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앞선 체리농업, “제 경험을 믿었죠”

1만평 농장에 ‘별’처럼 알알이 달린 ‘체리’
전국 최대 규모, 하루 300여명 수확 체험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도전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그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비록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각오와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한발 빠르게 ‘새로운 도전’
“원래 제 꿈은 목장을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십대부터 성환에서 젖소 수십 마리를 키웠죠. 그런데 소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배 과수원으로 업종을 변경해야 했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과수원을 하셔서 그 일은 제가 잘 할 수 있었거든요. 배나무를 심을 때는 당시 신문에 소개됐던 새로운 농법인 ‘밀식재배’를 시도했는데 일찍 수확을 볼 수 있다는 말에 매뉴얼도 없이 무작정 도전했죠. 그땐 그 농법을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때 였어요”
팽성읍에서 체리 체험 ‘별농장’을 운영하는 지완근(60) 대표는 살아오는 동안 항상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 도전해 왔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어떤 매뉴얼도 없는 상태에서 시도했던 ‘밀식재배’ 역시 그에겐 도전이었지만 힘든 과정을 이겨낸 만큼 보람도 있었다. 덕분에 그가 운영하는 농장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의 교육농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한다는 게 쉽진 않았어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니까 두려움도 많았죠. 그런데 남들 다 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어려운 건 성공한 뒤에 뿌듯함도 크구요. 아내는 항상 제게 왜 당신은 남들이 안하는 걸 해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막상 제가 일을 시작하면 뒤에서 가장 많이 도와주는 건 아내예요. 아내가 있어서 여태 잘 헤쳐갈 수 있었죠”
지완근 대표는 2000년 3월, 성환 과수원을 처분하고 팽성읍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이사한 땅에 있던 밤나무를 베어내고 1만평이나 되는 대지를 일궈 다시 과수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수원에는 복숭아도 심고 땅콩도 심었지만 결국 2006년 FTA 폐원자금을 받고 접어야 했다고.

불가능 의견에도 확신했던 ‘체리’
“복숭아 과수원을 폐원하고 나서는 한동안 힘들었어요. 그러다 아내와 함께 대형마트를 갔는데 거기서 체리를 보게 됐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고작 300그램이었는데 거의 1만원이나 했거든요. 그때부터 체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엔 체리농가가 전무한 상황이었어요. 제가 체리를 심겠다고 하자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만류할 정도였으니까요”
지완근 대표는 그래도 또 한 번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 옥천에서 체리묘목을 판매한다는 걸 알고 그곳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봐온 경험에 의하면 모든 식물은 풍토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체리라고 왜 우리나라에서 살지 못하겠나 싶었고, 체리농사에 대한 확신이 들었죠. 제가 즐겨 따먹는 앵두도 우리나라 토종은 아니었으니까요. 송산지역 체리시험 재배하는 곳엘 갔는데 2년 동안 죽지 않고 잘 산다는 얘길 듣고 특별한 교육도 없이 바로 1만평 농장 전체에 체리나무를 심었어요”
너무 높게 심어도, 너무 낮게 심어도 살지 못하는 체리나무는 비만 오면 과실이 터져 유럽에서는 ‘체리농사는 하느님하고 같이 짓는다’는 말을 할 정도다. 체리는 열매가 나무 전체에 다닥다닥 열리기 때문에 유럽에서도 고작 몇 십 주 정도만 심는다는 건 한참 후에 들은 얘기라고.

전국 최대 규모 체리체험 ‘별농장’
“전국 최대 규모의 체리농장이 된 건 어쩌면 제가 체리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일거예요. 처음엔 심고 나서 1000그루 이상을 다 죽이기도 했죠. 생명이 죽어가는 걸 바라보는 일만큼 괴로운 건 없잖아요. 그때가 가장 속상했어요. 지금은 전국에 체리를 심는 농가가 늘어나고 견학하는 사람들이나 체험객들도 찾아오지만 뭐든 쉽게 이룰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별농장’이라는 상호는 지완근 대표가 직접 지은 것으로 그가 목장을 하던 때부터 사용하던 이름이다. 지완근 대표는 그때 사용하던 ‘별목장’이 현재의 ‘별농장’으로 변했을 뿐,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성공한 이름이 아니냐며  활짝 웃는다.
현재 그는 바쁜 일정을 쪼개가며 서울 MBC아카데미나 연암축산대학 등에서 귀농인 교육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는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늘 소비자와 소통하라는 말을 들려준다고.
“농사는 무엇보다 잘 팔아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러려면 소비자와 중간단계를 없애고 정직한 농사를 실천하는 것, 어떤 방법으로든 잘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 다시 찾을 수 있는 농촌을 만들어가야 해요. 깨끗하게 정비하고 잔디도 좀 심어서 누구나 찾으면 차도 마시고 김밥도 먹으며 머물러 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죠”
하루 300여명의 체험객이 몰리는 전국 최대 규모 ‘별농장’에서 아이들이 나무에 열린 체리를 따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때 보람을 느낀다는 지완근 대표, 자녀들에게 언제나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말을 들려준다는 지완근 대표는 아무리 힘들어도 도전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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