독을 맡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경상현 단장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사업들의 적임자로 발탁돼 일을 진행할 때도 큰 힘을 발하곤 했다.

문화 불모지에 ‘문화’ 심고 싶어
“2009년 생활문화공동체사업은 문화 소외지역 주민들이 직접 문화 활동에 참가하면서 정이 흐르는 공동체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어요. 그때 전 영구임대 아파트 단지로 매일 출근해 주민들을 일일이 설득하기 시작했죠. 처음엔 주민들이 들은 척도 안했는데 결국 마을 주민 전체가 배우로 나서 연극공연을 하게 됐고 5~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연극공연을 하고 있어요. 주민들이 제게 주민들의 사인이 담긴 명예주민증도 주셨죠. 언제든 찾아오면 밥을 해준다는 약속도 함께요. 저의 보람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죠”
남한강 옆, 나룻배로 강을 건너야 학교에 갈 수 있는 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다는 경상현 단장은 그때의 추억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되어 주었다고 말한다. 늘 메마르지 않는 감성을 갖게 하는 힘, 그것은 경상현 단장이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항상 잊지 않고 되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처음 안정리에 왔을 땐 생각보다 슬럼화 된 곳이어서 걱정했어요.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그런데 막상 안정리에 문화를 접목했을 때 이곳이 과연어떻게 변할까를 생각하니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안정리는 그만큼 역사적 기반도 갖고 있었고 많은 이야기도 있는 곳이었거든요. 마을주민들이 마음만 열어준다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죠”
경상현 단장이 처음 안정리에 내려와 주민들을 만난건 바쁜 일손을 도우며 음식을 나르는 행사장에서였다. 주민들과 몸으로 부딪히며 마음을 나누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정작 본인 소개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은 모든 행사가 끝난 후 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주민들 손에 이끌려 식당에 갔을 때였다.

사업 아닌 ‘안정리 작품’ 하고파
“이곳은 문화의 힘이 정말 필요한 곳이에요. 역사와 문화가 만나면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죠. 그런데 그건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마음이 모아져야 하고 그분들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인데 점점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동참하겠다는 주민들이 많아지셔서 다행이에요. 저는 문화의 힘을 믿어요. 문화가 지역과 사람을 얼마만큼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두요”
경상현 단장은 일 때문에 사무실에서 잠을 자는 경우도 많다. 피곤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른 새벽 안정리 거리를 걸을 때 주민들이 모여 “지난번 마토예술제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고 꽤 괜찮던데”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새 피곤도 싹 가신다고.
“4월 15일에 안정리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으니 이제 꼭 1년이 되었네요. 그동안 마토예술제나 코스튬플레이 등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안정리의 가능성을 봤어요. 제가 바라는 건 나중에 우리가 이 사업을 끝내고 돌아가도 주민들 스스로 안정리에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것, 그리고 저희들에게 고생했으니 막걸리나 한잔 하고 가라고 말해주시면 그걸로 만족해요”
주민이 화합하고 문화가 흐르는 안정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는 경상현 단장, 예술가로서 사람들 속에 녹아든 작품을 또 한 번 만들고 싶다는 경상현 단장은 오늘도 열심히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문화마을로 활성화 될 미래의 안정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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