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하고싶은 일만 하며 살거예요”

선생님 권유로 건축에 매료·전통가구는 취미
건축사는 인문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선행


 
‘사람은 건물을 만들지만 이후엔 건물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은 건축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모두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건축은 예술·사회학·인문학이 모두 접목된 종합학문이며 가장 최적화된 인간의 생활환경을 창조하는 중요한 분야다.

목수였던 아버지와 건축사 딸
“중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건축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땐 어린 마음에 집도 꾸미고 인테리어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호기심을 가졌죠. 그런데 막상 건축과를 가려고 했더니 아버지가 반대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직업이 목수였는데도 왜 여자가 그런 걸 하려고 하느냐면서 말예요. 그래도 제 생각은 확고했죠. 부모가 반대한다고 원하는 걸 못한다는 건 도저히 수긍이 안됐거든요”
평택시 가재동에서 ‘원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원선영(46) 소장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졸업 후 바로 건축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다시 직업을 택하라 해도 다시 건축사가 될 것 같다고 말하는 원선영 소장은 이 직업이 딱 자신의 천직이라고 말한다.
“1997년에 건축사 시험을 봤는데 제가 건축사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건 엄마 은공이 50%라고 생각해요. 시험 준비할 때 엄마가 합격을 기원하며 백일기도를 드렸거든요. 또 그해에 유달리 건축사를 많이 선발하기도 해서 운도 좋았구요. 무엇보다 어렵고 지긋지긋한 시험을 도저히 두 번은 못 보겠어서 악착같이 시험공부에 매달렸죠”
건축사는 국토해양부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으로 매년 합격률이 10% 미만인 비교적 어려운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도 예비시험 응시자격 취득일로부터 5년 이상 건축 실무경력을 쌓아야 가능하다.

건축, 모든 학문의 종합분야
“요즘은 건축사를 지칭하는 범위가 좁아졌지만 건축은 원래 모든 학문을 종합할 수 있는 분야예요. 설계·감리는 물론이고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나 건축 안을 채우는 가구, 조상들의 건축을 보며 주거환경을 생각하는 사학 인문학까지 모든 것에 관여돼 있는 분야죠.”
2007년 자신의 성을 따서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 원선영 소장은 얼마 전 서부노인복지관과 서정동성당 리모델링 공사를 맡아 하기도 했다. 여성이어서 힘든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원선영 소장은 오히려 여성 건축사이기 때문에 일이 부드럽게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수시로 현장조사를 나가거나 공사현장에서 의견을 조율하는 등 하나의 일을 끝내기 위해서는 부수적으로 필요한 많은 과정들이 있지만 스스로 완벽주의자가 아닌 만큼 언제나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일점을 이끌어내는 것은 원선영 소장의 평소 시원시원한 성격과도 연관된다.
“제가 원래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건축사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이 일이 적성에 맞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쉬운 분야가 아니어서 늘 머리를 써야하는데 해도 해도 어려운 일들이 많아 도전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죠. 싫증 낼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거예요. 건축 외에 좋아하는 게 있다면 훌쩍 여행 떠나는 것과 사진 찍는 걸 즐기는 편이죠”
원선영 소장은 지금이라도 여건만 주어진다면 10분 안에 당장 배낭을 둘러메고 어디든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한다. 무려 20여 개국에 달하는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관심분야인 건축을 눈여겨보는 것은 기본이고 나라마다 특색 있는 공연을 미리 예약해서 관람하는 건 필수라고.

전통가구, 예술의전당 전시
“제가 출품한 작품은 느티나무와 오동나무로 만든 ‘사층책장’이에요. 나뭇결이 너무 아름다워서 심플하게 디자인 했죠. 건축은 완성이 되기 전까지 잘 지었는지 못 지었는지 확인이 어렵지만 가구 만드는 건 바로바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요”
원선영 소장은 2005년부터 서울까지 왕래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기능보유자인 박명배 선생에게 전통가구 만드는 법을 사사 받았다. 그리고 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5월 10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성황리에 전시도 마쳤다. 시간을 쪼개가며 강의를 들어야 했지만 원선영 소장에게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전시다. 예전에는 전통건축에도 관심이 있어 전통설계를 공부하기도 했는데 그녀가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건축과 맥락이 닿아있다.
“건축은 인간이 편안하고 쾌적하며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싫으면 안보면 되지만 건축은 철거하기 전에는 안볼 수 없으니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책임이 따르는 것이죠.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뒤따르기 때문에 마음대로 작품 활동을 하기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이에요”
앞으로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갈 거라고 말하는 원선영 소장, 여성 건축사라는 특이한 이력 외에도 인생의 맛을 음미하며 살아가는 그녀는 아직 제대로 된 인연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자신은 절대 ‘독신주의자’는 아니라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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