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있다는 말이 그렇게 좋았죠”

45년 한 자리, 변함없는 맛 지켜온 ‘창내리묵집’
5월 중 평택시내에 ‘분점’, 네 자녀들과 함께해


 
삶이 각박해질수록 엄마가 해주던 따뜻한 음식이 그립다. 배가 부른데도 더 먹으라고 밥그릇에 기어코 얹어주는 엄마의 수북한 고봉밥이 그립고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등 두드려주시던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그립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그립고 우리들을 키우느라 거칠어진 엄마의 손이 그립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엄마의 맛’
“이 집에서 음식장사를 한지도 벌써 45년이 됐네요. 결혼하고 평택으로 이사 오던 해였는데 하도 먹고살기 어려우니까 이장님이 제게 밥집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하셔서 시작했죠. 그냥 우리가 먹던 음식처럼 만들면 되겠다 싶어 겁 없이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콩이랑 두부를 맷돌에 갈아서 두부랑 묵도 쑤어 팔고 막국수도 팔았어요”
오성면 창내리에서 45년째 ‘창내리묵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복순(66) 여사는 이십대에 처음 밥집을 시작하던 당시를 회상하며 환하게 웃는다. 이젠 어느새 중년을 바라보는 자식들을 넷이나 두었을 만큼  세월이 훌쩍 지나갔지만 김복순 여사는 아직도 45년 전과 똑같이 주방에서 긴 나무주걱으로 묵을 쑤어 묵밥을 만들고 감자를 강판에 직접 갈아 감칠맛 나게 감자전도 부친다.
“그냥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옛날 집 방안에 밥상 몇 개 펴놓는 게 전부지만 이 시골구석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고마워서라도 정성스러운 음식 대접 해야겠다 생각해요. 하도 오래하니까 이젠 진짜 친척이나 가족같이 대하는 손님도 있고 결혼 전에 왔다가 결혼하고 아이들 데리고 계속 찾아오는 손님도 있어요. 그런 손님이 오면 나도 손자들에게 하듯 돈도 쥐어주고 맛있는 것도 더 내주고 그러죠”
김복순 여사는 지금도 일은 힘들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에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풀어지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꼭 사람 손으로 하는 걸 고집한다고.    

기계는 맛이 안나, 사람 손으로 해야
“언젠가 힘들어하는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들이 묵 쑤는 기계를 사온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기계를 사용했더니 제 맛이 안 나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사온 기계를 반납하고 다시 손으로 쑤기 시작했죠. 감자도 편하게 믹서기를 쓰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사각사각한 맛이 없어져요. 그래서 꼭 강판에 직접 갈아 전을 부치곤 하죠”
‘창내리묵집’은 김복순 여사의 남편과 아들·딸이 직접 농사지은 쌀이며 부추·배추·오이·감자를 활용해 손님 밥상에 올린다. 남편이랑 아들이 틈틈이 잡아온 미꾸라지로는 추어탕도 끓인다.
“어떤 손님은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난다면서 제 손을 꼭 잡고 가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손님은 먹을 것도 사오고, 또 어떤 손님은 내일 아기를 낳으러 가는데 미리 힘내기 위해 염소탕 먹으러 왔다가 아기를 데리고 다시 오는 산모도 있었어요. 손님들 대부분이 돈 벌어도 새로 식당은 짓지 말래요. 지금이 고향집 오는 것 같아서 제일 좋다면서요”
현재 ‘창내리묵집’에는 큰 딸과 큰아들·막내아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맡고 있는 분야도 달라서 아침이면 남편과 큰아들은 미꾸라지를 담당하고 김복순 여사와 큰딸은 염소고기를 삶고 막내아들은 야채와 쑤어놓은 묵을 잘게 써는 등 각자 바쁘게 움직인다.

둘째딸이 통복시장에 ‘분점 개업’
“옛날에 장사가 안 돼 아이들 먹일 것이 없었을 때는 논에서 미꾸라지랑 우렁이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느 날은 큰 딸에게 미꾸라지를 시장 장사하시는 분에게 넘기고 돈을 받아오라고 시켰는데 다음날이 내 생일인 걸 알고는 그 돈으로 미역하고 과일을 사왔더라구요. 딸의 마음을 알면서도 당장 내일 먹을 게 없는데 쓸데없는 걸 사왔다고 화내며 아이를 때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파요”
김복순 여사는 아직도 그때가 어제 일처럼 생생한지 어느새 주름진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그러나 아이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고생했던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자식들은 이제 어느새 엄마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창내리묵집’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둘째 딸은 엄마의 음식 솜씨를 이어받아 오는 5월 20일 통복시장 순대골목 쪽에 ‘창내리묵집’ 분점을 개업할 예정이다.
“내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만 하려고 했는데 얼굴만이라도 보여 달라는 정든 손님들이 많아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앞으로는 제 자식들이 잘 이어받아 열심히 일하고 정성스럽게 음식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네요. 제가 자식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건 이런 시골 변두리까지 우리 음식 먹으러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최대한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는 말 뿐이에요”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이 김복순 여사도 자녀들에게 선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먹고사는 게 바빠서 잘 모르고 지났는지는 몰라도 자녀들이 사춘기도 없이 지냈고 유난히 착하게 컸다고 말하는 김복순 여사는 힘은 들어도 아들과 딸이 항상 곁에 있어 누구보다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창내리묵집 분점 653-8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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