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신발 수선, 최고로 자신있어요”

열네 살 고향 떠난 소년, ‘장인’ 자부심
배움 부족해도 수선은 내 가장 큰 자산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울수록 아껴 쓰고 고쳐 쓰고 나눠 쓰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오래 사용해 낡고 해진 신발이나 가방 역시 예전 같으면 새로 샀겠지만 요즘은 어디 수선하는 집이 없나 하고 찾게 되니 말이다.

열네 살에 고향 떠나 기술 배워
“당시엔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랬겠지만 참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이었어요. 옛날 어른들은 공부보다는 기술을 배워야 밥 굶지 않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고 저 역시도 공부보다는 뭔가 만들고 고치고 하는 게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비전동에서 가방·신발 수선전문 ‘삼성수선’을 운영하는 김종기(50) 대표는 자신은 다른 건 몰라도 이 분야에서 만큼은 전문가라며 큰 소리로 웃는다. 그도 그럴 것이 열네 살 어린 나이에 카메라 하드케이스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 배우기 시작한 재봉일이 올해로 38년째이기 때문이다. 낡고 해진 가방이나 신발도 그의 손에 들어오면 어느새 멀쩡한 새것이 되어 한동안은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아는 분 소개로 동네 친구 일곱 명이 서울에 있는 공장에 기술 배우러 올라가 취직했는데 명절에 집에 내려오면 전부 다시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죠. 그래도 전 꿋꿋하게 혼자 올라가 일을 배웠고 공장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재봉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손이 빠르고 재주가 있긴 했거든요”
그렇게 배우기 시작한 재봉일이 그에게는 평생의 천직이 되었다. 군화도 만들어보고 가방과 신발도 만들어보는 등 종류를 조금씩 바꾸긴 했지만 끝내 재봉일을 벗어나진 않았다. 그에게는 명품 수선이나 리폼도 두렵지 않다. 이름값 하는 만큼 정성을 더 들이고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우선이지만 모든 일에는 그에 맞는 작업과정이 있기 마련이고 그는 이미 그런 일들에 대해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청업체의 설움 뼈저리게 느껴
“12년 동안 카메라 케이스 만드는 공장에 있다가 장사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결국 내 기술만 다 빼가고 허망하게 바닥에 나앉은 적도 있어요.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보행기를 타고 다니던 큰 아이가 뜨거운 물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3도 화상을 입었는데 그 아이를 붙들고 얼마나 울었던지…. 당시 아이를 치료할 돈도 없어서 여기저기 빌리러 다녀야 했는데 지금도 아이 몸에 있는 흉터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죠”
김종기 대표는 하청업체의 서러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청업체의 경우 원청업체의 횡포에 의해 단가가 깎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맘에 안 들면 아예 납품을 그만두라고 하는 경우도 많아 언제나 불안한 마음이 들기 일쑤라고.
“원청업체의 횡포로 하청이 끊겼을 때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야 했어요. 이자를 낼 돈이 없었거든요. 그때 수선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기술은 있으니까 트럭에 수선 장비를 챙겨 마을마다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쉽진 않았어요. 불법주차로 벌금이 수시로 나오는 데다 기름 값 없는 건 고사하고, 차에서 하다 보니 손님들도 수선을 맡긴 명품가방이나 신발을 갖고 그냥 가 버릴까봐 불안해했거든요”
김종기 대표는 결국 트럭장사를 포기하고 팽성읍 안정리에 두 평 남짓한 컨테이너를 얻어 수선가게를 차렸다. 그리고 비전동에 3평 정도의 가게를 운영하다 얼마 전에야 가게다운 가게를 얻어 수선을 다시 시작했다. 
 
고객이 만족하는 모습 보고싶어
“젊었을 때는 힘들 때마다 왜 더 배우지 못했을까 하고 자책하는 일도 많았어요. 조금만 더 배웠어도 이보다는 나을 텐데 하고 말예요. 그런데 나이 오십이 되고 회사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그래도 내 기술 갖고 일하는 게 제일 편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무 살도 안 된 나이에 사랑하나 믿고 저 만나서 지금껏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그저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죠”
김종기 대표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벌써 장성한 두 아들을 두었고 할아버지 호칭까지 얻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 역시 수선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해서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잘 배워서 기틀을 잡으면 자신은 평생 배운 실력으로 공장을 차려 가방을 만들어 보는 게 꿈이라고.
“결혼을 빨리 하기도 했고 힘들게 살아서 아이 키우는 재미가 뭔지도 잘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결혼한 아들이 가끔 제게 함께 낚시가고 싶다고 하는 말을 하곤 해요. 그 말을 들으면 문득문득 이 녀석이 예전 나처럼 힘들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가장으로서 책임져야 하는 무게들이 그리 쉬운 건 아니니까요”
자신이 살아온 원칙대로 아이들 키우면서도 항상 ‘정직’을 강조해 왔다는 김종기 대표, 비록 배움은 남들보다 짧아도 수선만큼은 누구보다 잘 할 자신 있다는 김종기 대표는 평생 재봉틀을 만지며 살아온 장인인 만큼 구두든 가방이든 자신의 손을 거치면 고객이 최고로 만족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욕심이라며 활짝 웃는다.(비전동 747-8/ 656-6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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